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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의 문자로 보는 세상] 시작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첫 단추 잘 꿰어 ‘유종의 미’ 거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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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3 10:00:00 수정 : 2017-07-23 09: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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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끝> 유시유종(有始有終) / 처음 ‘시’ 인생·일의 시작 뜻해… 끝날 ‘종’ 현상의 끝 의미 /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 강조… 용두사미 되지 말아야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다. 이른바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철칙이다. 마찬가지로 문자는 영원하나 그 연재는 유한하다.

오늘로 세계일보 문화기획 칼럼 ‘문자로 보는 세상’은 문을 닫는다. 신문은 문자를 통하여 세상을 밝혀주는 가장 강력한 정보 발전소이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지면에는 여러 언어가 서로 다른 폰트(font)의 옷을 입고, 크고 작은 목소리를 내며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듯이, 문자를 보면 그 당시의 세상이 보인다. 문자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한다. 따라서 문자를 자주 대하면 귀와 눈이 밝아지므로 총명(聰明)해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음성언어인 말과 문자언어인 글을 사용해 왔다.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말로만 살아가는 미개인들도 있지만, 말의 시간적·공간적 제약 때문에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끼리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또 그들이 일궈낸 문명과 역사를 후손에게 남길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문자(文字)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자는 문명과 미개를 구분 짓는 척도가 됨은 물론, 오늘날 각종 신문, 잡지, 사전 등의 기록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보면 그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시유종
인생도 만남도 유시유종(有始有終)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죽을 일도 없을 테지만, 태어났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숙명이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이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을 울리는가 보다. 일이든 사람이든 만나지 않았다면 헤어질 일도 없을 테지만, 만났다면 반드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이른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숙명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도 공간도 모두 유시유종(有始有終)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의 일차적 의미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로 보인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시작도 잘하고 끝마무리도 잘해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단 시작한 일이라면 끝까지 잘 마무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의 의미는 ‘시작한 일은 끝을 보라’는 속담과 상통한다.

‘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등의 속담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다음 구절도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합포지목(合抱之木) 생어호말(生於毫末), 구층지대(九層之臺) 기어누토(起於累土),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어족하(始於足下)’ ‘아름드리의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씨앗에서 싹이 트고, 9층의 높은 누대도 한 무더기의 흙을 쌓는 데에서 시작하며, 천 리 길도 발밑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시작’이란 단어의 종결은 아무래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다.

시작을 뜻하는 한자로는 ‘처음 시(始)’ ‘처음 초(初)’ 등이 있다. ‘처음 시(始)’ 자는 ‘인생의 시작’을, ‘처음 초(初)’ 자는 ‘일의 시작’을 뜻한다. 여기에서 ‘시초(始初)’라는 단어가 생성된다.

‘처음 시(始)’ 자는 배 속에 아기가 들어서는 일이 ‘인생의 시작’이라는 데에서 ‘비로소’, ‘처음’의 뜻을 갖는다. 좀 더 자세히 시(始) 자를 들여다보면, 여인의 배 속 아기의 숨구멍인 기도(氣道)와 목구멍인 식도(食道)가 보인다. 지금 ‘나’를 뜻하는 ‘사(?)’ 자는 본래 ‘코’의 모양을, 지금 ‘입’을 뜻하는 ‘구(口)’ 자는 본래 ‘목구멍’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였다.

‘처음 초(初)’ 자는 ‘옷 의(衣)’ 자와 ‘칼 도(刀)’의 합성인 걸 보면, 옷을 만들기 위해 칼로 재단하는 모습으로 ‘일의 시작’을 뜻한다.

창조(創造)라 할 때의 ‘비롯할 창(創)’ 자도 ‘일의 시작’을 뜻한다. ‘곳집 창(倉)’ 자와 ‘칼 도(刀)’ 자의 합성으로, 이는 창고에서 칼을 들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시·공간, 사물 따위의 마지막 한계가 되는 곳을 가리키는 ‘끝’이란 말은, 다소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단어이다. 우리말에 ‘끝을 보는 성격’이라 하면 일단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맺는 과단성 있는 사람의 성격을 뜻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란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일의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만든 희곡명이기도 하다.

‘행백리자(行百里者) 반어구십(半於九十)’은 <시경>에 나오는 구절로,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일은 마무리 단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비수학적으로 표현한 말로, 이 구절은 특히 등산 교훈으로 많이 사용된다. 정상에서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방심하다가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는 <노자>에 나오는 구절로, ‘무슨 일이든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끝까지 정성을 다하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로 보면 노자는 처음과 끝을 중시한 철학자로 볼 수 있다.

‘끝’을 뜻하는 한자로는 우선 종말(終末), 종료(終了)라고 할 때의 ‘끝날 종(終)’ 자를 들 수 있다. 이 글자의 갑골문 형태를 보면 ‘실의 끝매듭’을 뜻하였다. 나중에 계절의 끝을 뜻하는 ‘겨울 동(冬)’ 자를 붙여 지금의 종(終) 자 모양이 되었고 ‘일의 끝’ ‘현상의 끝’ 등의 의미를 지닌다.

말단(末端), 말기(末期), 주말(週末)이라 할 때의 ‘끝 말(末)’ 자는 ‘나뭇가지의 끝’이란 뜻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사물의 끝’ ‘시간의 끝’ 등의 의미로 발전하였다.

흔히 ‘모름지기 사람은 머리끝과 발끝이 깨끗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사실은 머리끝과 발끝을 깨끗이 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온몸이 깨끗하게 된다는 이치가 숨어있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일을 잘할 때, ‘선시선종(善始善終)’ ‘시종일관(始終一貫)’ ‘시종여일(始終如一)’ 등의 말을 한다. 가톨릭에서는 임종 때에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을 ‘선종(善終)’이라 하는데, 이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로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친다’는 소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용두사미(龍頭蛇尾)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은 곤란하다.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 역시 곤란하다.

‘서예와 함께한 최초의 칼럼’이었다는 점에 스스로 방점을 찍는다. 고락을 함께해 준 문화부·편집부 여러분께 감사한다. “아주머니, 여기 ‘처음처럼’ 하나 주세요.”

권상호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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