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상은 인간 앞에 늘 불확정적으로 열려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질문의 막막함은 인간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럴 때 목표나 길을 가르쳐 주는 등대 같은 멘토가 있을 때 세상은 갑자기 환하게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혜택을 받으며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하거나 인종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멘토는 더욱 절박하게 필요하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감독 배리 젱킨스)는 뛰어난 작품성에도 국내에서 20만명도 채 관람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감독 각본 출연자 대부분이 흑인이며, 가난한 흑인 지역을 배경으로 마약상이 직업인 사람과 마약에 찌든 사람을 다루고 있는 탓에 멋지거나 예쁜 장면도 드물다. 처참하고 힘든 그들의 현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데도 가슴 깊은 곳을 먹먹하게 만든다.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이 푸르게 보인다’는 연극을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현실이 척박할수록 인간은 따뜻한 관계에 더 크게 위로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 영화평론가
마약중독자인 어머니(나오미 해리스)와 외롭게 살아가던 상처 입은 소년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은 흑인 사이에서도 왕따다. 괴롭히는 아이들을 피해 빈집에 숨었다가 우연히 만난 마약상 후안(메어샬라 알리)과의 만남은 소년의 삶에 한 줄기 햇빛이 된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불안한 눈동자로 후안을 바라보는 소년을 후안은 따스하게 손잡아준다. 샤이론을 자신과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가 사는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대접하고 따뜻하게 대화도 나눠주며 마음을 닫고 사는 소년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마약상으로 살아가는 후안이 번듯하고 존경할 만한 멘토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멘토가 멋진 사람이어야 된다는 법은 없다. 후안은 아버지가 없는 샤이론에게 아버지이며 멘토다. 바닷가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바닷물 속에 함께 들어가 바닷물과 몸이 접촉하는 느낌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며 바닷물에 뜨는 법도 가르쳐 준다. 후안은 어릴 적 어느 할머니로부터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이 푸르게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며 흑인이 받는 아픔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외로운 소년 샤이론은 점차 후안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후안이 그렇게 좋으면 그에게 가서 살라며 소년을 더 핍박하고 마약에 점점 더 찌들어갈 뿐이다. 친구들뿐 아니라 가족에서까지 상처받으며 살아야 하는 샤이론에게 후안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질그릇처럼 약하고 부족한 우리 인간은 따스한 관계에서 위로받고 멘토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대표적 멘토로는 그리스 아킬레우스의 스승인 페트로클로스를 지칭할 수 있다. 페트로클로스는 야성적인 아킬레우스를 교양인으로 만드는 스승이며 진정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20살 정도 위인 스승과 젊은 제자와의 자연스럽고 밀접한 관계를 남남관계라고 하여 가끔 동성애라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멘토와 멘티의 관계이다. 젊은이는 나이 든 멘토를 통해 위로받고 많이 배운다. ‘문라이트’에서처럼 멘토가 반드시 훌륭한 사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면 상대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 영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