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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통일한것은 삼국 아닌 삼한 고구려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입력 : 2017-07-20 20:56:54 수정 : 2017-07-20 20: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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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은…’ 펴낸 신형준씨 주장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책에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점을 676년으로 보고 있다. 신라가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무너뜨리고 당의 군대를 몰아낸 것이 676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라 진성왕 4년(890)에 건립된 월광사 원랑선사탑비에는 통일의 주체가 ‘태종대왕’(무열왕)으로 기록돼 있다. 태종대왕의 재위 기간은 654∼661년이다. 여기에는 태종대왕이 통일한 주체로 ‘삼국’이 아닌 ‘삼한’이 명시돼 있다.

문화재 기자 출신인 신형준씨는 신간 ‘신라인은 삼국통일을 말하지 않았다’(사진)에서 신라인은 삼국을 통일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라인이 생각한 통일의 대상은 백제 또는 그보다 약간 넓은 영역이다. 고구려가 통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라인이 삼국 대신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통일했다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라인이 직접 쓴 금석문, 원효나 최치원 등 신라인의 글을 모은 문집, 고구려와 백제 유민의 묘지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 기록들을 살펴본 결과 신라가 ‘삼국통일’이라고 남긴 기록은 3건에 불과하지만 ‘삼한통일’이라는 표현은 11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은 학계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는 삼한을 삼국으로 간주했다. 최치원이 885년에 쓴 ‘태사시중에게 올린 글’(上太師侍中狀)을 보면 “마한은 고구려이고 변한은 백제이며 진한은 신라”라고 언급돼 있다. 이를 근거로 삼한을 삼국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글의 뒷부분에 나온 “고구려의 잔당이 북쪽에 있는 태백산 아래에 모여서 국호를 발해라고 했다”는 내용에 주목한다. 이는 고구려 세력이 발해로 이어졌다는 뜻인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 같은 생각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통일신라시대’와 ‘남북국시대’라는 학계의 논쟁과도 이어진다. 저자는 ‘남북국시대’가 옳다고 주장한다. 통일신라시대에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제외됐고 신라인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라가 통일한 영토는 고구려를 포함하지 않았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도 존재했는데 한국사 교과서는 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우리 역시 신라인들처럼 ‘신라의 삼한통일’로 교과서를 기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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