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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굽이굽이 하늘과 닿은 고개 너머… 은둔자들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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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2 19:48:11 수정 : 2017-07-12 19: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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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는 아니지만, 그 어느 오지 못지않은 첩첩산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출발하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안동에서 34번 국도로 접어들어 1시간을 내리 달려야 이를 수 있었다. 길이 구불구불해 강원도 두메산골을 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곳이다. 지명부터도 산골을 연상케 한다. ‘푸른 소나무’란 뜻의 ‘청송(靑松)’이다. 청보(靑寶)와 송생(松生)이라는 두 지명이 합쳐져 얻은 이름이라지만 소나무들이 쭉쭉 뻗은 산골이 자연스레 떠오를 만큼 이 고장과 어울리는 절묘한 조합이다. 
주왕산은 다양한 형태의 암봉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화봉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연꽃봉오리를 닮아 이름 붙여졌다.

이런 오지이다 보니 옛날엔 비운을 맞은 이들이 숨어들었다. 중국, 신라에서 반역을 도모하다 실패한 뒤 청송에서 은둔하다 삶을 마쳐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역사서에 이름조차 제대로 거론되지 않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의 마지막을 품어준 곳이 청송의 주왕산이다. 주왕산은 밖에서 보기엔 이렇다 할 빼어난 외형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에 들어서면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절경의 연속이다.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은 은둔과 절연의 고장인 청송이 빼어난 풍광과 천혜의 생태환경을 바탕으로 국제 슬로시티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청송을 경유하는 상주∼영덕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가는 길이 한결 편해졌다.
경북 청송 주왕산 가는 길에는 ‘○○여관식당’ 이름의 오래된 간판이 많다.

출발은 상의매표소 주차장에서부터다. 다른 여행지처럼 이곳에서도 여행객을 먼저 맞는 건 식당들이다. 식당 겸 여관을 하고 있는 ‘○○여관식당’ 이름을 달고 있는 오래된 간판들이 정겹다. 식당 뒤편으로는 주왕산의 기암(旗岩)이 뾰족 고개를 내밀고 있다.

주왕산은 중국 당나라 때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반역을 일으켰다 실패한 뒤 신라로 도주한 주도가 숨어지냈다고 한다. 당나라는 신라에 주도를 잡아 달라고 요청했고 신라는 마일성 장군을 보내 주왕굴에 숨어있던 주도를 잡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 다른 얘기로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 6대손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각간 김경신이 내란을 일으켜 왕이 됐고, 김주원은 주왕산으로 은신했다고 한다. 이때 김주원이 당나라를 끌어들였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어떤 전설이 정확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권력의 중심에서 쫓겨난 이들을 품어준 곳이 주왕산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 전설들과 관련된 얘기들이 주왕산 곳곳에 있다. 기암 역시 주도가 신라의 마장군과 전투에서 이긴 뒤 깃발을 꽂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 주도가 군사들을 숨겨두었다는 무장굴, 주도의 군사들이 군사훈련을 하고 그 안에서 주도의 딸인 백련이 성불했다는 연화굴 등이 있다. 봄이면 주왕산은 붉은 수진달래(수단화)로도 유명한데, 이는 마 장군의 화살과 철퇴에 맞은 주도의 피가 산을 따라 흐르면서 꽃을 붉게 물들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경북 청송 주왕산 대전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군을 훈련한 곳이다. 대전사에서 사찰 너머로 기암과 장군봉이 솟아 있다.

식당을 거쳐 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맞는 곳이 대전사다. 대전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군을 훈련한 곳이다. 기암 건너편의 낮은 봉우리는 장군봉으로, 장군봉 전망대까지 가려면 왕복 4시간 정도 걸린다. 전망대까지 가기 힘들다면 계곡을 끼고 있는 평탄한 길을 따라 용추폭포까지 다녀와도 주왕산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다. 기암이나 장군봉 모두 화산 폭발로 생긴 기암단애로, 주왕산 일대에서는 최소 아홉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길을 따라 가면 다양한 형태의 바위 봉우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연꽃봉오리를 닮았다는 연화봉,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는 시루봉, 물 흐른 자국 선명한 급수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 급수대의 주상절리 등 바위 전시관이 따로 없다.

학이 놀았다는 학소대를 지나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입구 같은 용추협곡이다. 수직으로 깎인 바위 틈을 빠져나오면 용이 승천했다는 용추폭포가 3단으로 떨어진다. 3단 폭포를 마주하면 용추협곡이 속세와 천상을 가르는 입구와 같은 곳이라는 얘기에 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이곳까지 둘러본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돌아올 땐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망월대 방향으로 돌아와도 좋다.
최근 개관한 대명리조트 청송객실에서는 주왕산 전경과 함께 아침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최근 고속도로가 개통된 청송에 온천시설을 갖춘 대형리조트가 들어섰다. 대명리조트는 지난달 말 숲 속을 거닐고 온천을 즐기며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열다섯번째 리조트를 개관했다. 대명리조트 청송의 가장 큰 특징은 황산염 광천 온천 ‘솔샘온천’으로 지하 780∼1000m 암반에서 끌어올린 섭씨 28∼31도의 약알칼리성 온천수를 사용한다. 리조트 일부 객실에서는 주왕산 전경과 함께 아침 햇살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

청송=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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