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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싸움 고수와 빗나간 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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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1 01:35:20 수정 : 2017-07-11 01: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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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삼성’ 만들 생각 않고 세계 1등 기업에게 ‘맞지 않는 옷’ 입히려는 정부 /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영화 ‘싸움의 기술’. 전설적인 싸움 고수 오판수는 병태에게 말했다. “넌 눈썰미가 있어. 하도 많이 맞아 상대가 어딜 때릴지 안단 말이야. 기술도 이 정도면 됐어.” 고수는 어떤 사람일까. 싸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이기는 방법도 알게 된다. 이어지는 말. “넌 사람을 못 때려. 왜? 두려움 때문에.” 고수는 그렇게 탄생했다.

싸움만 그럴까. 경제도 똑같다.

세계적인 불황. 모든 기업이 어려운 걸까. 떼돈을 번 삼성전자. 2분기에만 14조원의 이익을 냈다. 121억달러다. 미국 정보기술(IT) 빅4인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합친 이익 111억5000만달러보다 많다. 인텔도 꺾었다. 매출·수익·수익률에서 세계 최고다. 가발공장만 있던 1950~70년대. 1980년대에는 일본 전자산업을 기웃거려야 했다.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던 기적 같은 일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어떻게 가능했을까. “부패한 권력과 결탁한 매판자본”이라서? 웃기는 소리다. 삼성 매출의 90%는 해외에서 발생한다. 자산 70% 이상은 해외에 깔려 있다. 국경은 이미 무의미한 경계로 변했다. 작은 나라 부패한 권력과의 결탁은 위험만 부른다. 부패 낙인이 찍히면 물건 팔기도 어렵다. 투명한 ‘서구 스탠더드’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기에 해외에서는 한 번도 삼성 부패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는 것 아닐까.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센터, 세계를 누비는 임직원들. 반도체 싸움 33년 동안 실패하면 또 도전하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났으니 오늘의 결과도 있다. 삼성을 최고수로 만든 것은 부패가 아니라, 싸움 경험과 용기다.

많은 기업이 그 길을 좇는다. 대기업도, 벤처·중소기업도. 진정한 고수가 되기 위한 싸움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재벌개혁을 외친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는 4대 재벌로 좁혀도 무리가 없다.”

왜 재벌이라고 할까. 가문 벌(閥). 소유지배구조에 문벌적 특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유재산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치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던가. 재벌은 반기업 정서의 고깔모자를 씌운 용어다. 그러기에 공정위도 재벌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왜 경제력 집중 억제에 그토록 매달릴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 현대, LG가 커진 것은 세계시장에서 벌인 싸움의 결과다. 1997년 이후 국내에 공장을 짓지 않은 현대차. 자동차 판매액은 2000년 18조2310억원에서 지난해 93조6490억원으로 불어났다. 무슨 뜻일까. 시장이 있는 해외로 자산을 옮겼다는 뜻이다. 국내에는 본부만 두고 있을 뿐이다. 산업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좁은 국내시장을 두고 치고 박는 곳은 차라리 중견기업이다. 오너 도덕성이 문제된 일부 프랜차이즈처럼.

의문점 한 가지.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걸까. 이미 세계화 길로 들어선 기업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라는 것은 아닐까. 개혁·억제는 규제와 통하는 말이다. 기업 자본은 어떻게 움직일까. 규제 사슬을 피해 해외로 더 나가지 않을까. 오라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아예 본부를 해외로 옮긴다면? 더 이상 규제의 대상도 아니다. 개혁. 낡은 패러다임의 좁은 눈으로 시대에 동떨어진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닐까. 화(禍)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삼성 같은 기업을 더 키워야 한다”는 말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다른 정책도 다르지 않다. 공공일자리 81만개,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세계경제 흐름과 다르다. 세계경제의 화두는 무엇일까. 성장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다. 왜? 부채·빈곤·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 이보다 나은 보도(寶刀)는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노동·규제 개혁, 미국의 세금인하·투자유치는 모두 이를 목표로 한다.

세계 최대 첨단반도체 생산라인 가동에 들어간 삼성. 앞으로 37조원을 더 투자하기로 했다. 44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삼성은 왜 투자를 하는 걸까. 더없이 좋은 투자환경이라서? 아니다. 첨단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다. 정부가 이를 보고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면 소경이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수가 되기 위해 싸움판에 나선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인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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