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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지역사회의 종갓집 같아야

입력 : 2017-07-07 14:21:30 수정 : 2017-07-07 14: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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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대안교회의 첫걸음
탈종교 현상과 맞물려 기독교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타종교로의 개종은 절대 못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유랑자들이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민들레대안교회를 운영하는 화륜(57) 목사는 제도화된 틀과 내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예수의 본질을 추구하고 있다. 그를 통해 대안교회의 흐름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목사를 서원하게 된 동기는

4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서 고등학교 때 목사가 되기를 원했다. 집안에서는 의대 가기를 원했지만 신학대를 나와 미국에서 다시 신학을 공부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집안은 물질적으로 풍족한 편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대표인 작은 아버지 힘으로 광고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했다. 그리고 토·일요일에는 교회의 부목사로 열심히 봉사했다. 그런데 감리교에서 제법 큰 교회를 일군 막내 삼촌이 자기 교회의 후임자로 나를 지목했지만 평소의 지론인 교회 세습 반대라는 신념이 있어 집안의 요구를 뿌리치고 사업을 시작했다.

작은 아버지의 은퇴와 함께 광고 회사가 부도가 났고 2002년 모든 것을 정리해 경기도 안성에 내려와 황토공방을 했다. 교회를 떠났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신념을 던져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앙상담을 부탁했다. 즉 방황하는 가나안 성도들의 마음을 치유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황토 사업계의 큰 기업이 예기치 못한 언론의 몰매를 맞으면서 그 업종에 종사하던 중소기업들 대부분이 문을 닫게 되는 바람에 나도 황토공방을 접고 민들레대안교회라는 이름으로 작은 교회 운동을 시작했다.
대안교회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화륜 목사

-이름이 독특한데

화륜이란 세상의 이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스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이다. 물질과 집안으로부터 떠나 진정한 목회를 하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하모니카를 잘 다루는 월연 스님으로부터 새 이름을 받았다.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타 종교인이 죽어 천국가면 불편해 할 정도로 배타적인 경우가 많다. 종교인은 다 도반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활동했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처럼 이웃을 살펴야 한다.

-가나안 성도의 특징은

이들은 기독교를 버린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현 교회의 신앙 행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목회자의 인격과 불투명한 재정 운영 등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교회를 떠나온 신앙의 유랑인들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목사를 도와 교회를 일으켜 세워 십자가 제단 앞에 많은 이들을 인도한 충실한 예수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교회를 떠나온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면서 자신들의 자녀들은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산사의 고요한 대웅전 목탁 소리와 향 내음을 몸으로 거부하는 신자로 감히 타종교로의 개종은 엄두도 못내는 사람들이다. 작은 교회에 나가려해도 과거 개척교회부터 시작해 큰 교회를 이루기까지 고생한 것이 떠올라 발길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예수의 본질을 이해시켜 내 교회의 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자리로 다시 복귀시키는 것이 민들레 교회가 지향하는 것이다.

-작은 교회가 대안교회의 답인가

출발 동기가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교회의 목사가 직업이 아닌 헌신자로 이웃을 섬기며 평생을 살겠다는 각오라면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잘 키워 또 하나의 큰 교회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대안 교회가 아니다.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2012년 기준으로 교회가 편의점보다도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한국교회는 포화 상태라는 의미다. 성공을 꿈꾸며 작은 교회 운동을 시작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대안교회의 모델은

아직 확실한 것이 없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직은 󰡑이것이 그래도 정답’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 부부가 자리 잡은 이곳은 충남 지역에서 가장 저렴하게 나온 농가를 낙찰 받아 수리한 집이다. 우리는 한 달 수입 65만원이 전부다. 다행히 수학을 잘해 동네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감사 헌금으로 받는 것이 전부다. 누군가 교회가 독립하려면 목공을 배워 수입원으로 삼는 것이 좋다는 말에 6개월간 목공예를 배워 작은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기독교 문화는 다른 종교보다 다양성이 없어 마땅히 만들 만한 성물이 없다. 그렇다고 십자가 장사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귀중한 3가지 축복을 받았다. 첫째가 독립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고, 둘째가 자식들이 독립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며, 셋째는 건강한 몸을 허락하신 것이다.

-세월호 나무 십자가는

작년 세월호 희생자들이 우리로부터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문제가 정치적 문제로 비화됐다. 더욱이 세월호의 지속적인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단체에게는 후원이 끊겼다. 그래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외양간을 정리해 목공용 기계 한 대로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해 희생자 304명과 김관흥 잠수사 이름을 새긴 십자가를 만들었고 그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다. 희생자 수만큼 제작해 대표에게 전달했다. 누구는 왜 하필이면 십자가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기독교가 한 것이 무엇인가 자문하면서 누군가의 가슴 속에는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십자가를 만드는 작업은 타종교의 천도재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불교의 스님들은 목탁이 부서질 정도로 희생자를 위해 몇 차례 천도재를 올렸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갔다’는 말로 퉁 치듯이 지나갔다. 영생이란 남은 사람들이 먼저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위안부 할머니와 소외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십자가를 만들고 있다. 

-십일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반 사회단체도 공동체를 운영하려면 회비가 필요하듯이 십일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십일조를 율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원래 십일조를 거두는 이유는 어려운 이웃과 나누기 위함이다. 십일조 강요가 일반 교인들에게는 뜨거운 감자다. 신학교에서는 십일조를 절대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러나 현장으로 나가면 절대 법으로 강요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기 힘든 노동자가 가지는 십일조는 생명수와 같은 것이지만 건물 가진 부자 신도가 내는 십일조의 의미는 다르다. 어렵게 사는 이웃에게까지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 촛불 점화의식을 통해 참석자들이 자신을 정화하고 하나님과의 끈을 이어준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대형교회의 선교방식은

대형교회와 재벌의 형태가 같다. 버스를 돌리면서 타 지역의 주민까지 전부 한곳으로 모이게 하는 방법이나 지역마다 지점같이 작은 성전을 만들어 그곳에서 영상을 통해 큰 교회 설교를 듣게 하는 방식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적어도 자기 거주 지역의 교회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 그나마 군소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이다. 대형마트가 버스를 돌려 소비자들을 끌어오는 방식이나 대형교회가 원거리 주민들까지 모으는 행위는 독과점 행위 혹은 상도의도 없는 자본주의의 병폐와 같은 것이다.

-예배의식이 기독교와는 다른 것 같은데

나는 성공회의 전례가 부럽다. 기독교가 가톨릭으로부터 나올 때, 모든 것을 폐하고 나온 것이 무척 아쉽다. 그래서 예배는 성공회 전례를 차용했다. 촛불의식이 나름 나를 정화하고 하나님과의 끈을 이어준다는 믿음이 있다. 기독교는 말씀과 책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신비의 끈을 체험하는 것도 예배에 참석한 이에게 감화를 줄 수 있다.

생명같이 지키라는 예배시간도 비교적 자유롭다. 농촌이라는 지역을 감안해 성도들과 의논한다. 농사일 때문에 바쁘다면 저녁에 그 농가를 방문해 예배를 올리기도 한다. 무조건 말씀을 전하는 일방 통행식 예배에서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전하고 이해하는 대화의 시간이 되도록 노력한다.  

-탈종교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기독교는 경제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비약적 성장이 멈춘 시대다. 만약 우리 경제가 또다시 성장한다면 교회도 성장하겠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중 하나가 교회가 지역 사회의 정신적 중심 센터가 돼야한다. 그것을 성공회가 잘 하고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을 모두 교회가 중심이 되고 죽은 이의 기일이 오면 그 후손이 안 와도 후손 대신 추모예배를 드린다. 마치 불교에서 천도재를 올리는 것처럼, 그것이 모든 이가 떠난 농촌에 후손과 조상의 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회가 단순 말씀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 센터가 돼야 한다.

-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에서 조금 산다고 하는 집안은 돌아가신 자기 선조들의 초상화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제사의식이다. 기독교 일부 교파도 자기 조상을 우리 족보 못지않게 여기며 자기들의 뿌리를 찾고 죽은 자기 조상이 좀 더 나은 세계로 가서 살기를 기대한다.

성공회는 제사라는 우리 문화를 존중하며 제사를 조상숭배로 보지 않는다. 제사라는 것은 가족 공동체가 친교와 화합을 통해 자기 조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일에도 별세자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는 조금 전까지 살았던 혈육도 돌아가시면 하루아침에 귀신 취급한다. 그러나 고향 등진 사람, 선산에 산소만 있는 사람 등을 대신해 교회가 종갓집 역할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센터로 자리 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

이곳은 언제든지 농촌형 공장지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불교의 의식을 도입한 암자교회를 만들고 싶다. 도시 생활에 지쳐 있는 사람, 신앙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등을 대상으로 상담을 해주고 싶다. 또 많은 여성이 낙태로 인한 죄의식을 갖고 홀로 가슴에 품고 고통당하고 있다. 특히 과거 태아가 남자가 아니라고 낙태시킨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죽였다는 죄의식으로 인해 심적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천도재를 지낸다. 이런 점에 착안해 어머니 뱃속에서 죽은 태아와 엄마가 화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을 찾고 싶다. 일본의 경우 유산 혹은 낙태시킨 영혼(水子靈)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위로하는 의식이 있다.

정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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