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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버찌를 따러 갈 거예요 붉푸르게 얼룩진 것들만을 골라 주머니 가득 담을래요 버찌, 서로를 베껴 쓰는 빨강 빨강들 환한 밤 내내 버찌를 가득 물고 곤란한 키스를 나눌까요

꽃도 잎도 벗어던진 버찌는 오늘, 그저 한 알의 유희

아직 그의 버찌는 익어 터지지도 못했는데 진물 흐르도록 섞이지도 못했는데 뭉쳐진 초록만 베어 물고 계절이 다 지나가요 우리, 너무 일찍 수확되었죠 그의 입속에 내가 가진 물감을 한가득 풀어놓고 싶은, 얼룩지는, 버찌의 시간인데요

-신작시집 ‘뜻밖의 바닐라’(문학과지성사)에서

◆ 이혜미 시인 약력

△1988년 경기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보라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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