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현대인의 외로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 상황을 보다 편리하게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가까이 다가온 스마트한 삶과 함께 AI와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포스트휴먼 시대의 고민도 함께 등장했다. 스마트기기가 인간의 많은 면을 대체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규정 가능한가. 이제 AI가 소설도 쓰는 마당에 인간의 창조성을 넘볼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영화 ‘그녀(Her)’(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다가올 2025년을 상정하고 음성인식 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인간처럼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를 통해 AI가 인간과 깊은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내와 성격 차이로 이혼하고 외로운 상황에서 접하게 된 사만다와의 교류는 편지 대필업무가 직업인 테오도르에게 일을 재빨리 처리해주는 것은 기본이며, 달콤하고 상냥스러운 목소리로 사랑이 시작될 때의 행복감도 흠뻑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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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
영화 속 이야기지만 광고에서 보듯이 인간과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누는 AI 음성인식 디바이스는 먼 미래에서나 생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포스트휴먼은 점점 인간을 닮아가서 인간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급기야 인간을 조종하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포스트휴먼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떤 환경이든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며, 행복을 만들어내는 존재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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