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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응원하는 축구팀 하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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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6 21:27:56 수정 : 2017-06-16 23: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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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잘해서 응원하는 게 아닌 출생과 엮어져 동질감 느끼는 것 / 함께 실패 딛고 성취감 얻으며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디딤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아시아 예선이 점입가경이다. 월드컵 진출을 당연시했던 팀들은 탈락을 걱정하고 있고, 탈락을 체념하고 받아들였던 팀들에는 기사회생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실 축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지, 본선에 못 나가도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난리인가 할 것이다. 2018년 여름 내내 지속될 그 끔찍한 상실감만 극복하면 말이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 여름 한 달 동안 응원할 팀이 없는 상실감 이상의 깊은 상흔에 축구의 상징성은 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팀 리버풀 FC의 전설적인 감독 빌 섕클리는 축구에 관한 한 다음과 같은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축구가 생사의 문제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태도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축구는 생사의 문제보다 훨씬 훨씬 더 중요합니다.” 생사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축구라. 섕클리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필자가 믿기에 축구만큼 평등한 운동도 없다. 축구만큼 경제적으로 열악한 동네나 나라의 팀이 오로지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 부유한 동네나 나라의 팀을 물리쳐 자신의 동네와 나라에 눈물 나는 자부심을 북돋워 줄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화됐다 하더라도 축구는 여전히 낡아빠진 공 하나만 있으면 바닷가 모래밭과 동네 골목길, 먼지 풀풀 나는 학교 흙바닥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고, 여전히 과학과 통계보다는 상상력과 혼이 중요한 경기이며, 한 사람의 영웅보다는 서로를 믿고 헌신하는 여러 명의 노력이 중요한 운동이다. 그렇기에 축구는 가난한 동네가 부유한 동네를 이길 수 있고, 억압받고 피폐한 나라가 부강한 나라를 이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그런데 축구가 생사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는 데에는 또 고려할 점이 있다.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은 나와 함께 자라나는 팀이라는 점이다. 축구에만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자신의 동네 팀에 대한 어릴 적부터의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이다. 축구팬은 어릴 때 아버지 손 붙잡고 간 축구경기장에서 멋도 모르고 처음 응원하게 된 그 팀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계속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 팀의 성장이 생사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이 축구라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축구는 운동경기뿐이 아니라 문화, 더 나아가 삶의 일부분 아니 전부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축구는 섕클리 감독의 말처럼 ‘생사의 문제보다 훨씬 훨씬 더 중요한’ 나의 분신이 된다.

나는 영국 유학시절인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경기가 끝난 다음날 동료 대학원생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너희 나라 꽤 매력적인 축구대표님을 가졌더구나. 한국 은근히 매력적이야.” 매력적인 축구국가대표팀이 한 나라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그 논리가 매우 이상할 것이지만 한 동네와 나라의 축구팀에는 그 동네와 나라의 성격이 스며들게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말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축구팀은 잘하고 이겨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출생과 엮어졌기에, 그래서 나와 함께 성장하고 변해가기에 응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누구나 국가대표팀 외에도 응원하는 축구팀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그리고 지역 사회를 투영해서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축구팀 말이다. 강팀 말고, 유명하지도 않고, 돈도 없고, 잘 이기지도 못하는 그런 팀을 응원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그래야 익숙해진 실패를 딛고 조그만 성취에 감사하며 그 성취를 디딤판으로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그 팀과 성장을 같이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왕이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상상력으로 가득한 축구를 하면 더 좋을 것이다.

전인한 서울시립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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