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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300년간 이어진 호랑이와 군병들의 처절한 전투

입력 : 2017-06-11 09:00:00 수정 : 2017-06-11 09: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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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범 잡는 ‘착호갑사’ / 집채만한 범 출몰… 닥치는대로 횡포 / 사람·가축 400두 죽인 백호도 있어 / 국가적 대응 필요… 군병 전담팀 조직 / 즉시 현장에 투입… 활·조총으로 사투 / 日 ‘해수구제’책에 조선 호랑이 멸종
도심에 나타나는 야생동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불청객이다. 최근에는 주택가로 내려와 소동을 일으키는 야생 멧돼지가 뉴스에 단골로 오르내린다. 멧돼지는 위협적인 동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는 드물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하지만 멧돼지가 맹수인 호랑이로 바뀐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까. 만약 호랑이가 지금의 멧돼지처럼 도심 곳곳에 출몰한다고 가정해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할 것이다. 아마도 전국에 비상사태가 내려질 것이고, 국민들은 동시다발로 테러를 당한 듯 엄청난 패닉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과거의 우리 선조들에게 당면한 현실이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석사 감로도(1649년)
호랑이가 사람이나 가축을 해치는 것을 호환(虎患)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호환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조선 사람은 일 년의 절반을 호랑이 잡으러 다니고, 나머지 절반은 호랑이에 죽은 사람 문상하러 다닌다.” 중국 사람이 보기에도 조선에는 호랑이가 많았고 피해도 컸다는 이야기다. 호환이 심할 때는 한 지역에서 연간 수백명이 호랑이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렇듯 호환은 민생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였고,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대응을 필요로 했다. 
호랑이는 17∼19세기 산신도와 민화, 판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호랑이에 맞선 군병들

옛 기록에는 호랑이를 죽이거나 포획하는 것을 ‘착호(捉虎)’라고 했다. 조선 전기에는 호랑이 잡는 특수 군인인 착호갑사(捉虎甲士)와 착호장(捉虎將)을 두어 대응하였다. 그러나 활과 창만으로 무장한 이들은 오히려 호랑이에게 쫓기는 사냥감 신세가 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에는 호랑이를 잡는 주체와 방법이 바뀌었다. 훈련도감의 군병들이 호랑이를 제압하는 선봉에 서서 맹위를 떨쳤다. 이후 약 300년간 호랑이와 군병들이 벌인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훈련도감 군병들의 착호에 관한 기록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훈국등록(訓局謄錄)’, 즉 과거 도성의 수비를 맡았던 훈련도감에서 작성한 업무일지에 자주 나온다.

착호는 훈련도감 군병들에게 새로운 임무였고, 이들은 호랑이가 나타나면 즉시 현장에 투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생산된 조총이 자신을 지키고 호랑이를 퇴치하는 믿을 만한 무기였다. 조총은 재래식 무기보다 살상력이 강하고 명중률이 높았기에 이전보다 훨씬 신속하게 호랑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구한말 서울 외곽에서 카메라에 잡힌 호랑이 사냥꾼들. 한 손에는 곰방대를,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있다.
영국인 허버트 폰팅 촬영
◆호환은 재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최초의 호랑이는 태조 1년(1392) 윤12월 자에 기록된 도성 안에 출몰한 호랑이다. 한양의 백성들과 첫 대면을 한 이 호랑이는 한양천도 이전부터 백악산과 인왕산 일대에 살고 있었다. 이곳의 터줏대감이던 호랑이들은 도성 안을 빈번히 출입하였고, 심지어 궁궐 안까지 공포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한양 어디든 호환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남장사 소장 감로도(1701)

호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백성들이다. 인명피해에 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호환이 심한 해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피해를 입었다. 예컨대 선조 4년(1571) 10월, 하얀 눈썹을 한 늙은 백호(白虎)가 지금의 고양시 등지에 출몰하여 사람과 가축 400여 두(頭)를 죽였다고 했다.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에 분노한 선조는 호랑이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서 대규모의 사냥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아쉽게도 그 이후의 상황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호랑이 잡는 매뉴얼

조선 전기에는 착호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호랑이 잡는 매뉴얼인 절목(節目)을 자주 만들었다. 일종의 시행세칙인 절목에는 호랑이 퇴치에 관한 최신 정보들이 소개되어 있다. 예컨대 사람이 직접 호랑이와 대면하지 않아도 될 함정과 궁노(弓弩), 기계 등으로 호랑이 잡는 것을 적극 권장하였다. 또한 지방에서는 착호인(捉虎人)을 지정해 두었다. 이들은 평시에 생업에 종사하다가 수령이 소집령을 내리면 바로 호랑이 포획에 나서게 하였다. 이를테면 호랑이를 퇴치할 예비군제도를 운영한 셈이다.

시행세칙에는 호랑이를 잡는 군병들이 경계해야 할 항목도 나와 있다. 예컨대 호랑이를 쫓는 추격전이 벌어질 때면 군병들이 논밭을 망가뜨리기도 했고, 민가에 머물며 백성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끼쳤다. 이렇게 되면 군병의 폐해가 맹호보다 더 심하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따라서 정조 임금은 도성 안에 호랑이가 들어오면 도성 밖 먼 곳으로 몰고 나간 뒤 거기에서 잡도록 하여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였다. 

◆포상과 실적

훈련도감 군병들이 호랑이를 잡으면 후한 상을 주었다. 착호는 군병들의 당연한 임무일 텐데, 왜 별도의 상을 주었던 것일까. 시상은 착호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착호는 위험을 무릅쓰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포상이 없거나 미약하면 그 실적도 매우 낮았다.

그러나 포상이 잘 이루어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조연간의 일이다. 죽은 호랑이를 앞에 두고 훈련도감과 금위영의 군사들이 공적을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가 자신들이 먼저 총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는 주장이다. 조총이 거의 동시에 발사될 경우 누가 먼저 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에 정조는 군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동일하게 상을 주어 애매한 상황을 매듭지었다. 이후에는 호랑이에게 재방, 삼방까지 총을 쏜 자들에게만 상을 주는 규정을 만들었다. 삼방 이후에 맞힌 것은 호랑이의 숨이 이미 끊어진 상태이므로 시상에서 제외하였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호환의 공범

일제강점기의 통계자료를 보면서 베일에 싸였던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 조선 팔도를 호환의 공포로 몰아넣은 주범은 호랑이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호랑이 외에 다른 공범이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표범으로 확인된다. 한반도에 호랑이와 표범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역사가 매우 오래다. 놀랍게도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에도 호랑이와 표범으로 보이는 동물이 함께 등장한다. 줄무늬는 호랑이, 점무늬는 표범으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통계를 보면, 표범의 개체 수가 호랑이보다 훨씬 많았다. 예컨대 1919년에서 1924년까지 6년간 전국에서 호랑이와 표범을 포획한 수치를 보면, 호랑이가 65마리인데 표범은 385마리에 달했다. 표범이 호랑이의 6배에 이른다. 19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면 표범의 개체 수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호환의 혐의를 호랑이 혼자서 모두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대호.

◆호랑이, 역사의 막을 내리다

훈련도감이 해체된 1882년 이후 약 30년간은 민간의 전문 사냥꾼들이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호랑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 시행한 ‘해수구제(害獸救濟)’책에 따른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호랑이의 개체 수는 멸종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임진왜란 이후 약 300년간 도성을 지킨 훈련도감 군병들의 삶은 최근 ‘훈국등록’의 연구로 인해 되살아나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착호는 군병들이 목숨을 담보로 호랑이와 사투를 벌였던 생생한 이야기들이다. 백성들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민생치안을 위해 호환은 국가에서 대응하였고, 그 중심에 훈련도감 군병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착호에 관한 놀랍고 충격적인 기록들을 들추어 보자면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가 순간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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