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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관찰자 그 힘만으로도 세상 바꿀 수 있어 …

입력 : 2017-05-25 21:25:23 수정 : 2017-05-25 21: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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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 / “체 게바라가 생부인걸 25살에야 알게 됐죠 / 한국의 시인들에겐…정치서 멀어지세요”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Omar PEREZ LOPEZ·53)의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로페즈’는 그의 어머니, ‘페레즈’는 그를 키워준 아버지의 이름이지만, ‘오마르’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완성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의 흔적이다.

어머니 릴리아 로페즈가 ‘체’로부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집을 선물받은 기념으로 그의 소생인 아이에게 ‘오마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하니, 이름 하나에 사랑의 역사가 그대로 깃든 셈이다.

오마르는 25살에서야 그의 생부가 체 게바라였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이번 포럼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공동개최한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의 광화문 교보빌딩 응접실에서 그를 만났다.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어요. 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쿠바는 중국이나 옛 소련 같은 사회주의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작가협회에 가입해서 작품활동을 하지만, 물론 나도 그 기관 소속이긴 해도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혁명가이자 시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피가 그를 시인으로 만든 건 아닌지 궁금해서 던진 첫 질문이었는데 선입견을 굳히기에 유효한 답이 돌아왔다. 왜 어머니는 그가 25살이 될 때까지 생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그는 “어머니 입장에서 민감한 사안이라 그랬을 것”이라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잡지와 인터넷에 충분히 많다”면서 더 이상 언급하길 꺼려했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쿠바 시인 오마르 페레즈 로페즈.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정치는 스포츠와 같을 뿐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지구촌 팬들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군사독재 시절을 지나오면서 혁명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가 그를 더 추앙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놓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더니 그는 “그 마음 자체로 충분하다”면서 “각자 자신의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게 더 현명한 일”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쿠바에서는 주로 번역가로 생계를 꾸려온 편이다.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함께 하바나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해 영어는 물론 이탈리아어와 네덜란드어까지 해박한 언어 천재에 가깝다. ‘신성한 것’ ‘싸우는 고양이에 대해 아시나요?’ 등 시집은 7권 펴냈고 니콜라스 기옌 문학상, 쿠바비평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은 시와 동등한 무게를 지니는 그의 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한 어부가 다른 어부와 함께 가고 있다/ 한 갈매기가 어부들 위를 날아가는 다른 갈매기와 함께 날고 있다’는 그의 짧은 시 ‘무리’(Congregations)에 대해 물었다.


“자연의 그림을 묘사한 겁니다. 내가 살고 있는 하바나의 집 앞바다 풍경이죠. 자연을 보면 가끔 인간과 동물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종류의 ‘무리’ 같습니다. 먹는 거나 짝짓기를 하는 것이나, 가만히 있는 모습조차도 그렇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큰 메시지를 담고 있기보다는 관찰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는 프랑스인 ‘선’(ZEN) 스승을 만난 이래 승려가 된 시인이기도 하다. 술과 담배를 즐기면서도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는 스타일로 정통불교 승려와는 다른 차원이다. 쿠바에는 절도 없고 그를 따르는 신도도 없다. 그는 일본 ‘선’에 대해 20년 전 처음 접한 뒤 곧 빠져들었다고 했다. 하이쿠의 대가 바쇼를 좋아한다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주의국가에서 살아왔는데 체제가 그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변화가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체제가 믿음이나 사상을 강요할 수 있겠죠. 스스로 다른 걸 선택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체제의 ‘인질’로 살아왔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이념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는 시인이란 “관찰하는 사람”이라면서 “그 힘만으로도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의 영감은 우주에서 위성처럼 날다가 대기권을 뚫고 날아와 꽂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그는 “정치에서 멀어지라”고 했다. 그는 “정치는 스포츠와 같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는 없다”면서 “인류가 이상사회를 팽개치고 경찰, 군인, 은행, 비밀번호 따위 같은 복잡한 것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왔으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적도 인근 카리브해 섬나라에서 온 그는 정작 노장사상에 빠진 시인이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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