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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늘 마지막인 듯 다 쏟아내지만… 우린 또 볼레로 할 것”

입력 : 2017-05-23 20:54:01 수정 : 2017-05-23 2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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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음악 다른 몸짓… ‘쓰리 볼레로’서 다시 만난 김용걸·김보람
김용걸(오른쪽 사진)은 10살이 적은 김보람에 대해 “저보다 안무 경험이 많은 분이라 뭐 하나라도 배우고 싶었을 뿐 어리다고 느낀 적이 없다”며 “보람씨가 없었으면 우리 현대무용이 덜 재밌었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김보람 역시 “선생님처럼 안 쉬는 무용가를 처음 봤다”며 “정말 노력파”라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김용걸(44)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대 초반 국립발레단의 화려한 스타였다. 그는 스물일곱 나이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오페라발레단 최초 동양인 발레리노가 됐다. 견습생부터 시작해 5년 만에 쉬제(솔리스트)로 올라섰다. 같은 시기 현대무용 안무가 김보람(34)은 전남 완도에서 ‘춤추고 놀던’ 소년이었다. 가수 현진영을 보고 춤에 푹 빠졌다. 고교 시절 무작정 서울로 왔다. 백업댄스팀에서 7년간 활약했다. 닮은 꼴이 없는 두 사람은 훗날 춤으로 깊이 연결된다.

2011년 안무가와 무용가로서 ‘그 무엇을 위하여…’를 함께 만든 이들이 다시 한 무대에 선다. 이번에는 각자 안무한 작품을 들고 나온다.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쓰리 볼레로’를 통해서다. 이들과 현대무용가 김설진은 라벨의 ‘볼레로’를 놓고 각자 다른 세 개의 안무를 내달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다. 22일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서로 평행선을 걸어왔을 것 같은 이들은 의외로 인연이 깊었다. 김용걸은 “제 ‘볼레로’는 보람씨와 한 ‘그 무엇을 위하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럼 없이 말했다. 이 작품 역시 ‘볼레로’를 음악으로 썼었다.

“2011년 당시 보람씨가 제게 검정 양복에 선글라스를 쓰고 무대에 오르게 했어요. 그 상태에서 조명이 내리쏘이니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중심 잡고 공연을 해내려던 모습이 꼭 제가 살아온 길 같았어요. 보람씨 안무는 중간쯤 하면 집에 가고 싶을 만큼 힘들어요. ‘7분 더 해야 돼?’ ‘다 왔어, 다 왔어.’ 그리고 15분간의 공연을 끝냈을 때, 바닥에 누워 헉헉거리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김보람 역시 “용걸 선생님과 작업해 본 자체가 엄청나게 큰 영향”이라며 “뭔가 표본을 본 듯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용걸 선생님은 제 의도를 파악한 시간이 너무 짧아 신기하고 새로웠다”고 했다. 여기에는 김용걸의 숨은 노력도 한몫했다. “팔이 저리고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든” 안무를 연습하던 그는 중간에 프랑스로 2주간 가 있어야 했다. 연습을 쉬니 안무 순서를 자꾸 깜빡깜빡했다.

“당시 호텔이 4, 5층쯤이었어요. 베란다 너머에 물탱크가 있었는데 위쪽이 평평했어요. 떨어지면 바로 낭떠러지였죠. 깜깜한 밤에 발을 헛디디면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거기서 연습하면 순서를 안 까먹을 것 같았어요. 이건 미친 짓이야 하면서도 목숨 걸고 했어요.”

이런 절실함이 쌓여서인지 김보람은 “그 작품이 내 최고 볼레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껏 이 음악으로 데뷔작을 포함해 7편을 안무했다. 일본 발레만화 ‘스바루’를 보고 매료된 그는 2007년 ‘볼레로’로 안무를 짜봤다. 별 기대 없이 이를 이듬해 CJ영페스티벌에 출품했고, 최우수상을 받고나니 안무가가 돼 있었다.

김용걸도 ‘볼레로’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2000년대 중반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볼레로’의 시금석처럼 유명한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를 군무로서 직접 췄다. 그런데 “별로 매력 없고 추기 싫었다”고 한다. 

“이렇게 10번 하고 다른 동작을 또 10번 반복하고… 언제 끝나나 싶었어요. 빨간 테이블 위에선 주역 혼자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내가 안무하면 이렇게 안 할 거야. 모두 다 주역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밑바탕으로 지난해 11월 첫 ‘볼레로’ 안무작을 선보였다. 이번 공연은 이를 매만진 버전이다. 결과에 만족하는지 묻자 그는 “만족한다”며 “처절하게 연습하고 준비하면 결과에 상관 안 하게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와의 작업도, ‘볼레로’와의 인연도 이번이 끝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항상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처절하게 하는데, 또 할 것 같아요. 내년에 이 음악을 들으면 또 다르겠죠. 제가 달라질 테니까요.”(김용걸)

“저는 마지막이길 간절히 원하긴 하죠. 해방감을 느껴보고 싶어요. 이제 정말 안 해도 되겠다 하는. ‘볼레로’에 대해 제가 무엇을 그리는진 모르지만 아직 부족한 느낌이에요. 저는 동작이 소리로 들리는 ‘눈으로 듣는 음악’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제 안무는 그 에너지를 계속 찾는 작업인 것 같아요.”(김보람)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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