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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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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23 00:55:31 수정 : 2017-05-23 0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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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꿈이…” 킹 목사 연설 역사 움직여 /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文의 포부 기대
모든 역사의 구비마다 말이 있었다. 어떤 말은 가공할 만한 적의와 격정적 분노로 전쟁터를 피로 물들이게 했고, 어떤 말은 평정과 박애의 기운을 확산시켰다. 어떤 말은 사람을 속이고 배신했고, 어떤 말은 믿음으로 스미고 짜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새롭게 꿈꾸게 했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말, 말, 말’(제임스 잉글리스)에는 말이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이 역사를 움직였던 다양한 말이 실감 있게 정리돼 있다. 대표적으로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메넬라오스의 분노의 말은 트로이를 피로 물들게 할 정도로 극렬한 복수의 말이었다. 반면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 캐내게 한 말이었다.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서 행한 연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의 하나로 꼽힌다. 100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환기시키며 시작하는 이 연설은 미국 인권운동의 획기적 분수령이 됐다. 킹 목사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의 평등과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악성 부도수표로 비유하면서, “인종차별이라는 암울하고 황량한 계곡에서 빠져나와 인종평등이라는 햇살 가득한 길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강조하면서 “모두를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함을 역설한다.

부당한 억압을 직시하되 증오의 잔을 마시는 방법은 안 된다고 했다. 품위와 절제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투쟁하되,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힘찬 물줄기처럼 흐르기 전에는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직면한 역경의 현실은 바뀔 수 있고 또 바뀔 것이라는 신념으로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말고 위풍당당한 자유의 종소리를 난타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불의와 억압에서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날이 오리라는 꿈이 있다고 했다. 차별의 불협화음을 넘어 진정한 형제애가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교향곡이 펼쳐지는, 그런 소망스러운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는 꿈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언젠가 골짜기란 골짜기는 높이 솟아오르고, 언덕이란 언덕과 산이란 산은 낮아지고, 울퉁불퉁한 곳은 모두 평평해지고, 구부러진 곳은 곧게 펴지면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을 모두가 함께 지켜보게 될 날이 오리라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문’을 열겠다는 새 대통령의 취임사 한 구절이 킹 목사의 연설을 떠올리게 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와 그 해결 기조를 명료하게 드러낸 메시지처럼 들렸다. 정녕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아니 꼭 그렇게 돼야 할 것이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겐 꿈이 있다면서 위풍당당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땅에서 진정 사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살아보는 꿈을 말하는 국민의 간절함이 반영된 말이기 때문이다. 먼 훗날 역사에서 ‘절망의 산에서 희망의 돌멩이’를 캐내게 한 말로 기록되길 바란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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