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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소설의 다른 말”… 해학·익살·감동 ‘한가득’

입력 : 2017-05-04 20:19:41 수정 : 2017-05-04 20: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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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소설집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 삼남매·아내와 더불어 만든 이야기 / 월간지 3년 연재… 45편 모아 펴내 / 아이들 동심 담겨 마음 따뜻해지고 엄마라는 이름의 아내 보며 ‘숙연’ /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 지키는 ‘별자리’ / 슬픔에 빠져 있는 가정에 힘 되길 “소설은 때론 삭제되고 지워진 문장들을 종이 밖으로 밀어내며 완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한 편의 소설이 온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가족 이야기는 그런 소설과 많이 닮아 있다.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만 같다.”

소설가 이기호(45)가 ‘가족소설’이라고 명명한 소설집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마음산책) 서두에 붙인 말이다. 월간지에 3년 넘게 연재한, 아이들과 아내와 살아가는 짧은 이야기 45편을 모은 책이다. 해학과 익살과 엄살에 감동을 동반하는 글 솜씨가 탁월하다. 읽다 보면 헛웃음을 웃다가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물까지 맺히는 꼭지들이 많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해학과 감동을 능청스럽게 담아낸 소설가 이기호. 그는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만 같다”고 썼다.
마음산책 제공
‘다섯 살, 세 살, 두 아들이 함께 집에서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아, 이제 곧 지구에 커다란 위기가 닥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슬금슬금 들 정도’였는데 어느 날 아내가 심하게 냉랭해서 자꾸만 파고들어 확인했더니 셋째가 들어섰다고 했다. 그날부터 남편은 최대한 자숙 모드에 돌입하면서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엄마 곁에 되도록 가지 말 것, 엄마 등엔 올라타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총을 쏘지 말 것. 아이들은 그런대로 잘 따라주다가 “근데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묻는다. 아빠의 대답. “엄마 몸에 코코몽이 들어왔거든…… 코코몽이 아직 너무 작아서…… 그래서 우리가 잘 지켜줘야 해.”

그렇게 들어온 코코몽이 세상에 나올 때 아내의 눈물겨운 배려 때문에 남편은 그 딸마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생겨난 딸까지 합쳐 어린 삼남매와 이들을 치다꺼리하는 아내와 더불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이 소설집을 채워나간다. 학교 선후배 사이이자 조교와 학생 관계로 처음 만난 여덟 살 연하의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도 깍듯이 존댓말을 쓰다가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 이름과 남편 이름을 번갈아 불러댄다. 남편은 “억울한 것도 없었고 부당하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는데 “그만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의 모습을 옆에서 찬찬히 바라보고 있자니, 아아, 이건 나이고 뭐고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위대하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들이었단 소리”라고 쓴다.

아빠에게 “아들들이 친구 같은 느낌이라면 딸아이는 애인 같은 설렘을 주고, 사내아이들이 이제 막 심어놓은 묘목 같다면 여자아이는 그해 처음 내리는 봄비 같은 존재”이다. 그 딸에게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물으면 “작은 별!”이라는 신나는 대답을 듣곤 했는데, 조금 떨어져 살다가 간만에 만난 딸은 “작은 빵!”에서 왔다고 대답을 바꾸었다. 이 아빠, “아아, 나는 왠지 더 열심히 직장을 다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고 귀여운 엄살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와 자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절에 갔다가 온 날 아이가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다 말고 내내 울었다는 사연. “아빠랑 헤어지기 싫다고, 죽으면 아빠는 부처님한테 가고 자기는 예수님한테 가야 한다고…….” 아내가 해주었다는 대답. “언젠가 우리 모두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하지만 별들처럼 다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남편이 조용히 아내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말, 예쁘다. “별자리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거…….”

속담집을 읽고 “세살 버릇은 여름까지 간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직 한글에 서툰 아이에게 아빠는 “그래, 여름까지 가자”고 말없이 꼭 끌어안아주었다. 이기호는 이 연재를 삼십년간 하기로 월간지와 약속했는데 2014년 4월 16일, 공교롭게도 둘째아이의 생일과 일치하는 그날의 참극을 목도한 뒤로는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아비와 어미가 자식을 잃고 슬퍼하고 있을 때, 그때 차마 내가 내 새끼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쓰기 힘들었다고 서두에 고백했다. 에필로그에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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