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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로 교육자로… 불꽃 같이 살다간 청년 지사 ‘고종 특사’ 이상설의 진면목

입력 : 2017-04-22 03:00:00 수정 : 2017-04-21 18: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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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근·이상래 지음/이채/1만5000원
돌아오지 않는 밀사 -이상설 이야기/강철근·이상래 지음/이채/1만5000원


청년 독립지사 이상설(李相卨)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하면 ‘이준 열사의 할복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정작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어떤 경로로 누구를 왜 특사로 파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헤이그 밀사의 중심에는 정사 이상설이 자리했다. 그는 부사 이준, 통역을 겸한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로 잠입했으나 실패한 사실만 부각되었다.

이상설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만 알려져 있다. 그보다는 훨씬 많은 분야에서 헌신한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연해주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국내외 의병을 단일화(13도의군)했으며, 최초의 망명정부(대한광복군정부)를 세우기도 했다. ‘해외 최초의 신교육 기관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본거지’인 만주 서전서숙 설립자였다.

또 근대 수학과 과학 교육의 기틀을 세우는 등 교육자로 활동했다. 그는 일제에 잡혀 사형 언도를 받고 죽는 날까지 이국땅에서 망명 독립투사로 살다 시베리아에서 산화했다.

저자는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힘겹게 돌을 정상을 들어 올리는 청년 의지를 가지고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댕기고 간 인물”이라면서 “일제의 방해 공작으로 헤이그 특사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지만 그 역사와 의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평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 24일 이상설을 평가한 기사를 냈다. “이상설은 대한에서 학문으로 제일류이다. 일찍이 학문적 소양으로 재성이 뛰어나고 조예가 깊어 동서 학문을 거의 다 밝게 깨닫고 정밀하게 연구하므로 성리학과 문장 그리고 법률, 정치, 산술 등의 학문이 모두 뛰어나고 풍부하다.”

(사)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21~22일 이상설 선생의 고향 충북 진천에서 ‘민족독립운동가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제100주년 추모식’을 마련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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