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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랑법·치열한 문제의식… 더 거세진 여풍

입력 : 2017-04-20 20:46:00 수정 : 2017-04-20 2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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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 들여다보니 한국 작단의 젊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쓰는 어떤 사람들일까. 김승옥 황석영 최인호 등이 등단하던 무렵의 ‘젊은’ 기준이란 20대 초반의 빛나는 감성이었지만, 이즈음은 40세 넘어 등단하는 작가들도 많아서 그 기준은 현격히 허물어진 편이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 중단편을 대상으로 시행해온 ‘젊은작가상’은 이즈음 젊은 작가들의 위상과 작품세계의 일단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샘플이다. 이달 초 출간된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7편이 실려 있거니와 수상작가들은 모두 30대이고, 대상 수상자를 빼고는 모두 여성인 점도 이채롭다. 난해한 형식 실험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기성세대의 독법을 교란하는 작품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애잔하고 아름다워서 선배 세대 작가들을 필적하는 고전적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도 있고,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사랑법과 이즈음 젊은 세대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포진해 있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대상 수상작 임현(34)의 ‘고두’(叩頭)는 시대를 막론하고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을 진지하게 고발하는 작품이다. 고교 윤리교사인 ‘나’는 여학생 제자와 ‘자고’ 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걸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겠니? 진짜는 머리를 조아리는 각도, 무릎을 꿇는 자세에서 오는 것들 아니겠니?” 얼핏 듣기엔 막장이지만 이 자의 변명을 따라가다 보면 너나없이 우리 안의 ‘속물’들이 드러나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최은미(39)의 ‘눈으로 만든 사람’도 인간들의 부실한 속성을 절망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으로 만든 사람은 녹으면 형체가 사라지지만 그 속에 깃든 본질은 그대로 남아 다른 모습으로 변형될 따름이라는 허무가 아득하다.


김금희(38)의 ‘문상’에는 ‘조용히 우는’ 사람들이 나온다. 무얼 해도 결국 실패만 선택해온 꼴인 우울한 희극배우. 그가 자신이 기획한 연극에 출연할 여배우 ‘양주임’에 대해 시시콜콜 그녀의 옛 애인에게 말해준다. 옛 애인 ‘송’은 ‘양’이 ‘조용히 우는 여자’였음을 뒤늦게 알았고, 우울한 희극배우가 그녀와 ‘조용히 우는 사이’라고 말하자 그는 광대처럼 웃었다. 슬픔의 내압을 투명하게 다스릴 줄 아는 김금희 특유의 능청이 여실히 빛나는 단편이다. 이어지는 백수린(35)의 ‘고요한 사건’에는 능청도 위악도 없는 고즈넉하고 정직한 시선만 있지만 울림은 작지 않다. 재개발지구 ‘소금고개’ 동네 성장기가 그려지거니와 그 동네에서 발견한 우정과 사랑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눈에 덮여 미봉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회한을 적는다. 화자는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소설가의 숙명을 말한다.


강화길(31)의 ‘호수 - 다른 사람’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조리를 소름 끼치게 묘파한 ‘여성소설이기 이전에 범죄소설이고, 동시에 긴밀하게 구성된 심리소설’이다. 시종 단문으로 끝까지 호흡을 가쁘게 만드는 흡인력과 예리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최은영(33)의 ‘그 여름’과 ‘천희란’(33)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성소수자의 사랑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다. 최은영의 작품은 레즈비언의 세계를 다루는 화제성보다는 순수한 사랑의 느낌들을 눅진하고 곡진하게 드러내는 미덕이 승한 편이다. 그 사랑의 진정성이 숨 막혀서 젠더의 문제는 오히려 배경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다섯 개의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천희란의 단편은 여성끼리의 사랑이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의 절망을 진화와 생장의 과학적 법칙을 동원해 잔잔하게 파고든다.

이번 수상작품집에는 각 단편마다 작가노트와 함께 동세대 젊은 평론가들의 해설이 붙어 있다. 말미에는 이 작품들을 뽑은 선배 세대 심사위원(권희철 김연수 김인숙 남진우 하성란)들의 소감도 실려 있어 작금 한국문학의 한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실험적인 작품과 튀는 감성들만 더 부각시키는 문단의 관행 때문에 ‘젊은 작가들’ 전반으로 확대된 왜곡된 선입견이 작동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젊은 작가 백수린은 “삶이 이렇듯 나의 해석에 의해 끊임없이 다시 쓰이는 서사일 뿐이라면 소설을 쓰는 행위는 결국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니냐고 후기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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