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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술탄 꿈꾸는 터키대통령과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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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1 22:00:27 수정 : 2017-04-11 22: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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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독재로 EU와 극렬대립
유럽발 변화에 능동 대처해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70년이 넘어선 현재의 국제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리더십의 변화과정을 묘사하고 있는 패권관계의 ‘장주기론’(Long cycle)은 100년의 역사를 4단계로 나눠 접근하고 있다. 1단계는 세계적 차원의 전쟁 이후 국제적 혼돈상태 시기, 2단계는 압도적인 패권국가의 등장과 지배 시기, 3단계는 패권국가의 지도력에 대한 도전국가 출현 시기, 4단계는 패권국가의 쇠퇴와 소멸 시기다.

이를 바탕으로 예측해 보면 지금의 국제상황은 3단계 정도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국가와 지역협력체가 등장하고, 국제사회를 관리하는 미국의 통솔력에도 그만큼 과부하가 걸리는 단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국제사회는 빠른 변화의 물결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자국 중심주의와 국내 산업 보호와 자본 축적이라는 신중상주의적 국가정책이 발현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보편성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강량 한국문화안보연구원 특별연구위원
이런 가운데 21세기 ‘술탄’(지역 군주)을 꿈꾸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대통령의 공세적인 행보는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적 보편질서에 역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에르도안은 이스탄불 시장직을 발판으로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해 2002년, 2007년, 2011년의 총선에서 연속 승리했고, 총리직 4번 연임을 금지한 규정에 막히자 임기 5년 단임제의 대통령제로 헌법을 개정해 2014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에르도안은 이슬람 종교수업의 의무화, 주류판매 금지, 여성의 히잡 착용 등과 같은 이슬람주의 원리를 고착화하고 있는데, 이는 이슬람을 국교로 선정하지 않고 술탄제를 헌법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터키의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다수의 중산층과 대학생들은 에르도안의 이슬람주의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2016년 군부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후 또 다른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도모하고 있다. 개헌안에는 총리직 폐지, 두 개의 부통령제 신설, 법원 및 대학총장에 대한 인사권,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간편화 등이 포함돼 있는데 명백하게 독재적 요소가 다분하다. 오는 16일 개헌투표에서 에르도안이 승리할 경우 그는 명실공이 2029년까지 터키의 술탄으로 집권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개헌투표를 앞두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에서 투표권을 보유한 터키 국외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한 관제집회가 주도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유럽국가들은 독재로 치닫는 터키정부와 극렬히 대립하고 있다. 문제는 터키·유럽연합(EU) 간 난민협정을 파기하고 이슬람주의국가를 공고화하고 있는 에르도안으로 인해 EU 탈퇴와 이슬람 혐오를 표방하고 있는 유럽 내 극우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과 독일에 대해 보다 많은 안보분담금을 종용하고 있는 미국의 압력과 EU·터키와의 난민협정 폐지 이후 유럽 내에서 급속히 늘어나는 난민 유입이 가속화되는 한 EU국가의 결속력도 그만큼 떨어질 것임이 자명하며,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파급 효과와 함께 EU의 결속력 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제사회의 변화를 예견하는 패권관계 장주기론이 보여주듯, 국가와 지역 간에 상호작용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문제는 어떻게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국제분쟁 요소의 관리 여부가 결정된다. 분명 지금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으며, 이는 구미권과 아시아권 전역에서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의 핵 위협과 중·러·일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한국은 대외현상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향후 나타날 터키의 변화와 이로 인한 유럽발 변화요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적 시나리오를 항시 준비해 둬야 하겠다.

강량 한국문화안보연구원 특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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