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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학부모총회 시즌이다"… 워킹맘 ‘잔인한 계절’

입력 : 2017-03-22 18:21:01 수정 : 2017-03-22 19: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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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없지만 학부모총회 주말에 안 될까요"…워킹맘 참석 스트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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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신모(44)씨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총회에 참석하려고 반차 휴가를 낼 생각이다. 한창 회사가 어려운 시기라 업무가 많지만 “학부모총회에 빠지면 아이를 위한 학교생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주변 엄마들의 전언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신씨는 “회사 눈치가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직장에 다니느라 안 그래도 다른 아이들만큼 아들을 챙겨주지 못해 불안한데, 학부모총회에 가서 다른 학부모들 연락처라도 받아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연중 한 번 열리는 학부모총회는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 아이의 학교생활을 두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는 행사인데,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들어 개최된다. 그것도 주중에 열리는 만큼 신씨와 같이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는 회사의 급한 사정 등으로 눈치를 보기 일쑤이고, 재량껏 참석하는 자리인 데도 사실상 '필참'을 강요받는 등 부담이 크다는 전언이다.

◆학부모총회 중심으로 ‘학교생활 정보의 장’ 형성

참석이 여의치 않은 학부모들은 때때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총회 때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는데, 이들은 불참하면 학교 행사나 정보는 물론이고 자녀교육에 대한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두 아이를 둔 유모(42)씨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후 첫 학부모총회에 나가지 못했다가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지난해 아들의 총회 날과 어머니의 유방암 수술이 겹치는 바람에  참석할 수 없었다.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고, 연유를 묻고는 '아차' 싶었다.

아이는 “나를 빼고 친구들이 축구팀을 만들었다”며 울먹였다. 이에 같은 반 학부모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학부모총회 때 만든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이야기가 나와 축구팀을 만들었다”는 답을 들었다.

유씨는 “아들이 축구를 좋아하는데, 6월이 다 되도록 반에 그런 소모임이 있는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며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학부모총회가 열리는 3~4월에 학교행사 참여와 관련해 민원이 집중 제기된 점으로 미뤄보면 학부모의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학부모 학교 참여활동’ 민원을 분석한 결과 학부모들이 학교 참여활동과 관련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1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제기된 175건을 분석한 결과 학부모의 학교행사 참여와 봉사 관련 민원은 2014년 40건, 2015년 60건, 2016년 75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특히 학부모총회가 열리는 시기인 3∼4월 집중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는데, 2015년에는 70%가 넘는 43건이, 2016년은 44%인 33건으로 각종 조사됐다.

민원 내용 중에는 학부모총회 참석과 봉사활동 의무 할당이 부담된다는 신고가 많았다. 또 “초·중학교 학부모총회가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개최되어 어쩔 수 없이 큰 아이 총회에만 참석하게 됐다”며 동일 학군 내 초·중·고교의 총회 일정을 조율해 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자칫하면 ‘집에서 신경 쓰지 않는 아이’로 낙인

중학교 3학년짜리 딸아이를 둔 이윤희(46)씨는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아이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총회 때 학부모는 자녀의 좌석에 앉는 게 일반적인데, 교사가 비어 있는 자리를 보고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게 이씨의 걱정이다. 그는 “참석하지 않으면 낙인효과 같은 것이 발생할까봐 걱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어머니는 총회에 반드시 얼굴을 비춘다는 인식이 학부모 사이에서 공공연하다고 한다.

총회에서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을 총회로 발걸음을 하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학구열이 높은 서울 강남·송파구 등지에서는 반 네트워크를 통해 유명한 학원이나 과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고교생 자녀를 둔 김정숙(49)씨는 “얼마 전 입시 논술학원을 알아보던 중 반 모임 채팅방에서 논술 과외를 함께하자는 글이 올라왔다”며 “대기번호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논술 선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학부모총회 때 참석한 엄마들끼리 끝나고 차 한 잔 하며 친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게 되는 것 같다”며 이런 모임에 껴들여야 사교육 관련 쏠쏠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워킹맘 “총회 주중 저녁·토요일에 열었으면…”

교육부는 학부모총회와 관련한 민원 제기가 이어지자 학교에 학부모 수요를 미리 조사해 행사 시간대를 지정하고, 야간이나 주말을 활용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측은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주간 총회를 고집한다. 이렇다 보니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학부부모 사이에서 푸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최모(35)씨는 “휴가를 쓰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지난해 휴가를 쓴다고 회사에 말했다가 ‘학부모총회에 꼭 가야하는 것이냐’는 상사의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신씨 역시 “총회가 차라리 토요일 점심 즈음에 열렸으면 좋겠다”며 “워킹맘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이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교와 학부모 양측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소의 김은영 교수는 “학교 측에서는 학부모총회 등과 같은 행사를 열기 전 학부모들이 언제 열기를 원하는지 앞서 수요 조사를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말 저녁이나 주말에 시행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학부모들 역시 총회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됐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겠다’고 고쳐먹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기자 becreative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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