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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농락한 ‘색녀’ 어우동… 역사 이면의 삶 다시 보기

입력 : 2017-03-09 21:27:35 수정 : 2017-03-09 21: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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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감독 신작 ‘왕을 참하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을 참하라!”

경국대전을 완성시키고 조선의 통치체제를 확립한 조선의 9대 임금 성종 이혈(강윤)은 업적 덕분에 성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은 당대를 태평성대로 평가할까.

김재수 감독의 신작 ‘왕을 참하라(사진)’는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 세종과 정조만이 제대로 일했고 나머지 임금들은 밥값조차 못한 인물들”이라고 평가하는 김 감독은 “역사는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영화 속 ‘인수대비’의 대사를 통해, “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역사 기록 그 이면에 숨은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재조명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위에서 내려다본 역사가 아닌,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고증을 거쳐, 현대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성종 10년을 그렸습니다.”

당시 조선은 나라의 기틀을 다진다는 미명아래 숭유억불을 내세우며 백성들을 핍박했다. 특히 여성에게는 열녀문에 집착하여 지아비를 따라죽도록 강요하던 사대부 세력의 천하였다.

그러한 배경에서 향기 없는 꽃 비설(강연정)은 박제된 여성의 삶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인물로 존재한다. 비설은 일부종사와 삼강오륜, 그리고 ‘내훈’을 강조하는 통치 이념을 배척하고 ‘남존여비’를 거부한 일종의 인텔리겐차였다.

그가 바로 ‘어우동’이다. ‘비설’, ‘선정’, ‘어우동’ 세 개의 이름을 따라 살면서 시대를 앞서갔던 여인을 연기한 강연정은 “섹슈얼한 이미지가 강한 ‘어우동’ 캐릭터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며 “올곧은 모습을 가진 한 여인이 사건에 휘말리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입체적인 캐릭터라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우동의 대명사’ 격인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1985)은 당시 신군부가 조장한 ‘3S(스크린, 섹스, 스포츠)정책’ 탓에 많은 부분이 잘려나가고 유독 선정적인 이미지만 강조된 경향이 짙다.

김 감독은 ‘비설’을 결코 조선시대 희대의 섹스 스캔들 장본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허깨비 같은 사대부를 희롱하고 감히 왕을 농락한 여자의 모습으로 당당히 투영해낸다.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어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과 어머니 인수대비의 집요한 간섭에 시달렸던 성종은 열등의식을 품은 인물로 해석했다. 반면 왕이 될 기회를 잃고 선비의 삶을 살아가는 월산대군 이정(추석영)에겐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이정은 잔잔한 달 그림자 같은 삶의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비설’과 ‘이혈’, ‘이정’ 세 사람의 관계가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영화는 아쉬운 점도 노출하고 만다. 1980∼90년대 감각의 미장센과 전개방식은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을 남긴다.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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