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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아메리카인사이드] ‘미증유의 대결’…트럼프, 언론과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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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7 18:10:41 수정 : 2017-02-27 23: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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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나선 총사령관이 적진(언론) 깊숙하게 뛰어들었다. 주변에 호위무사(백악관 대변인, 수석전략가 등)를 두고 있지만 병사는 많지 않다. 공격 칼날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적진을 향해서는 내부의 정보원(익명의 취재원) 이름을 밝히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그동안 전임자들이 1년에 한 차례씩 상대와 진솔하게 접촉했던 행사(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언론)도 물러날 생각은 없다. 자신들을 ‘백성의 적’으로 지칭하고, 비판 태도를 버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느 한쪽이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지 않으면 싸움이 끝날 기세가 아니다. 강화 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체면 때문에라도 먼저 꺼내기 곤란하다. 애초 총사령관을 주적으로 삼고 결의를 다졌던 진정한 적(민주당)의 모습은 오히려 희미할 지경이다.

미국 워싱턴에서 펼쳐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의 날선 공방은 전투를 방불케 한다. 트럼프로서는 전투 그 이상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4년 임기가 위태롭다고 생각해서인지 사활을 걸고 있다. 어차피 ‘내 편이 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라도 내린 듯하다. 그의 접근법은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언론을 향한 트럼프의 거센 공세에 오히려 야당이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취임 1개월 남짓 기간에 트럼프는 사방을 포격했다. 멕시코와 중국 등 다른 나라를 향해 비난 목소리를 높였으며, 야당과 사법부를 비난했다. 일부 비난 발언은 허장성세로 보일 정도였지만, 언론을 향한 비난은 매일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와 미디어의 갈등과 배경, 미래를 전망해 본다.

① 트럼프, “(1921년 이후 연례행사)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불참”


트럼프는 4월 29일(현지시간) 열리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연례 행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25일 트위터에 “올해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다”며 “모두의 건강을 빌며 즐거운 저녁이 되길”이라고 남겼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은 1921년부터 시작된 연례 행사이다. 언론인은 물론 정치인, 연예인 등 각계 인사가 모여 장학금을 모금하는 행사다.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도 참석해 왔다. 세계대전 등으로 행사 자체가 취소된 적은 있지만, 진행됐던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한 적은 거의 없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암살 미수 사건으로 불참한 게 최근의 유일한 사례이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언론을 상대로 마음껏 풍자하고, 때론 자학 웃음도 선사한다.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하는 소통 창구이기도 하다.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수일 동안 원고를 가다듬고 예행연습을 한 뒤 행사에 참여하곤 했다.

2011년 4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 아내 멜라니아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이번 4월에 행사를 강행할 뜻을 피력했지만, 의미가 반감됐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정부 고위관계자가 어느 정도 참석할지도 미지수다. 트럼프가 마음을 바꿀 가능성도 있지만, 그가 치열하게 준비해서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게 됐다.

② 백악관, 비판언론에 비공식 브리핑 배제

트럼프의 언론을 향한 적대적인 정서는 주말을 앞둔 24일도 표출됐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방송 카메라를 끄고 진행한 ‘프레스 개글(press gaggle·비공식 브리핑)’에 많은 주류 언론사를 배제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CNN방송을 포함해 BBC방송, 뉴욕타임스(NYT)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이 배제 대상이었다. 모두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거나 ‘미국인의 적’이라고 비판했던 매체가 다수였다. AP통신과 시사주간지 타임은 비공식 브리핑에 참석하는 것을 거부했다. CNN방송 등은 이번 조치가 전례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1년 4월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현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정부가 모든 언론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비공개 브리핑에도 정부의 실세인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창업한 극우 성향의 ‘브레이트바트 뉴스’ 등 보수 매체는 참여했다. 트럼프 정부는 주류언론 중에서도 비교적 비판적 보도가 적은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 이들 매체의 기자들을 꼭 찝어서 먼저 질문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들 보수 매체는 미디어재벌 루퍼드 머독의 소유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③ 트럼프와 언론 왜 이리 멀어졌나.

허니문은 고사하고 매일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 게 트럼프와 미디어의 일상이 됐다. 양측의 갈등은 출범 직후부터 거셌다. 대통령 취임식 참석자 수를 놓고, 언론이 지난 2008년 오바마 취임식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놓자, 스파이서 대변인 등 백악관이 총출동해 잘못된 보도라고 반격했다. 정확하게 보도한 언론에 삿대질을한 것이다. 얼굴을 붉히며 정권 출범을 지켜본 양측의 싸움 이후 백악관은 급기야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나서 지원사격에 나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언론에 “입을 다물라”고 공격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진행된 1개월 남짓의 갈등 고조 양상을 살펴보면 이렇다. 백악관의 비난은 “언론인은 지구에서 가장 부정직한 사람”(트럼프 대통령)→“언론이 대통령 취임식 참석자를 축소해 왜곡 보도했다”(스파이서 대변인)→“스파이서 대변인은 (거짓 브리핑을 한 게 아니라) ‘대안 사실’(alternative fact)을 말한 것”(콘웨이 선임고문))→“언론은 야당”(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언론은 국민의 적”(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대통령과 대변인, 수석전략과 선임고문이 총출동해 ‘언론 때리기’에 나선 셈이다.

마이클 플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미·캐나다 정상의 공동기자회견장인 백악관 이스트룸에 들어서고 있다. 플린은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경질 압박을 받아온 끝에 이날 사임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백악관으로서는 이유가 있다. 정권 출범 이후부터 트럼프와 백악관을 향한 언론의 비판이 도를 넘었다는 게 백악관의 판단이다.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러시아와 내통 의혹’을 포함해 반이민 행정명령 발포, 각료 후보자의 낙마 등을 보도하면서 언론이 ‘트럼프 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여기고 있다. 보다 근원은 2015년 6월 트럼프의 공화당 대선경선 출마 이후부터 불거졌다. 트럼프는 언론이 자신을 불쏘시개로 바라보고, ‘반 트럼프 운동’을 과도하고 바라보고, 대선 패배를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고 억울해 했다. 자신이 내세운 공약도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식의 비판 일변도로 언론이 보도했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는 언론이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 보도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비난해 왔다.

언론은 대선 경선후보와 대선후보, 대통령으로 신분을 바꿔온 최고권력자를 향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반박한다. 워싱턴포스트(WP)를 필두로 많은 언론이 트럼프의 과거 기업경영의 문제점과 여성 비하 발언 등을 집중취재한 것은 사실이다. 기업 활동과 방송 진행자로 활동했을 때에는 그다지 집중 검증을 받지 않았던 트럼프로서는 속내가 복잡했을 것이다.

그 상징적인 시작은 보수세력에 비교적 우호적인 폭스뉴스가 2015년 8월 처음 주최한 공화당 대선경선 TV토론에서였다. 여성 사회자 메긴 켈리가 자신의 여성 비하 발언을 문제삼자 트럼프는 토론 이후 즉시 불쾌감을 피력했다. 트위터와 방송 인터뷰에서 켈리를 공격했고, 한때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뒤늦게 트럼프는 폭스뉴스, 켈리와 화해하는 모양새를 연출했지만 어디까지나 시청자와 유권자를 위해 보여준 그림일 뿐이었다.

④ 양측의 갈등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트럼프와 언론의 갈등은 진행형일까. 현재로서는 그 끝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전투는 트럼프의 4년 임기 내내 이어질 분위기마저 풍긴다. 일단 첨예하게 입장이 갈린 양측 모두 양보는 상상하기 힘들다. 트럼프는 집권 초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밀어부칠 태세이고, CNN방송과 워싱턴포스트 등은 민주주의 위기를 방불케 하는 트럼프의 행보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백악관을 향한 건전한 비판은 언론의 소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백악관에 불리한 보도를 지속하는 언론에 ‘거짓 뉴스’의 딱지를 붙이며 익명 취재원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라고 주장한다. 미 언론이 최고 권부의 잘못을 고발하는 익명 취재원을 밝힐 가능성은 없다. 

시간이 갈수록 여론전도 거세다. 트럼프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연설과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은 사기꾼”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본인은 지지자들을 향해 언론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미디어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책 현안을 잘 인지하고 논리적 모순을 파고드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가급적 피하고, 직접 하고 싶은 발언만 함으로써 지지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정부 출범 초기이면서 24시간 뉴스 채널이 활성화돼 자신의 발언이 편집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도 고려한 행보이다. 지지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트위터도 상시 무대로 활용한다. 방송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이 나오면 곧바로 트위터에서 응전하며 다시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보도하게 한다. 철옹성 같은 지지자들을 상정한 국정운영 방식이다.

주요 언론은 트럼프와 전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매체는 트럼프의 주장을 전하면서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전임자들과 비교도 잊지 않는다. 보수메체인 폭스뉴스와 월스트리트저널마저 트럼프가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폭스뉴스는 전임자 오바마가 자사의 보도태도를 싫어했지만, 언론을 맹비난한 경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시청자와 유권자들이다. 지금까지는 언론에 비해 트럼프를 더 신뢰한다는 조사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임기 초반 역대 최악의 국정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보다도 낮은 지지율에 언론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행보에 뉴욕타임스 등 전통매체의 구독이 증가한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언론의 거센 싸움이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공화당 일부 인사들의 인식이기는 하다. 공식적 발표 형식은 아니더라도 양측이 타겟과 공격의 강도를 조절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래도 언론보다는 트럼프가 보일 진동 폭이 커 보인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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