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먹어라.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영혜 아버지는 고기를 거부하는 딸에게 탕수육을 억지로라도 먹이려 한다. ‘고기를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육식을 정당화하고 강요한다. 끝내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딸의 뺨을 때리고 사위와 아들이 딸의 양팔을 붙잡도록 한 다음, 입 안으로 탕수육을 밀어넣는다. ‘딸을 위해서’라는 아버지의 폭력은 이내 딸의 자해라는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박진영 사회부 기자 |
폭력은 대개 폭력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가 급기야 모든 음식을 거부하면서 건강 악화를 자초, 자신의 몸에 폭력 아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개와 관련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 크다.
어느 여름 날, 영혜의 아버지는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고 달린다. 개가 처참하게 죽은 그날 저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보신탕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음을 자책한다. 영혜가 육식이란 이름의 폭력에 저항하게 된 계기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폭력을 목격하거나 당한 경험은 폭력에 맞서기보다 폭력을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인 서울경찰청 이주현 경사는 “연쇄 살인범 등 강력범 가운데는 어린 시절 학대를 받는 등 가정환경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며 “아이를 학대하지 않고 잘 키우는 게 잠재적 범죄자를 양성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며 이를 합리화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폭력이다.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완결된 지 11년 만에 빛을 보고 있는 ‘채식주의자’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또다른 함의가 아닐는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는 폭력은 없다.
박진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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