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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폭력 합리화 결코 안된다

입력 : 2016-05-29 22:07:07 수정 : 2016-05-29 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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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대한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어떻게 합리화되는지, 그 폭력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결혼 5년차, 돌연 육식을 끊고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는 영혜라는 여성을 둘러싼 연작소설이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먹어라.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영혜 아버지는 고기를 거부하는 딸에게 탕수육을 억지로라도 먹이려 한다. ‘고기를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육식을 정당화하고 강요한다. 끝내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딸의 뺨을 때리고 사위와 아들이 딸의 양팔을 붙잡도록 한 다음, 입 안으로 탕수육을 밀어넣는다. ‘딸을 위해서’라는 아버지의 폭력은 이내 딸의 자해라는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박진영 사회부 기자
‘채식주의자’ 내용을 곱씹으며 ‘폭력의 합리화’를 떠올리게 된 건 공교롭게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날 새벽, 무고한 20대 여성이 잔혹하게 희생된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는 피의자 김모(34)씨의 1차 진술이 공개되면서 한국 사회에 여성 혐오 논란이 촉발됐다.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범죄를 정당화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것. 피해자와 김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폭력은 대개 폭력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 ‘채식주의자’ 주인공 영혜가 급기야 모든 음식을 거부하면서 건강 악화를 자초, 자신의 몸에 폭력 아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어릴 적 집에서 키우던 개와 관련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 크다.

어느 여름 날, 영혜의 아버지는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며 딸의 다리를 문 개를 오토바이에 묶고 달린다. 개가 처참하게 죽은 그날 저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보신탕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음을 자책한다. 영혜가 육식이란 이름의 폭력에 저항하게 된 계기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폭력을 목격하거나 당한 경험은 폭력에 맞서기보다 폭력을 재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인 서울경찰청 이주현 경사는 “연쇄 살인범 등 강력범 가운데는 어린 시절 학대를 받는 등 가정환경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며 “아이를 학대하지 않고 잘 키우는 게 잠재적 범죄자를 양성하지 않는 길”이라고 말했다.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며 이를 합리화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폭력이다.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완결된 지 11년 만에 빛을 보고 있는 ‘채식주의자’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또다른 함의가 아닐는지. 어떤 경우에도 합리화하거나 합리화할 수 있는 폭력은 없다.

박진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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