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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포츠+] 유니폼 넘버, 18번의 주인공 황선홍…경기당 평균 A매치 최다골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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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9 09:22:00      수정 : 2016-03-17 13:38:03
[박태훈의 스포츠+] ◇전설의 유니폼 넘버, 18번의 주인공…②황선홍, 골문 여는 길을 본능적으로 찾았던 골게터 

△한국축구 스트라이커 계보 잇는 A매치 경기당 평균 최다골 주인공

황선홍(1968년 7월 14일생)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이름 날렸다.

실력, 개인기, 드라마틱한 요소 등을 고려해 흔히 한국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이동국 순으로 꼽는다.

이들 중 A매치 경기당 평균 득점력(103경기 50골, 경기당 0.49골)은 황선홍이 가장 높다.

이회택은 77경기 21골(0.27골), 차범근 135경기 58골(0.43골), 최순호 97경기 30골(0.31골), 이동국 103경기 30골(0.29골)이다.

결정적 순간 부상으로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면 역대 최다골, 최다 A매치 출전, 월드컵 4회연속 출전(홍명보가 갖고 있음) 등 각종 기록을 세웠을 것이 분명한 아름다운 스타이다.

△기록

황선홍은 한국프로축구와 일본 J리그에서 손꼽히는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002월드컵 4강을 제외하곤 국제대회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국이 최강팀, 그 자신 아시아 최고의 골게터로 이름을 날렸으나 아시안게임이나 아시안컵 등에서 이상하리만큼 기대에 부흥하는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K리그 52경기 26골

※J리그 70경기 42골

※A매치 103경기 50골

※94아시안게임 득점왕

※1999년 J리그 득점왕

※2002월드컵 4강

※2013시즌 K리그 감독상=포항 우승

※2012, 2013 FA컵 최우수 감독상=포항 우승

△1988년 11월 7일 국가대표 선발돼 15년간 태극마크, H-H라인 형성 

황선홍은 건국대 2학년때인 지난 1988년 11월 7일 1990이탈리아 월드컵을 위한 대표팀에 대학생으로는 홍명보(당시 고려대)와 함께 뽑혔다.

이후 이튿날인 11월 8일 세네갈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황선홍은 동갑내기인 홍명보와 더불어 유명한 HH라인(최전방 황선홍-최후방 홍명보)을 형성하며 2002월드컵 때까지 한국축구를 대표한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황선홍 역시 흙수저

충남 예산 출신인 황선홍은 어린시절 마른 몸이었지만 뜀뛰기 하나로 주목을 받은 뒤 축구를 시작해 서울 송곡초-용문중고를 나왔다.

하지만 고교시절까지 청소년 대표를 지닌 경력도 없어 대학진학에 나름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골감각을 눈여겨 본 이회택 감독(1986년 당시 한양대 감독)이 황선홍을 탐을 냈으나 포항 감독으로 가는 바람에 흐지부지 됐다.

대학진학 무렵 용문고 선수중에는 황선홍보다는 그의 단짝 나승화(측면 공격형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가 더 주목받았다.

1987년 건국대에 진학한 황선홍은 1988년 춘계대학연맹전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 태극마크까지 달게 됐다.

△안타까운 부상

황선홍은 부상에 발목을 잡힌 비운의 스타 계열이다. 부상만 없었다면 아시아를 넘어설 재목감이었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황선홍은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프로 드래프트 제도를 거부하고 1991년 독일로 건너갔다.

아마추어인 레버쿠젠에서 91~92시즌 17골을 터뜨려 주목을 받아 분데스리가 2부인 부퍼탈러 SV로 옮겼다. 1992년 8월 경기도중 십자인대 파열을 당해 독일 생활을 접고 말았다.

90월드컵과 94월드컵을 마음에 들지 않게 마쳤던 황선홍은 1998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절정의 감각을 자랑했다. 당시 대표팀 전력의 50%를 차지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프랑스로 출발을 하루 앞두고 열린 한중정기전(1998년 6월 4일)에서 왼쪽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워낙 시간이 없어 대표팀 일원으로 갔지만 그 뿐이었다.

황선홍은 2002월드컵 미국전에서 이마가 깨져 붕대를 감고 뛰는 부상투혼을 발휘했지만 부상에 주저앉은 기억때문에 그도 팬들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황선홍의 특징

황선홍과 같이 뛰어본 선수들은 입을 모아 "본능적으로 길을 아는 것 같다"고 했다.

골게터들은 볼이 오는 길목, 슈팅찬스가 나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이는 가르쳐서 될 문제가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신만의 내비게이션과 함께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다. 

황선홍이 최전방에 위치해 있을 경우 볼 공급자들은 이상하리 만큼 쉽게 그에게 볼을 줄 수 있었다고 했다.

약속하지 않아도 그 곳에 있으려니 하고 툭 찔러주면 틀림없이 황선홍이 있었다. 역으로 수비수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 어느틈에 황선홍이 들어와 있으니 미칠 수밖에.

이것을 우리는 '타고난 골잡이'라고 한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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