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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스토리] 상고심 사건 보고 월 100여건… 휴일도 반납 ‘살인적 업무’

대법원 재판연구관, 그들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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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1-23 06:00:00      수정 : 2016-01-23 11:29:25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세계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대법관의 ‘그림자 부대’라는 말처럼 재판연구관은 외부에 나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대법원의 묵직한 판결문은 이들 재판연구관의 노력이 없으면 탄생하기 어렵다. ‘판사 같지 않은 판사’이면서도 어느 판사들보다 중요한 일을 하는 재판연구관들의 세계를 살펴본다.


◆“나는 노비로소이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118명 중 ‘전속연구관(전속조)’은 36명이고 ‘공동연구관(공동조)’이 82명이다. 전속조는 대법원장과 사법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에게 3명씩 배속돼 해당 대법관의 지시를 받는다. 공동조는 민사, 형사, 상사, 행정, 조세, 지식재산권 분야로 나눠 업무를 본다. 이 때문에 판사들은 전속조를 대법관별로 거느린 ‘사노비’ 혹은 ‘솔거노비’로, 공동조를 모든 대법관을 돕는 ‘공노비’ 혹은 ‘외거노비’로 부르기도 한다.

공동조에서도 대법원에 새로 들어온 민사와 형사 사건을 맡는 ‘신건조’ 연구관들이 특히 격무에 시달린다. 사법연수원 31기가 포진된 신건조 연구관은 지난해부터 업무를 시작한 ‘신참’이다. 판사들은 재판연구관으로 발령을 받으면 주변에 “신변 정리를 마치고 왔다”고 얘기한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꼬박 보고서를 만드느라 가정사를 챙기기 어려운 데다 주말 근무가 다반사이고 ‘달콤한 휴가’는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신건조 연구관들은 하루에 10∼15쪽 분량의 기초보고서를 3건씩 작성한다. 보고서 한개를 작성하려면 1심과 2심에서 다뤄진 사건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기록도 다시 검토해 판단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작성하면 한달에 100여건, 1년에는 1000여건을 작성하게 된다.

이 가운데 기록이 불안해 추가 검토가 필요한 보고서는 대법관 지시에 따라 전속조 연구관에, 사건 자체가 어려워 추가 논의가 필요한 경우에는 공동조 연구관에게 사건이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법리검토 실수는 물론 오탈자만 발생해도 불호령이 떨어질 수 있다.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골치 아픈 사건을 가리키는 이른바 ‘깡치’ 사건이다.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100년이 넘어 웬만한 사건은 선례가 있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올 때가 있다. 법률 규정과 판례를 샅샅이 뒤져봐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암담하거나 원고와 피고 혹은 검찰과 피고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만만찮은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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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재판연구관은 사법연수원 동기 판사 중에서 선발된 선두 그룹이다. 판사들 스스로도 재판연구관에 임명되면 ‘성장의 기회’로 여긴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이어 최종심인 대법원 사건을 다뤄보면 비로소 숲에서 나와 숲 전체를 조망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또 1심과 2심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면밀히 살피고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 법관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다. 이 때문에 고된 업무에도 상당수 법관이 재판연구관을 지원한다. 대법원 인사부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근무평정을 가려 1년에 30명을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판사는 “하급심에서는 자기 사건만 들여다보지만 대법원 연구관을 하면 여러 비슷한 사건을 동시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사건을 거시적 안목에서 분석하고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력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중한 업무 탓인지 몰라도 재판연구관을 마칠 때쯤이면 ‘급노화’하는 판사도 많다. 격무에 시달린 데다 운동량이 부족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고 배가 튀어나오는 ‘ET‘ 체형으로 변한다는 것.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머리카락의 검은 잉크를 다 짜내 써버려서 흰 머리가 된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재판연구관 시절에 너무 늙어버려 억울한 느낌도 없지 않다”며 웃었다.

◆“대법관을 잘 만나야··· 우리도 을신세 직장인”

법적으로는 독립된 판사들이지만 ‘대선배’인 대법원장, 대법관들과 함께 일하면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업무로 직접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속조에 들어가느냐 혹은 어느 대법관의 사건을 맡느냐에 따라 재판연구관들의 ‘고생문’이 제각각이란 얘기도 들린다.

보고서에 잘못된 부분이 보이면 너그럽게 지적을 하는 대법관도 있지만 매섭게 질책하는 대법관도 있다. 수년 전 퇴임한 모 대법관은 보고서에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연구관들을 심하게 꾸짖어 악명이 높았다. 대법원에서도 인격적으로나 법률가로서 두루 신망을 얻는 대법관이 인기다.

재판연구관들은 대체로 판사 출신의 대법관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연구관들이 보고서나 초안을 작성한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리적 결론을 내리고 최종 판결문을 작성하는 몫은 대법관이다. 오랫동안 판결문을 쓰고 법률지식이 해박한 판사 출신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얘기다.

한 판사는 “안대희 전 대법관은 검사 출신이지만 민사 사건과 관련한 법리를 개발하려고 애쓰는 등 많은 노력을 하셨다”며 “대법관이 어디 출신이냐보다는 얼마나 실력이 있는가가 재판연구관들의 선호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재판연구관들의 ‘완생’은 언제일까. 2년간의 재판연구관 근무가 끝나고 지방법원의 부장 판사로 복귀할 때라고 한다. 해방감과 함께 대법원에서 쌓은 법률적 안목으로 후배 판사들을 지도하며 본격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대법원이 지난해부터 재판연구관 근무기간을 3년으로 늘리면서 완생을 향한 시간은 더 길어졌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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