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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회고록, "천안함 사태후 남북정상회담 위해 국정원인사 방북"

입력 : 2015-01-29 08:42:54 수정 : 2015-01-29 13: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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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측이 남북정상 회담을 제의했으나 쌀 40만톤, 국가개발은행 자본금 100억달러 등을 일방적으로 요구해 무산됐다"고 밝혔다. 

또 "천안함 폭침사건 후 북측의 요구로 국가정보원 고위인사가 방북했으며 북측 고위층도 서울에 왔다"고 했다.

29일 정치권은 이러한 사실이 출간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들어있다고 알렸다.

◇2009년 8월  DJ조문 온 김기남 "장군님이 만나고 싶어한다"며 정상회담 제의

MB회고록에 따르면 북측이 남북정상회담을 처음 제의한 것은 2009년 8월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파견했을 때.

조문단장인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가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통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북한 조문단은 예방 요청 하루 뒤 일반 방문객과 같은 검색 절차를 거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비서는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에 대해 MB는 "남북 정상이 만나 북핵 문제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하고 돌려보냈다.

닷새 뒤(8월 28일) 북한의 대남 문제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장이 통일부 장관 앞으로 메시지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쌀, 비료 등 경제지원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진전이 없었다.

다음 접촉은 10월 임태희 노동부장관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간 이른바 '싱가포르 접촉' 이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의제에 포함하고 대가성 지원은 없다는 것을 정상회담 조건으로 정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한 비핵화 공동 노력 △국군포로 1, 2명 고향 방문(영구 귀환 아님) △대규모 경제지원 등으로 답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11월 개성에서 이어진 통일부-통전부 실무회담에서 북한은 옥수수 10만 t, 쌀 40만 t, 비료 30만 t, 아스팔트용 피치 1억 달러어치, 북한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등을 제공받기로 싱가포르에서 합의했다며 이행을 요구했다.

임 전 장관이 “논의 내용을 적었던 것에 불과하며 합의문이 아니다”고 부인하면서 이 접촉도 결렬됐다.

◇천안함 사건 후 북측 요구로 국정원 고위층 방북, 북 "유감선에서~"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후 우가정보원 고위급 인사와 북측 인사의 남북 비밀 교차방문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제재 조치 직후인 2010년 7월 "국정원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다"고 했다.

MB는 "북한이 2010년 6월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 명의로 메시지를 보내와 국정원 고위급 인사와 접촉하고 싶다고 요구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 방북한 국정원 고위 인사가 이 같은 입장을 북측에 전했음을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북측은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남의 상갓집에 들러 조의를 표하는 수준의 사과를 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였고, 그 같은 애매한 표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2월 북인사 서울 방문, 이듬해 제거당해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인 같은 해 12월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12월5일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에 들어왔다. 대좌(우리의 대령) 1명, 상좌(대령과 중령 사이) 1명, 통신원 2명을 대동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그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며 "양측은 협의 끝에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북측 인사는 예정보다 하루 더 서울에 머문 후 돌아갔다"고 했다.

서울을 방문했던 북측 인사와 관련, "2011년초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공개 처형됐다는 것이다. 당시 권력 세습을 준비하고 있던 김정은 측과 군부에 의해 제거됐다는 얘기도 들려왔다"고 소개했다.

MB는 이후 남북은 평양·서울에서의 잇따른 접촉이 무산된 이후 2011년 초 뉴욕(유엔주재 북한 대사와), 같은 해 5월 베이징에서 추가 접촉했지만 천안함 폭침 사과 문제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했다.

◇다이빙궈 중국 외교담당 "연평도처럼 북한이 선제공격하면 앞으로 지원 못해"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연평도 포격 직후 서울에 이어 평양을 방문했던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북측에 "이후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남북 간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중국은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북측에 한 내용도 소개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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