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당국이 대부업체 하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폐업을 한 업체였는데 수상하게도 배달된 우편물을 며칠 간격으로 누군가 수거해가고 있었다. 세무조사 결과 회사직원 아내 명의의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와 여러 업체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상하게도 업체의 대표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직원이 동일했고, 업체 간에 자금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했다. 업체 대표 중에는 무재산인 자가 있었음에도 4년 동안 돌린 대부원금이 1조원을 넘는 엄청난 액수라 분명 전주(錢主)가 따로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몇 개월 동안의 자금추적 결과 갑이라는 사람을 주목했다. 7∼8개의 비밀사업장을 갖고 직원 등 120명 이상의 차명계좌를 통해 사채업을 하며 세금을 탈루했다고 봤다. 결국 갑은 조세포탈죄로 그의 사업장 명의자들은 종범으로 같이 고발됐고, 아울러 갑은 종합소득세로 수백억원을 과세처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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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
법원은 그들에게 수십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고, 이 형사판결은 행정소송에도 영향을 미쳐 서울행정법원은 그로부터 4개월 후 과세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과세관청이 항소하자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1, 2심 법원은 갑이 6개 업체의 실제사업자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과세관청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다. 국가가 하는 모든 소송은 법무부의 지휘를 받게 돼 있는데, 상고해도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상고포기지휘명령에 따라 결국 이 판결은 확정됐다.
나는 사채업자의 위력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거창하게 시작됐던 과세처분이 실속 없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연상케 하는 사건이었다.
고성춘 조세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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