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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춘의세금이야기] 규정 따로 관행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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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20 21:48:32 수정 : 2014-05-20 2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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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보면 선박 안전의 검사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업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직원들을 구속시키고 있으나 정작 규정은 있지만 관행이 고착화돼 있었기에 그들도 규정을 따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규정을 따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는 게 어느 조직이든 공통의 정서이기에 자칫 왕따를 당할 염려가 있다. 구성원은 조직의 물이 들수록 규정보다 관행을 따르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러나 공무원이 관행을 따르면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필자는 감사원 시절 ‘IMF 공적자금 금융감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전에는 ‘왜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왔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으나 감사를 하고 난 후에는 ‘규정 따로 관행 따로’가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직원들이 의외로 규정을 잘 모르고 있었다. 선배가 가르쳐준 대로 했고, 그것을 후배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식으로 업무가 이뤄지고 있었다. 관행이 고착화됐다는 의미다. ‘아, 이래서 모럴해저드가 커지구나.’

얼마 전 10년 전 국세청에서 같이 근무한 직원을 만났다. 그는 세무사 개업을 했는데 속 터지는 일이 있다면서 조사종결복명서 이야기를 했다. 세무조사를 종결할 때 조사공무원이 작성하는 서류가 조사종결복명서이다. 조사 관서장 입장에선 세무조사를 종결해야 하는지 여부를 그 서류를 보고 판단하게끔 돼 있다. 납세자 입장에선 세금이 왜 부과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불복을 위해 필요한 중요 문서이다. 조세법률주의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이유로 과세당하는지 알아야 과세처분의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그래서 국세청 훈령인 조사사무처리규정(제45조)에도 ‘조사공무원은 납세자 또는 납세관리인에게 조사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조사결과에 대한 이의가 있을 경우 납세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상세히 알려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기본법 역시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납세자의 권리 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면 신속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규정 따로 관행 따로’다. 어떤 이는 사본을 주고 어떤 이는 비밀이라서 줄 수 없다고 한다. 1996년 어느 납세자가 국세청에 질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국세청은 ‘납세자가 요청하는 경우 본인에 대한 결정결의서 및 복명서 사본 등을 정보 제공 해야 함’이라고 회신을 했다. 그런데 지금도 비공개 대상정보와 타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는 내부문서이기에 사본을 주면 안 되는 것으로 아는 직원이 많다. 납세자가 항의를 하면 ‘오면 보여줄 수는 있다’, ‘사본은 안 되니 베껴가야 한다’는 식이다. 반면 당연히 보여줘야 한다며 사본을 주는 직원도 있다.

나를 찾아온 세무사도 조사종결복명서를 받지 못해 국세청에 민원까지 넣었다고 했다. 그에게 물었다. “나와 보니까 어떻습니까?” “속이 터집니다.” 조직 안에 있으면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 조직을 나와 봐야 예전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라고 하지만 정부부처마다 보안을 강조하면서 비밀주의가 팽배해 있어 법치가 언제쯤 이뤄질지 막막하다. 이제는 우리나라 정부부처도 법리의 수로가 뚫려 조직이 더 이상 관행이 아니라 규정과 법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와야 선진국가가 될 것이다.

고성춘 조세전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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