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가 주홍글씨는 아니지만, 인생을 실패한 것 같아 괴롭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옥상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지난달 중순 한국자살예방센터에 전화한 50대 가장 김씨는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2년 전만 해도 그는 물류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지병인 관절염과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무거운 짐을 옮길 수 없어 사직했다.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내는 수술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약물치료로 버티고 있다.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2.8도까지 떨어진 1월 10일 오전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한 부부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방 안에 앉아 있다. |
김씨는 “변변찮은 벌이였지만 이제껏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살아왔는데, 다치고 나니 극빈층으로 전락한 것 같아 문득문득 생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며 괴로워했다. 다행히도 그는 매주 자살예방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으며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씨를 상담하고 있는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좀 전에도 막노동을 하다가 왼쪽 손목 인대가 끊어져 두 번이나 수술했는데도 산재보험 혜택을 못 받는다며 자살하겠다는 60세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며 “이달 들어 자살 상담건수가 2배 가까이 늘었고, 그중 절반은 생계 비관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자신감 위축이나 비관으로 이어져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2012년 1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조사에서도 최근 1년간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 중 가장 많은 39.5%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라고 답했다.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를 맞았지만, 여전히 복지대상에서 밀려나고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안전망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만, 단지 제도의 허점만으로 그들의 벼랑끝 선택을 해석하기 어렵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6일 “생계를 비관하는 사람 중 당장 먹고사는 것이 막막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미래가 안 보인다고 생각해 잘못된 선택을 한다”며 “세 모녀 사건의 어머니도 다친 후 나아봤자 늙은 몸으로 딸들을 부양하며 살 미래가 막막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저소득층에 자살 고위험군이 많은 만큼 사회복지사뿐 아니라 노인돌보미, 방문간호사 등을 자살 예방의 게이트키퍼로 양성해 곳곳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미·권이선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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