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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가계, 이대론 안된다] (3회) 빚 권하는 금융기관·대부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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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6 06:00:00 수정 : 2014-01-10 17: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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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탈입니다. 새로운 대출상품에 가입하시면 기존 다른 대출상품 금리도 연 10%대로 대환대출까지 해드려요.”

A(여·32)씨가 대출광고 전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8년 전 지인에게 1200만원을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해 대출을 받은 뒤로 매달 100여만원씩 빠져나가는 대출 이자와 월세 50만원 걱정 때문이었다. 39% 고리대의 무서움을 알고 있던 그는 ‘10%대 대환대출’이란 말에 덥석 ‘미끼’를 물고 말았다.

전화상담자는 A씨의 신용이 낮아 ‘신용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대보증이냐는 A씨의 물음에 전화상담자는 “연대보증이 아니다”며 “3개월만 신용을 보증해주고 3개월 후에는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그 말을 믿고 친구 B(여·32)씨에게 보증을 부탁했다.

대출은 ‘○○캐피탈’의 ‘김 팀장’이 맡아 진행했다. ‘김 팀장’은 A, B씨가 생업으로 바쁘니 가계약서에 자신이 대신 서명해 대부업체 3곳으로부터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38.9% 이자율이었지만 3개월만이라고 했다. 그 뒤엔 기존 대출까지 10%대로 바꿔준다고 했다. 김 팀장은 입금이 잘됐는지 확인한 뒤 계약서가 우편으로 도착하면 서명해서 반송하라고 설명했다. 쉬는 시간, 식사 시간도 따로 없이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백화점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A, B씨는 김 팀장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김 팀장의 안내 뒤 강남구 소재 대부업체 세 곳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캐시, ◇◇◇캐시, ☆☆크레디트. 대출 조건을 설명하고 답하는 ‘녹음’부터 진행했다. 김 팀장이 “업체가 전화하면 다 ‘네’라고 대답만 해주시면 된다”고 했던 터다.

하지만 대부업체들은 ‘신용보증인’이 아니라 ‘연대보증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B씨는 찜찜한 마음에 A씨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A씨의 물음에 김 팀장은 태연했다. “법이 바뀐 지가 얼마 안 돼 멘트지를 바꾸지 못한 것인데 녹음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잘 몰라서 연대보증이라고 녹음하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B씨는 “신용보증이고 뭐고 안 하겠다”고 빠졌다.

김 팀장은 “다른 보증인을 찾아보라”고 A씨를 다그쳤다. 돈부터 입금한 대부업체는 “보증인을 새로 구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돈은 바로 다른 대부업체에 상환하는 이자로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빚만 1500만원이 늘어난 셈이었다. 결국 지난해 8월 연체가 시작됐다. ‘빚 돌려막기’ 폭탄이 터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보증하지 않겠다고 밝힌 B씨에게 A씨의 돈을 대신 갚으라는 연락이 가기 시작했다. 친구가 곤란에 처하자 당황한 A씨는 곧장 김 팀장을 찾았다. 그러나 김 팀장의 휴대전화를 받은 사람은 ‘○○캐피탈’의 다른 직원이었다. 그는 “김 팀장은 퇴사했다”고 했다. A씨는 찾아가겠으니 주소를 달라고 했다. 안내받은 ‘○○캐피탈 천호점’으로 가봤지만 거기엔 ‘김 팀장’도, A씨와 통화한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게 ‘○○캐피탈’이라는 유명 시중 은행의 자회사를 자칭한 중개업체의 거짓말이었다.

대부업체들로부터 추심은 계속됐다. 오전 8시 출근길부터 오후 9시까지 한 업체가 한 시간에 두세 통씩, 세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추심원이 원룸에 혼자 사는 A씨에게 와 돈을 갚으라고 소리쳤고, 집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니 옆집 문까지 두드려 A씨를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과도한 추심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연체 3개월 뒤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았다. 법률상담소도 7곳이나 찾아갔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에도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모두 “중개업체 잘못이지 대부업체는 잘못이 없다”며 방관했다. 경찰은 냉담했다. 사기로 고소하러 강남경찰서를 찾은 B씨에게 경찰은 “수수료를 떼먹고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고소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불법추심이라도 막기 위해 강남구청에 민원도 제기했지만 구청 측은 되레 “(추심은) 업체 마음이죠”라며 대부업체 편을 들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A씨는 지난해 11월 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캐시로부터 B씨의 보증인등록 취소를 통보받았다. 한 가닥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나머지 두 곳은 B씨에게 여전히 추심을 진행 중이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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