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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이자 유혹에 가정주부도 할머니도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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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6 06:00:00 수정 : 2014-01-10 17: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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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 현장조사 동행취재 김용태 금융감독원 서울시청 파견 팀장과 나도남 서울시 민생경제과 전문검사요원은 지난해 12월26일 대부업 현장 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이날 가정주부 최모(50)씨가 운영하는 강남권의 한 등록 대부업체를 찾았다. 거주하는 아파트가 사업장이었다.

최씨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2000만원씩 두 건을 월 이자 24%(연체 때 월 36%)로 계약한 게 실적의 전부다. 그는 “친구가 해보자고 해서 (대부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문 업자가 아닌 최씨는 여러 위법 사항을 지적받았다. 사무실에 수수료, 금리 등을 게시하지 않았고, (과태료 50만원) 원리금 상환 명세도 기록하지 않았다. (〃200만원) 대출금이 300만원 이상이면 채무자 소득증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50만원)

점검팀은 최씨에게 폐업을 권했다. 고금리의 유혹과 대형 대부업체 흑자 소식에 돈놀이에 뛰어든 영세업주의 경우 원금 손실 위험이 크고 법규 준수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는 “아직까지 잘 모르긴 한데 조심조심하면서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나 검사요원은 동행한 취재팀에게 “지금까지 대부업체 700군데를 방문했는데 5000만원 미만 대부업체는 아주 악질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거의 원금을 까먹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런데도 자기 이름도 못 쓰는 60대 할머니까지 돈이 여유 있어 하는 것도 아니고 이자 받으려고 한다”고 걱정했다. 고리의 유혹이 영세·불법 대부업체를 대거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무등록 대부업도 활개

무등록 대부업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마을 주민끼리 엮이고 행정지도가 전무해 사태가 더 심각해 보였다. 경북에서 농사를 짓는 윤모(35)씨는 같은 동네에서 사채를 하는 선배(39)에게 트랙터를 빼앗겼다. 윤씨는 지난해 3월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 비용이 모자라 300만원을 빌려 쓰고 다시 500만원을 꿨다.

등록 대부업자가 아닌 선배는 두 번째 대출 때 담보를 요구했고, 돈이 급했던 윤씨는 트랙터를 저당 잡혔다. 집은 이미 농협 등에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어 담보가 불가능했다. 선배는 트랙터를 담보 잡고도 선이자로 원금의 10%를 떼고 450만원만 윤씨에게 건넸다. 상환 기간은 고작 한 달이었다. 기간을 늘리고 싶었지만 선배는 허락하지 않았다.

4월 중순쯤 윤씨는 상환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한 달만 더 기다려 줄 수 없냐”고 하소연했지만 선배는 바로 트랙터를 팔아버렸다. 2000만원 주고 산 트랙터는 1200만원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억울한 마음에 윤씨는 트랙터 판 대금에서 대출금 원리금을 제외한 일부라도 돌려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법을 좋아하면 법대로 해라. 뒷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협박뿐이었다. 윤씨는 해코지라도 당할까 두려워 이도 저도 못한 채 한숨만 쉬고 있다.

◆제도는 ‘제자리걸음’

이렇게 무등록 대부업자가 활개를 쳐도 당국의 손길은 미치지 못한다. 대부업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 중 전수 점검조사를 한 게 지난해 서울시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사각지대에서 서민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대부금융협회 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민금융 이용자 1872만명 가운데 674만명이 최고 이자율을 초과한 불법 사채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다.

금감원이 지난해 9월 대부업체가 일반 주택을 사무실로 삼아 영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자본금 5000만원 이상을 갖춰야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 방안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그러나 이 대책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부 교수는 “가령 자본금 규모가 최소 1억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온 데 비해 금감원 규제기준은 너무 낮다”고 말했다.

지난해 일몰이었던 이자제한법을 다룬 국회도 절망적이었다. 지난해 마지막 정기국회에선 정쟁에 밀려 이자제한법을 처리하지 못했고, 지난해 12월 임시국회에서 벼락치기 논의 끝에 이자 상한을 연 39%에서 4.1%포인트 찔끔 내려 통과시켰다. 대부업 상한 금리는 일본이 20%, 싱가포르가 18%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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