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거부에 데이트장면 유포후 침실 침입, 숨어있다 흉기 휘둘러 배우 지망 여고생이 스토커에게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으로 일본 열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숨진 여고생의 안타까운 사연과 스토커의 대담한 행태, 경찰의 어설픈 대응 등이 맞물리면서 연일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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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사아야 |
스즈키는 영상 일을 하는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의 외동딸로, 초등학교 5학년 때 기획사에 스카우트돼 연예활동을 해 왔다. 방과 후 연기수업을 받고 방학 땐 1개월간 해외 홈스테이를 하며 배우 꿈을 키워 왔다. 3년 전에는 영화 ‘차가운 방’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하기도 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속속 드러나는 이케나가의 행태에 일본 국민들은 놀라고 있다. 필리핀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케나가는 2011년 스즈키와 페이스북을 통해 교제를 시작했지만 그녀가 최근 교제를 거부하자 앙심을 품고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먼저 스즈키와 교제하는 장면 등을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뒤 사건 당일 오후 창문을 통해 스즈키 방에 침입했다. 그는 옷장 속에 숨어 휴대전화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대담함을 보였다고 한다.
경찰의 안이한 대응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스즈키는 지난 4일과 7일 스토킹 피해를 자신의 학교 측과 상담한 데 이어 사건 당일인 8일 부모와 함께 미타카경찰서를 찾아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고 정식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케나가에게 전화 경고 메시지만 남겼을 뿐 귀가하는 스즈키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즉각 실시하지 않았다. 사건 발생 2분 전 스즈키에게 괜찮냐는 안부전화를 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옷장 속에 숨어 있던 이케나가를 자극해 범행을 촉발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 파장은 유도계로도 번지고 있다. 이케나가가 고교 시절 유도부에서 활동한 게 알려지면서 유도계는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올해 감독들의 폭력 문제로 시련을 겪은 유도계에서는 기술보다 인성 교육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스토커 살인사건이 적지 않았다. 1999년 사이타마현과 2000년 4월 시즈오카현에서 여대생과 여고생이 차례로 스토커에 의해 살해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11년 12월 나가사키에선 경찰이 일주일 후에 스토커 피해 신고를 하라고 미루면서 모녀가 피살되기도 했다.
스토커 범죄가 잇따르자 일본 국회는 2000년 5월 ‘스토커 규제법’을 만들었다. 경찰청도 전국 도도부현(都道府縣) 경찰 본부에 전문대책반을 발족했다. 하지만 스토커 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도쿄=김용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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