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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도… 박근혜정부도… 민자의 유혹에 넘어가나

관련이슈 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입력 : 2013-10-02 19:41:09 수정 : 2013-10-03 15: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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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꿈틀거리는 민자사업 지난 7월2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8조5000억원대의 경전철을 건설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박 시장은 사업비의 절반을 민자유치로 해결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앞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 시장은 단 한 건의 토목공약도 내놓지 않았다. 시의 부채를 7조원가량 줄이겠다고 했다.

당장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내년 선거와 멀리는 대선까지 겨냥한 정치공약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박 시장의 지지자들조차 ‘박원순 스타일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박근혜정부도 민자사업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106개 지방공약이행계획을 발표하면서 민자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민자사업은 재정형편이 나빠도 급전으로 단기에 공약이나 지역사업을 이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한동안 뜸했던 민자의 유혹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달라”… 글쎄

당장 경전철의 사업성 논란이 불붙었다. 서울시는 9개 노선 신설과 1개 노선 연장 등 총 85.41㎞에 달하는 경전철을 건설하겠다면서 이 사업이 실패한 용인, 의정부, 부산, 김해 등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경전철 이용자가 1㎞당 하루 9000∼1만3000명에 이를 것이라고 서울시는 추정했다.

그러나 한 교통학 전문가는 “시가 예상하는 것보다 낮은 승객이 이용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계획대로 진행되면 약 1㎞당 하루 7000∼8000명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지하철 노선이 확장되면서 수요가 줄어왔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하철 1기(1∼4호선) 당시 1㎞당 이용자가 3만명이었고 2기(5∼8호선)와 3기(9호선) 완성 후에는 1만5000명, 1만2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또한 시가 발표한 자료의 근거인 서울연구원의 용역 결과 ‘서울시 10개년 도시철도 기본계획에 대한 종합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더라도 10개 노선 가운데 재무적 타당성이 있는 곳은 수익성 지수 기준 1을 넘긴 위례선(1.01) 단 하나뿐이며 나머지는 이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오인 경실련 국책사업감시팀장은 “정부 재정이 절반이나 들어가는 무늬만 민자사업이라면 차라리 절반의 노선을 먼저 정부재정으로 시행한 뒤 나머지 사업성을 검토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월24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8조5000억원대 서울 경전철 개발 계획이 담긴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방안’을 발표한 뒤 철도 노선도를 설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민자 20년, 남은 건 빚더미


민자사업은 1994년 8월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민간자본유치촉진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재정난에 허덕이는 정부와 지자체가 보기에 이 제도는 큰 돈을 들이지 않고 대형 SOC 사업을 원하는 시기에 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허술한 사업관리 탓에 수요예측은 터무니없이 빗나갔고 보장수익률도 지나치게 높았다. 과거 이뤄진 주요 사업 22개의 평균 실질수익률은 8.4%(물가상승률 제외)에 달했다. 민자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이다.

수익보전 방식은 이렇다. 예를 들면 하루 100대의 차량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도로의 실제 이용객이 50대일 경우, 80%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계약을 맺었다면 모자란 30대분의 통행료 수익을 보전해 준다. 수요예측치가 곧바로 돈인 셈이다. 이 때문에 민자사업자들은 용역업체를 동원해 예측치 부풀리기에 매달렸고 사업추진이 다급했던 지자체들의 관리 감독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민간사업자의 배만 불려준다는 비판이 드세지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RG 제도는 2009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MRG는 과거에 맺은 계약기간이 아직 20∼30년간 남아 여전히 지방재정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각 지자체들은 민간사업자와 새롭게 계약을 맺어 MRG 부담을 낮추는 재구조화를 추진 중이다. 민자사업을 맡고 있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여론의 압박은 있지만 민간사업자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는 협상이다 보니 쉽게 잘 진행되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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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사업 안전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한 번 설치하면 100년씩 운용할 수 있는 SOC 사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칫 다음 세대에 큰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수은 서울대 교수(환경계획학)는 “도시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 유기적 계획이 필요하다”며 “민자사업은 수요예측 오차를 줄이기 위한 기술적 노력과 함께 계약에도 이 변동 가능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특히 지하철은 한 번 지으면 100년씩 운영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며 “사회가 노령화되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하철의 이용률은 현재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강수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장은 “수요예측이 틀릴 수는 있지만 모두 과다예측으로 나왔다는 점은 결국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민자사업은 수익률을 낮추고,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 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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