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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② 예산의 정치학

관련이슈 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입력 : 2013-09-30 19:59:49 수정 : 2013-10-01 16: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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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 예산 따내기 백태
국회 638호 회의실은 예산편성의 ‘블랙박스’라 불린다.

50명의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들은 매년 이곳에 모여 이듬해 나라살림을 확정하는 진검승부를 펼친다. 예결위 산하 계수조정위원회에는 지역구 민원과 동료 의원, 각종 이해단체의 막판 읍소가 담긴 쪽지, 문자메시지들이 난무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의원들이 이 밀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주무르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왔다. 본지가 입수한 ‘2012년 예산안 조정소위원회 심사자료’에는 소문으로 무성했던 의원들의 예산 따내기 백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느 의원이 어떤 이유로 특정 예산을 얼마나 증액했는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취재팀은 이 보고서에 대해 국회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보조·심사 자료여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막무가내 증액


의원들은 액수를 언급하지 않거나 뚜렷한 이유와 근거도 대지 않은 채 무조건 증액만 고집하는 게 다반사였다. 액수 없는 증액만 따져도 최소 150건에 달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당시 당명·직함 기준)은 “이주노동자 등 다문화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늘릴 액수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저소득층 옥내 급수관 개량 지원사업 예산에서 증액을 요구한 민주당 박우순 의원은 “예산 반영 우선순위를 고려하라”고 했지만 그 순위가 무엇인지는 적시하지 않았다.

경기도 별내선(암사∼별내) 철도 건설이 신규사업으로 편성된 가운데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경기도가 기본계획을 수립한 광역철도인데, 광역철도 건설비를 국가가 시행주체인 경우에는 75%, 지자체가 시행주체인 경우는 60%로 달리 지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정 단체·시설 지원

정부가 돈을 들이는 사업의 명분과 달리 특정 단체나 시설을 위한 증액도 속출했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민세 안재홍 선생 기념사업회에 7억원을 밀어줬다. “대한민국 정체성 교육사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당 구상찬 의원은 교통안전교육 홍보사업 명목으로 녹색어머니회 지원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배티성지에 5억원을 증액했다. 같은 당 강기정·강창일 의원이 15억원을 더 늘려주면서 호응했다. 오 의원은 법주사 공양간 확충 예산까지 문화재 보수정비비에서 21억원을 늘리며 불교계도 다독였다. 전북 김제 금산교회(민주당 박기춘·오제세·주승용, 한나라당 장윤석), 김제 금산사(민주당 장세환), 충북 음성 감곡성당(민주당 강기정·김영록·오제세) 등도 보수예산이 증액됐다.

지역구 안전시설 신축에는 비목(비용 명세) 신설 편법까지 동원됐다. 국유재산관리기금 증액 내역 중 태안경찰서(5억원, 자유선진당 이명수), 남양주 북부경찰서(10억원, 민주당 박기춘·박우순), 국회경비대 청사(15억원, 미래희망연대 노철래), 동탄경찰서(10억원, 한나라당 김성회), 부산구치소(28억원, 한나라당 장제원), 청주교도소(40억원, 민주당 오제세) 신축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눈에 안 띄는 증액꼼수

같은 사업을 단계별로 수억원씩 차곡차곡 증액하는 꼼수도 동원됐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은 친환경 양식어업 육성 사업비를 8차례에 걸쳐 8억4500만원 증액했다. 증액 때마다 ‘갯지렁이 양식단지 지원’, ‘전복종패 생산지인 진도군 미관 향상’, ‘폐사어 처리, 악취 민원 해결’ 등 갖가지 이유가 따라붙었다. 증액분이 적어 눈에 띄지 않고, 예결위 전체회의 등에서 삭감되더라도 몇 가지 사업분이라도 남기자는 의도가 깔려 있는 듯했다.

여러 의원이 동일한 사업예산을 분담해 늘리는 경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나라당 조원진·조전혁 의원은 “경북대병원 칠곡분원 개원 초기 운영수지 적자 보전과 필수장비 도입 등을 위해 개원준비비 반영이 필요하다”며 120억원을 증액했다.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도 같은 이유로 이 사업에 80억원을 증액했고 배영식 의원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도 넘은 친정 챙기기

국회 입성 전 몸 담았던 친정을 챙기는 의원들의 ‘애틋함’도 유난했다. 검찰 출신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야 한다”며 특정업무 경비인 검사의 수사활동 지원비를 5억4000만원 증액했다. 부산고검·지검 어린이집 예산도 21억원 늘렸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출신 배영식 의원은 금융위원회·신용보증기금 기금관리비 사업비에서 사내 근로복지기금을 올려야 한다며 22억5900만원을 추가했다. 기금관리비 20억원 등도 얹어줬다.

또한 육군 장성 출신 한나라당 한기호 의원은 국방부·간부 확보 장학사업비에서 군 장학금을 8억3000만원 증액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출신 같은 당 배은희 의원은 키스트 연구운영비 지원액을 40억원 올리면서 ‘친정 사랑’에 동참했다.

◆예산도 정치 싸움

정치 쟁점 역시 예산전쟁의 격전지였다. 이명박정부 최대 토목사업인 4대강 사업은 대표적 사례였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국가하천 정비사업에서 200억원을 증액하면서 “4대강 사업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하천 정비사업이 정상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도 비슷한 이유로 국가하천 정비사업비의 6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 강기정·박기춘·오제세·주승용 의원은 수리시설 개보수 예산과 배수 개선 예산을 각각 437억4000만원, 40억원 늘리면서 “4대강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비를 삭제하고 증액해야 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민주당은 당시 새누리당이 반대했던 무상급식 지원과 반값등록금 사업에도 수백억원을 새로 끼워 넣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지역구 사업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이정현, 민주당 강기정·장병완 의원은 간이 예비타당성(예타)조사가 늦어져 정부안에서 빠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지원 예산을 추가로 반영했다. 민주당 주승용 의원도 예타가 진행 중인 목포∼압해 국도 확포장 사업을 예산안에 끼워 넣었다. 지역구 챙기기에 예산편성의 원칙과 절차가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타당성조사 요구도 봇물을 이뤘다. 한나라당 이정현, 민주당 강기정·장병완 의원은 한국도시광산기술원 광주 설립 타당성 조사를 위해 비목 신설을 통해 4억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전남 목포∼광양 고속도로 영암나들목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비 3억원(강기정), 경북 군위나들목∼구미4공단 등 간선교통망 구축을 위한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비 10억원(장윤석) 등 유사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조병욱·김예진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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