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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교차로’ 신장, 독립을 향한 ‘저항의 역사’

입력 : 2013-02-15 21:00:41 수정 : 2013-02-15 21: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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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중간 기착지…18세기 중반 청에 정복당한 후 '유랑 민족'으로…
독립 시위→탄압→유혈사태 지속 '中 화약고' …
"위그르족 미래 '균형과 위기'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해야"
제임스 A. 밀워드 지음/김찬영·이광태 옮김/사계절/3만8000원
신장의 역사-유라시아의 교차로/제임스 A. 밀워드 지음/김찬영·이광태 옮김/사계절/3만8000원

1949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장제스의 국민당을 몰아낸 직후 신장(新疆) 지역 제 정파와 연합한다는 명목으로 동투르키스탄(위구르족이 세운 신생 독립국) 대표단을 베이징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초청했다. 그해 8월 알마티에서 아흐메트잔 카시미 등 대표단 5명을 태운 베이징행 항공기가 이륙 이후 행방불명됐다. 중국공산당은 12월에야 항공기가 바이칼호 인근 산기슭에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는 짤막한 발표만 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신장 대표단이 베이징으로 초청받아 갔다. 이들은 자치정부 수립 안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강경파로 독립국가를 선포했던 지도부 인사들을 교묘히 제거해버렸다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적잖은 연구자는 이 의혹투성이의 사고와 관련하여 중국공산당이 비행기를 격추시켰거나 다른 방식으로 탑승자들을 제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스탈린은 동투르키스탄의 자치를 반대했고, 마오쩌둥 역시 신장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에 몰두하던 차였다.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 요원들은 의도적으로 신장의 주류 종족인 위구르인을 탄압하기 위한 술수였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2009년엔 신장 위구르 독립을 요구하는 거센 시위가 발발했다. 중국에선 폭동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론 독립을 위한 전쟁이었다. 마치 1990년대 중반 러시아에 맞선 소수 민족국가 체첸공화국이 독립전쟁을 벌였던 사태의 복사판이었다. 이후 신장의 위구르족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유랑 민족으로 남게 된다.

제임스 A. 밀워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쓴 ‘신장의 역사’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신장의 통사이다. 중국의 서쪽 또는 실크로드 중간 기착지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신장의 사람들과 지리 환경, 민족 분쟁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신장의 역사를 개괄한다. 4000여년을 지속해 온 신장의 역사는 말 그대로 피의 역사였다. 유라시아 계통의 이민족들과 흉노, 몽골, 만주족 등이 정복과 융화책을 번갈아가면서 지배했던 고단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해발 3900m에 있는 카라쿨 호수의 풍광.
중국 영토 서북부의 드넓은 땅인 신장은 예부터 서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신장’은 18세기 중반 청나라 건륭제가 이 지역을 정복 병합한 뒤 새로운 강역이라는 뜻에서 붙인 명칭이다. 서쪽에 있다 해서 불리는 ‘서역’ 역시 중국식 이름이다. 그러나 보다 중립적인 학자 내지 이슬람 각국에선 동투르키스탄, 혹은 ‘중국령 투르키스탄’으로 기술하고 있다.

광대한 땅의 신장은 오랜 기간 독립국가 형태를 갖지 못한 채 여러 부족으로 나눠 지배를 받아왔다. 동쪽에서 발흥한 중국의 강력한 제국들은 신장을 정복한 장수를 우대했다. 중국의 장수들 가운데 고구려 유민 출신인 고사계의 아들 고선지도 포함된다. 서쪽에서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문명이 밀려들었다. 남쪽에서는 인도·티베트 문명이 힘을 발휘했다. 강력한 군주 국가가 아니고선 독립적인 국가로 지탱할 수 없는 지리적 위치에 있는 게 신장이다. 기원전 2000년경 만들었다는 미라 ‘누란 미녀(樓蘭美女)’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타클라마칸 사막 동쪽, 누란 고성에서 발견된 이 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여인의 시신이었다. 놀랍게도 유럽계의 얼굴 형태와 골격, 큰 키 등은 둥글넓적한 아시아 계통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애초 신장에는 아시아계 인종이 아니라 유럽계 고대인들이 정착했었다는 역사를 실증하는 미라였다. 이 지역에 살았던 종족만도 수십 종을 헤아린다. 사카족·월지 등 초기 거주민부터 흉노·소그드·몽골·위구르·만주족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을 거쳐 간 민족은 실로 다양하다.

저자는 “신장은 유라시아 전역의 예술과 기술, 사상 및 교역 물품이 이동하는 통로이자 용광로”라면서 “이 민감한 지역에 대해 저술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고 했다. 중국이 신장 지역에서 독립의 기운이 번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현재 중국공산당에선 신장위구르 지역을 다스리는 능력에 따라 차세대 지도자를 발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밀워드 교수는 일단 신장의 미래를 모호하게 남겨둔다. 최고난도의 줄타기 기록을 경신하는 위구르족 줄타기 곡예사 아딜 호슈르를 소개하면서 신장의 미래를 넌지시 제시한다. 신장의 미래는 아딜 호슈르처럼 균형과 위기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900만명의 위구르족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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