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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카지' 엘빈 역 배우 김다현과 정성화 |
동성애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작 뮤지컬 ‘콩칠팔새삼륙’과 ‘라카지’를 직접 만나 속살을 들여다봤다.
[리뷰] ‘새장 속 여인들’에 대해 유쾌하게 할 말 다하는 뮤지컬 ‘라카지’
지난 7월 4일 LG아트센터에서 한국 초연된 '라카지'(La Cage Aux Folles·새장 속의 광인)는 ‘황홀하고, 섹시하고, 아찔한’ 뮤지컬이었다. 게이부부는 안티호모와 세상의 편견앞에서 ‘생물학적 엄마보다는 진짜 엄마가 더 잘하면 되지’ 라는 말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황홀하게 속삭였다. 새장이라는 신비로운 공간 안에서 킬힐을 신은 앙상블 '라카지 걸'들은 발레부터 캉캉, 탱고를 두루 섭렵한 고난이도 안무를 선보이며 섹시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근엄했던 안티호모주의자이자 안느의 아버지인 딩동은 혐오하던 드랙퀸(여장 남자)분장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 다른 태도를 보인 그의 변화에 정치인 풍자의 아찔한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라카지’는 게이부부인 앨빈(정성화·김다현)과 조지(남경주·고영빈)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이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 장미셀(이창민(2AM)·이민호·이동하)의 결혼발표로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장미셀이 게이의 존재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극보수주의 정치인 딩동(천호진·윤승원)의 딸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게이 엄마 앨빈의 존재를 숨기고 싶어하는 아들의 요구로 인해 복잡하고 위태롭기 만한 그들의 쇼가 벌어진다는 게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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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카지' |
자칫하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제작진도 분명 고심했을 터. 가족애와 인간미를 중심에 놓고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줄이고 코믹함은 살렸다. 욕처럼 들리는 영어대사. 엘빈을 동경하는 수다스러운 게이 ‘자코브’라는 캐릭터 설정 등이 그러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심각한 화두를 던지기 보다 ‘연민따위 필요없어.’라고 일갈한다. 거부감 없이 관객의 가슴에 이야기를 던지는 작품의 방식이다. 무대를 클럽의 메인스테이지와 대기실로 나눠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2중적인 시선도 감지할 수 있게 해 놨다. 캉캉 춤을 추는 라카지 걸들의 치마 속을 훔쳐보게 한 점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뮤지컬은 동성애자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상징하는 새장 속에서 그들은 행복한 척 춤추고 노래하고 있음을 유쾌하지만 의미심장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뮤지컬 ‘라카지’는 쇼 뮤지컬일까. 진지한 목적의식을 가진 뮤지컬 연극일까. 답은 새로운 형식의 쇼 뮤지컬이다. 딩동! 성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매우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점에서 스토리의 흡인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댓츠 더 포인트! 바로 그거다. 뮤지컬 속에서 연극 이상의 기승전개를 요구하다보면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적절한 시점에서 메시지를 골라 갈 것은 골라 가지만 전체적으론 마음껏 웃고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 이 작품의 숨겨진 묘미이자 양날의 검이다.
어떤 엘빈을 볼 것인가. 13만원의 표 값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작품의 질에 대한 평가 이상으로 관객들에게 중요한 사안이다. 김다현에 비해 입이 큰 엘빈 정성화는 시원스러운 가창과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 아들의 결혼을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마음을 노래하는 ‘I Am What I Am’ 씬의 설득력이 높다는 점이 긍정적 표를 던지게 한다. 반면 디테일한 연기 늬앙스를 맛보고 싶다면 김다현 배우가 적격이다. 정성화 배우가 대극장 무대에 맞는 과감한 액션을 선보인다면, 김다현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쉴 틈을 주지 않고 미세한 연기변화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한다. 극중 자자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며 부르는 ‘(A Little More) Mascara’ 넘버는 김다현에게 안성맞춤 옷 같아보였다.
이창민(2AM)·이민호·이동하가 아들 장미셀 역에 캐스팅 됐다. 다른 두 배우에 비해 초반 회차가 많았던 배우 이동하의 연기력이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내 이름은 김삼순’, ‘스페셜레터’, ‘음악에세이’등에서 만났던 배우 중 한명이다. 상대 배우에게 대사를 칠 때 너무 조심히 말하고, 말끝을 명쾌히 끝맺지 못하는 점 등이 관객들이 배우를 완전히 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이 점만 고쳐진다면 충분히 성장가능한 배우이다. 관능적인 라카지 걸로 분장해 채찍질 하는 한나 역 배우 전성환은 자코브 역 배우 김호영과의 끼 대결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흑조의 우아함을 발산한 배우 모지민, LDP단원 김재덕까지 라카지 걸들의 파워가 상당하다. 9월 4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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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콩칠팔새삼륙' 주연배우 배우 최미소와 신의정 |
올 여름 창작뮤지컬의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뮤지컬 ‘콩칠팔 새삼륙’(부제: 봄날 경성, 연애사)이 관객몰이 중이다.
1931년 4월, 영등포 역에서 기차선로에 뛰어든 두 여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낸 창작 뮤지컬이다. 제목인 ‘콩칠팔 새삼륙’은 옛 우리말로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고 떠든다는 뜻’. 또한 작곡가 난파 홍영후(홍난파)가 작곡한 동요의 제목이기도 하다. 자유연애라는 단어가 한참 만개했던 1931년의 경성을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뒤 철로 투신 한 두 여인 홍옥임과 김용주의 이야기를 픽션으로 풀어낸다.
‘자유연애’에 대한 환상이 남성에게만 안전할 뿐 여성에게는 ‘순결’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을 지웠던 1930년대, ‘안전한 연애’로서 동성애를 받아들여야 했던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소녀를 막 벗어나 여성으로서 만개하기 직전이었던 여성들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덧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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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콩칠팔 새삼륙' |
런던 왕립 음악원과 NYU 뮤지컬 작곡과에서 수학한 이나오 작곡가가 작사한 넘버가 역시 뮤지컬의 힘은 음악임을 일깨워준다. ‘사랑하라’의 넘버가 극중에 계속 변주되며 관객들의 호흡을 이끌고 간 점, 보사노바 풍 넘버 ‘여자로 태어나’에 덧 입혀진 당시 여성의 안타까운 내면 등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뮤지컬 ‘콩칠팔새삼륙’은 문화체육관광부와 명동예술극장이 지원하는 2011창작팩토리 뮤지컬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지난 3년 동안 대본 공모, 쇼케이스를 거쳐 내실을 다졌다. 하지만 창작뮤지컬의 단점인 스토리 전개의 미흡함을 100% 이겨내진 못했다. 두 여인의 사랑과 현실 도피 및 동반 자살에 대한 감정몰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색다른 소재, 조휘·최용민·김준오·김보현·유정은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 전원 원캐스트, 음악이 주는 여운이 4만원의 표 값이 절대 아깝지 않게 만든다. 신의정, 최미소 배우의 풋풋하면서도 애절한 연기, 카랑카랑한 성량을 자랑하는 배우 정연(화동)의 연기도 일품이다. 8월 5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공연 칼럼니스트 정다훈(ekgns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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