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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자들이 귀고리를 한 까닭은?

입력 : 2011-02-16 21:51:45 수정 : 2011-02-16 21: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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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역사스페셜’ 조선은 머리카락 한 올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유교의 나라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남자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를 착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남자들의 귀고리 착용 문화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대부 자제들은 물론, 왕자들까지 진주귀고리를 했다는 것이다.

KBS1 역사스페셜은 17일 오후 10시 ‘조선시대 남자도 귀고리를 했다’에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도성의 거리를 걷던 남자들의 귀고리 문화에 담긴 흥미진진한 비밀을 파헤친다.

◇KBS1 ‘역사스페셜’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남자들의 귀고리 문화와 사라진 조선시대 남자 귀고리 착용에 대해 알아본다.
남자들의 귀고리 착용 문화는 1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당나라에 파견된 고구려, 백제, 신라 외교관의 모습을 그린 ‘왕희도’ 등을 보면 귀고리를 한 남자들의 모습이 발견된다. 현재까지 성별이 확인된 국내 남성 귀고리 1호 착용자는 김포 양촌리에서 발굴된 3세기 초 무덤의 주인이다.

그런데 몇 해 전 조선시대 남성의 귀고리도 발견됐다. 서울 은평구 뉴타운 발굴 현장에서는 5000여기의 조선시대 무덤이 출토됐는데, 이중 한 무덤에서 수습한 유물에 귀고리 한 쌍이 들어 있었다. 귀고리와 함께 있던 물고기 모양의 장신구와 백자 술병을 단서로 추정해본 결과, 이 귀고리의 주인은 놀랍게도 조선시대 관리를 지낸 남성이었다.

중종실록에도 남자 귀고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중종 8년 ‘양평군의 나이 9세 때 큰 진주귀고리를 달았다’는 것이다. 당시 양평군 사칭 사건이 발생하자 큰 진주귀고리를 달았던 귓불 구멍으로 양평군을 구별했다고 한다. 이는 귀에 뚫린 큰 구멍이 왕실의 핏줄을 증명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17세기 들어 남자들의 귀고리가 사라졌다.

프로그램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어원커족, 흉노, 선비족 등 북방 유목민의 남성 귀고리 문화를 통해 조선시대 남자들이 귀고리를 단 실마리를 찾아보고, 조선시대 남자 귀고리 문화가 사라진 이유를 추적한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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