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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재판관은 왜 사형이 '위헌'이라고 했나

입력 : 2009-06-10 11:44:04 수정 : 2009-06-10 11: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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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11일 '사형제 위헌' 공개변론 열어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김진우 변호사(왼쪽)와 조승형 변호사
 “사형은 개과천선의 자유조차 빼앗는 형벌이다.” (김진우)

 “기능 면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은 별 차이가 없다.” (조승형)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젊은 여행객 4명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어부 오모(71)씨 사건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1부가 “사형제도는 헌법에 위반된다”며 제청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의 공개변론이 11일 열릴 예정인 가운데 지난 1996년 사형제도를 합헌으로 판단한 헌재 결정이 새삼 눈길을 끈다. 7 대 2로 내려진 당시 결정에서 김진우·조승형 두 재판관은 위헌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12년전 헌재가 심리한 것은 사형수 정모씨가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41조와 250조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이었다. ‘95헌바1’이란 번호가 붙은 이 사건에서 김용준 소장 등 7명의 재판관은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행위 등 지극히 한정적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며 합헌 취지의 다수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김진우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형벌로서의 사형은 징역형이나 금고형과는 달리 사형 선고를 받은 자에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아니하는 형벌 제도”라고 비판했다. 김 재판관은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도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집행을 마친 뒤엔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법률가들은 우리 헌법 110조 4항에 ‘사형’이 언급된 점을 들어 “사형제도는 헌법 제정 당시에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 재판관은 “졸속으로 헌법 제정 및 개정의 작업이 진행되었던 우리 헌정사에 비추어 볼 때 헌법의 근본 가치를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규범이 헌법에 수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이를 반박했다.

 김 재판관과 함께 위헌 입장에 선 조승형 재판관도 별도의 소수의견을 통해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므로 범죄자에 대한 개선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형벌”이라고 꼬집었다. 조 재판관은 “영구히 사회로부터 범죄를 격리한다는 기능에 있어선 사형과 무기징역 간에 별다른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로 사형이 갖는 독자적 효력을 부정했다.

 조 재판관은 사형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한 흔적을 다음과 같이 결정문에 남겨놓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하여 오랫동안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 왔으나, 이제 이와 같은 태도를 버리고 이 시대에 우리 헌법재판관에게 지워진 소명에 따라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다수의견을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1988년 당시 국회 추천으로 헌재에 입성한 김 재판관은 97년까지 9년간 헌재에 몸담으며 초창기 헌재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조 재판관은 1994년 역시 국회 추천으로 헌재에 들어가 지난 99년 정년퇴임했다.

 10여년전 사형제도에 대한 최초의 헌재 결정을 이끌어낸 사형수 정씨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다. 사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증거부족을 이유로 파기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이후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 형이 최종 확정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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