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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찬란했던 아스텍 문명아래 '하나되기'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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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2-15 15:04:31 수정 : 2008-12-15 15: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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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정체성에 대한 고민
◇태양의 신전에서 바라본 테오티우아칸의 모습.
멕시코는 어떤 점에서 이상한 곳이었다. 멕시코시티 근처에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스텍문명을 간직한 죽어 있는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이 있고, 멕시코시티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혼혈 후손들이 생활하는 스모그 가득한 메트로폴리탄이 있다. 멕시코에 정착한 사람들은 오래전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를 통해 넘어와 중남미 땅에 정착한 인디오로 아시아계다. 이들이 이룩한 아스텍문명은 에스파냐인의 침입으로 1521년에 멸망했다. 이후 약 300년간 스페인 식민지 시대가 계속되는 동안 스페인어와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스페인과의 혼혈이 진행됐다. 그래서 현재의 인종 구성은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약 60%, 30%의 인디오, 9%가 백인이다.

한국의 일제강점기를 상상해보면 쉽겠다. 일제 시절 우리는 일본어를 사용해야 했고, 황국신민으로 일왕을 모셔야 했다. 더 나아가 만약 그 제국주의 국가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나 스페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식민지 생활로 더 이상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종교 역시 달라지고, 그리고 강력한 혼혈정책이 성공해 버린다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메스티소 국민에게 자신의 정체성은 뭘까? 아스테카문명을 멸망시킨 침략자 스페인인과 인디오 사이에서 태어난 선조를 두고 있는 사람들. 이들에게 에스파냐인은 적일까, 조상일까?

이런 궁금증에 빠져 있던 필자에게 중남미 문화를 공부하는 친구가 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을 추천했다. 인류학박물관은 멕시코의 인류학을 체계화해 정리해놓은 곳으로 1층은 원시시대부터 고대, 중세까지 유물을 모아 놓은 12개 전시실이 있고, 2층은 현재의 멕시코 전역의 각 부족들의 문화(복식, 음식, 음악, 장례문화)를 마네킹을 이용해 잘 꾸며 놓은 거대한 건물이다.
◇ 멕시코시티의 소칼로광장. 매일 인디오의 전통 춤이 펼쳐진다.

1층을 돌아보고 있는데 자꾸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눈인사만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Excuse me(실례합니다).” 놀랍게도 영어다! 대부분의 멕시코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못했다. 당시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전이라 필자의 입은 한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저 먹는 기능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니 기쁜 마음에 그동안 쌓였던 질문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은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은 오마르(Omar), 멕시코에 온 호기심 많은 여행자를 만족시키기에 딱 적당하신 분이다.

“그래요, 우리의 선조는 인디오죠. 저 역시 가톨릭을 믿고 제 피부는 인디오와 다른 흰색이에요. 스페인 계통이죠. 그렇다고 제 나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전 멕시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우리나라 역시 이런 문제(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래서 1964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인류학박물관을 짓게 된 거예요.”

과연 그랬다. 인류학박물관에는 선조의 우수성과 뛰어난 미적 감각, 이들의 뿌리에 대해 자랑스러울 만큼 매우 상세히 정리돼 있다. 그리고 현재 멕시코 내 인디오 각 부족의 문화와 생활상을 다섯 살 어린이도 쉽게 알도록 잘 꾸며 두었다. 이들의 노력이 머나먼 한국에서 온 필자에게까지 감동적으로 전해졌으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식당에서도 이어졌다. “멕시코 국민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는데, 그렇다면 멕시코 내에서 인종차별은 없나요?” 그녀는 대답했다. “오, 미안하게도 있어요. 저 역시 스페인 혈통이지만, 식민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혈통의 사람들이 이 나라 권력을 대부분 가지고 있죠. 경제적인 부도 마찬가지고요. 이는 식민지시대부터 내려온 거예요. 물론 바뀌어야 하고,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의 말은 이후 중남미 여행에서도 종종 느낄 수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조차 “나는 니그로(흑인)가 싫어요. 내 핏줄은 스페인이죠”라고 우쭐해하며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인류학박물관의 마지막 전시관에는 인디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시실이 마련돼 있었다.

국가의 박물관은 이미 사라져버린 문명이나 죽은 시대에 대한 유물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에게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뿌리가 있어야 나무가 있고 잎이 나고 꽃이 핀다. 역사도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또 미래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세계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여행작가



>> 멕시코시티

해발 2240m에 위치한 멕시코의 수도로 인구는 약 2000만명이다. 인구밀도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의 상업, 예술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테오티우아칸 문화부터 아스테카 문명까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535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청의 수도가 된 이후 멕시코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811년 이달고의 독립선언 이후 여러 번의 전투 끝에 1821년 독립했다. 멕시코시티의 하이라이트로는 테오티우아칸, 인류학박물관, 디에고리베라, 시케이로스의 거대한 벽화들, 코요야칸과 프리다칼로 박물관 등이 있다.

>> 여행정보

멕시코시티까지 직항은 없다. 1회 이상 경유하는 항공으로는 일본항공, 아메리칸항공, 콘티넨탈항공이 있다. 모두 21시간 이상 소요된다. 멕시코의 화폐는 페소(Peso)로, 1페소는 116원 정도다. 환전은 달러를 가져가 페소로 환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편리함을 원한다면 현금카드를 이용해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돈을 찾을 수 있다. 저렴한 호스텔은 145페소 정도, 현지인 레스토랑은 40∼50페소면 이용할 수 있다. 치안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며 행인이 드문 시간에는 밖을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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