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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몸’ 양성 목표 일 메이지정권이 도입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엔 ‘전쟁놀이’로 변질
“전시행사 아닌 아이들 주인공되는 놀이의 장 돼야”
운동회-근대의 신체/요시미 슌야 외 지음/이태문 옮김/논형/1만5000원

운동회는 만국기 휘날리는 널찍한 운동장에 온 식구가 의기양양하게 등교해 온종일 뛰고 먹고 응원하던 학교를 매개로 한 일종의 마을 축제다. 학생들은 한 달 이상 매스게임, 기마전, 곤봉체조, 달리기 연습을 하며 운동회 날을 준비하고, 행여 비라도 올까 봐 전전긍긍하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9, 10월이면 전국 대부분의 초중등학교·유치원에선 운동회가 열린다. 그러나 운동회가 전쟁놀이를 통한 ‘일제의 건강한 신민(臣民)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과 함께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요시미 슌야 외 지음/이태문 옮김/논형/1만5000원

운동회가 일제 잔재라는 주장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다. 최근 논형출판사가 번역 출간하고 있는 ‘일본 근대 스펙트럼’ 시리즈의 한 권인 ‘운동회-근대의 신체’에 따르면 운동회는 바로 ‘신체의 규격화를 통해 근대 민족국가가 요구하는 국민을 만들어내는 축제의 장이자 교육의 도구’였다. 그것이 전쟁 수행을 위한 용감한 전사든, 대량 생산을 위한 튼튼한 노동자든, 아니면 근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내는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이든 ‘건강한 몸’이 요구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메이지 정권이 1874년 도입한 운동회(당시엔 ‘경투유희’로 불렸다)는 처음엔 물론 근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건강한 정신’과 근대 규격으로 재단된 ‘건강한 몸’을 강력한 국가의 초석으로 삼는 데 목적이 있었다. 외국인 교사 지도로 시작된 운동회 종목도 달리기, 높이뛰기, 세단뛰기, 공던지기 등 개인 기량 겨루기가 주류였다.
◇기를 쓰고 장대 오르기 경기에 여념이 없는 초등학생들.

하지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운동회는 깃발뺏기, 줄다리기, 그물 빠져나가기, 기계·병식체조와 행진은 물론 심지어 총검술 시범까지 도입되는 등 변질하기 시작했다. 행사장 장식엔 천막과 일장기·만국기가 필수품이었고, 개막식엔 일왕의 칙어 봉독과 국가(國歌)인 기미가요 취주 합창을 장엄한 의식으로 거행하는 등 국가행사로서의 색채가 짙어졌다. 폐회식 때는 만세삼창을 빼놓지 않았다. 운동회가 주로 열린 11월3일은 메이지 왕의 생일이어서, 운동회와 천황제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도 입증됐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제국주의가 극에 달했던 일제 말기엔 기병습격, 비행기놀이, 장난감전차 종목이 도입되는 등 운동회는 ‘황국신민 양성’에 충실히 동원됐다.
당시 일본의 지배에 놓여 있던 한반도 각급 학교에서 시행되던 운동회도 일본 본토와 같은 형태로 진행된 것은 물론이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제 치하의 운동회는 사진처럼 장난감 전차까지 동원되는 등 전쟁놀이로 전락했다.

필자 중의 한 명인 유아교육학자 가미스키 마사코는 “자기 아이 차례만 되면 앞다퉈 나가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등 운동회는 부모를 위한 행사로 전락됐다”고 비판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질서를 강요하고 집단의식을 심어주는 유치원의 운동회는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운동회 폐지론을 폈다. 운동회는 더 이상 전쟁 준비를 위한 동원도,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닌, 진정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놀이의 장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근원도 모른 채 운동회 때마다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기를 쓰고 이기려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회도 종목 조정 등 일제 잔재를 털어내는 게 어떨까.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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