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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시험 답안지 파쇄 사태… “재시험 제공, 원치 않으면 환불도”

입력 : 2023-05-24 06:00:00 수정 : 2023-05-24 09: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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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력공단 주관 기사시험
답안지 포대 18개 중 1개 누락
채점센터 확인요청 후에야 인지

응시자들 언론보도로 사태 파악
공단, 재시험 등 대책 내놨지만
난이도 등 형평성 논란 불가피
대규모 소송 이어질 가능성도

지난달 치러진 국가기술자격시험 답안지 600여건이 채점을 하지 않은 채 파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시험을 응시하고도 채점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은 한 달 가까이 영문을 모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가 시험을 다시 봐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한 사과문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필답형 답안지 609건이 파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 측은 응시자 대비 답안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달 20일에서야 처음 인지했고, 21일 답안지가 파쇄된 사실을 파악했다.

 

공단이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기까지는 다시 이틀이 걸렸다. 공단은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합격자 발표 이전까지 피해자들에게 재시험 기회를 제공해 추후 공무원 시험 응시 등의 자격 활용에 불이익이 없게 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6월 1∼4일 추가시험 기회를 제공하고, 이 기간 시험을 볼 수 없는 피해자들은 같은 달 24∼25일에 치를 수 있도록 했다. 재시험에 따른 시간과 교통 등의 비용도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가기술자격시험의 특성상 취업이나 생계를 목적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재시험에 관한 기회와 비용을 보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험이 절대평가이긴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뒤 다시 응시하는 상황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답안지 파쇄에 따른 피해는 응시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지만, 공단 측은 “인수인계 과정의 착오”라는 설명만 내놓고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개별 연락을 통해 재시험 일정과 피해보상안을 설명할 예정이다.

 

어수봉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긴급 브리핑에서 “국가자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자격검정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에 피해를 입힌 점,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애초에 금고 아닌 창고 방치된 답안지… 공단은 30일간 몰랐다

 

초유의 정기 기사·산업기사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 사태는 국가기술자격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관리 부실이 주된 요인이다. 국가자격기술시험은 공무원이나 사기업 임용 조건 등으로 쓰이고 있어 향후 결과를 두고 작지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23일 공단에 따르면 답안지 부실 관리는 시험 당일 서울서부지사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23일 서울서부지사에는 당일 관할 지역 시험 16개 시험장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18포대가 도착했다. 그런데 이 중 17개 포대만 정상적으로 금고에 입고됐고,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온 답안지가 담긴 포대는 직원의 실수로 금고 옆 창고에 방치됐다. 이튿날 금고에 있던 답안지는 다른 지역 채점센터로 보내졌다. 연서중 답안지는 이 과정에서 누락됐지만, 채점센터 관계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개 숙인 어수봉 이사장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자격시험 답안지 무더기 파쇄’ 사태에 대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공단이 사태를 파악한 시점은 한 달쯤 뒤인 지난 20일이다. 응시자 대비 답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한 채점센터는 서울서부지사에 확인을 요청했다. 이때는 이미 창고의 모든 서류가 파쇄된 뒤였다. 공단은 답안지 파쇄 사실을 확인한 뒤 이틀이 더 지난 이날에야 해당 사실을 알렸다.

 

응시자 609명은 이날 언론을 통해 사태를 처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답안지 파쇄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파쇄 사실 확인 뒤 통보도 늦어 공분은 더 커지는 분위기다. 공단은 재시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6월 1∼4일, 24∼25일에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하고, 시험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환불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히 재시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란 목소리가 높다. 재시험을 6일에 걸쳐 진행해 공단은 6번의 시험 문제를 다시 내야 한다. 공단 측은 절대평가여서 공정성에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시험 난이도 등을 두고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법률사무소 다반의 방효경 변호사는 “응시 날짜에 따라 문제가 달라지고 시험 당일 지식 습득 정도나 컨디션 등 변수가 많아 피해가 완전히 회복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 달 중순 예정된 다른 시험에 이번에 문제가 된 시험의 자격증을 제출할 계획이었던 사람들의 경우, 1∼4일에 재시험을 치르지 못한다면 이번 사태의 여파가 더 커질 수 있다. 나머지 수험자 15만명과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관련 시험 준비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이날 “시험 끝난 지 한 달이나 됐는데 어떻게 또 준비하라고 할 수 있나”, “소송해야 한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공단은 추가 보상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이 예상된다는 지적에 공단 관계자는 “손해가 최대한 복구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단은 또 책임자 문책과 함께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2023년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황당한 무능이 국가자격시험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국가기관에서 시험관리를 얼마나 허술하게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며 “청년들의 희망을 자신들의 실수로 한순간에 짓밟아 놓고서는 이제 와 고작 한다는 말이 추가시험 기회 제공”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어 이사장은 문재인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며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어 이사장은 “한 명 한 명에게 연락해 사과하고,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철저히 조사해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거취로 책임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권구성·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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