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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자이’ 2년 새 전셋값 5억대 하락… “집주인·세입자 갑을 바뀌어”

입력 : 2023-02-13 06:00:00 수정 : 2023-02-13 15: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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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셋값 수억원씩 ‘뚝’

고금리에 신규 입주 폭탄 영향
강남권, 세입자 못구해 발동동

강남권 11개구 전셋값 1.11% 하락
강북권 14개구보다 하락폭 30% 커

신축 하락에 구축아파트도 ‘뚝뚝’
“세입자에 더 살아달라 부탁할 판”
역전세난 심해져 ‘역월세’도 속출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전용면적 84㎡)는 지난달 12일 12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2021년 1월에 같은 단지의 같은 평형이 17억50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5억5000만원 낮은 금액이다. 2020년 11월 16억원에 전세 계약이 성사됐던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블레스티지’(84㎡)도 지난 7일 보증금 5억5000만원을 낮춰 10억5000만원에 재계약이 체결됐다.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금리로 전세자금 대출 부담이 커지자, 전세 수요가 급감하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고액 전세 비중이 높은 강남권은 올해 급증한 신규 입주 물량까지 맞물려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고금리와 대규모 입주 물량 등의 영향으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12일 강남구의 한 중개업소 사무실에 아파트 전세 매물표가 붙어 있다. 뉴스1

12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6일 조사 기준) 강남권 11개구의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보다 1.11% 하락했다. 강북권 14개구 하락폭(-0.77%)보다 30%가량 더 큰 수치다.

서울에서는 통상 새 학기를 앞둔 이사철에 아파트 전셋값이 강세를 유지하고, 그중에서도 학군 수요의 영향으로 강남권 전셋값이 더 많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전세자금대출의 높은 이자 부담을 감안해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전세 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여기에 예년에 없던 신축 아파트 물량 폭탄이 강남권에 더해지며 역전세난이 극에 달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은 2만5729가구로 전년 대비 6.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울 공급량의 4분의 1에 달하는 6371가구(24.8%)가 강남구에 몰려 있다. 인근 서초구와 동작구까지 합치면 1만가구 훌쩍 넘는 신축 아파트가 쏟아질 예정이라 세입자들 입장에서는 전셋집을 급하게 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달 말 입주 예정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59㎡)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세 보증금 호가가 13억원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6억∼7억원대 전세 매물이 다수 올라와 있다. 비슷한 시점에 입주를 앞둔 동작구 흑석동 ‘흑석리버파크자이’(84㎡)도 지난해 10억원 수준이었던 시세를 대폭 낮춰 최근 보증금 5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기도 했다.

 

신축 전셋값이 떨어지자, 구축 아파트도 영향을 받고 있다. 강남구 ‘개포주공 6단지’(73㎡)는 2021년 5월 7억원이었던 전셋값이 지난달 4억원으로 하락했다. 동작구 흑석한강푸르지오(84㎡)는 지난달 5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2021년 10월(11억5000만원) 계약과 비교하면, 보증금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락 폭이 덜할 뿐 강북권 전세시장의 상황도 비슷하다. 노원구 ‘상계주공 6단지’(58㎡)는 2021년 2월 2억8000만원에서 지난달 2억4000만원으로, 4000만원 낮은 가격에 전세 계약이 신고됐다. 2년 전 보증금 7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던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59㎡)도 지난달에는 2억원 내린 5억5000만원에 세입자를 구했다.

 

역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집주인이 되레 세입자에게 월세를 내는 역월세도 종종 있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 2억원을 낮추지 않는 대신 그만큼의 전세자금대출 이자분을 계산해 집주인이 다달이 세입자에게 입금해주는 식이다. 집주인이 목돈을 구하지 못해 낮춘 보증금 일부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할부로 갚기도 한다

 

마포구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에 집주인이 계약서상으로는 보증금을 2억원 깎았지만, 1억5000만원만 우선 돌려주고 매달 210만원씩 입금하는 식으로 계약한 경우도 있다”면서 “집을 팔지도 못하고, 전셋값도 크게 떨어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달 할부로 갚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공인중개사 아파트 매물표 모습. 뉴스1

세입자와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 집주인이 내부 벽지를 새로 해주거나 화장실 리모델링 등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강남역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갑을(甲乙) 관계가 바뀌어서 집주인들이 ‘제발 더 살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분위기”라며 “재계약할 때 집안 리모델링과 함께 벽걸이 TV 설치나 못 박기 금지 등 특약사항 삭제를 요구하는 세입자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역월세난은 앞으로도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전셋값이 추가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신규 입주 물량까지 늘어나면서 하락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며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 방침도 밝혔기 때문에 전세 공급이 더 늘어나고, 수요는 상대적으로 월세로 몰리는 상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싸게 나온 물건이 다 빠지고 호가가 올라간다고 해도 여전히 시세를 밑도는 수준으로 본격 회복세라기보다는 매물 소화 과정으로 보인다”며 “고금리로 인한 전세대출 부담이 있고 집값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입주 물량이 더해져 전세가는 당분간 오르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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