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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회피·늑장 대응에 분노한 튀르키예…생존자 2차 위기도 [이슈+]

, 이슈팀

입력 : 2023-02-09 16:00:00 수정 : 2023-02-09 16: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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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10만명 넘길 수도…경제타격 GDP 최대 6%”
구조 지연·지진세 용처·부실공사 정황 놓고 비판 속출
당국 대응에 불만 터져 나오던 소셜미디어 사용 통제도
물·연료·전력 동났다…WHO ‘생존자 2차 재난’ 진단
“재난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60년 동안 영향을 줄 것”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강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현지 정부의 책임회피와 늑장대응에 양국 국민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지진에 대비한다며 세금을 걷어가던 당국이 부실공사를 방관해 건물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한편 생존자 구조와 피해 수습 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피해 현장을 방문해선 재해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책임회피성’ 발언까지 내놓자 대중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1세기 최악의 재난으로 꼽히는 이번 강진은 피해 규모가 워낙 넓어 아직 제대로 피해 집계조차 안되는 상황이다. 시시각각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8일(현지시간)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명을 넘길 확률을 14%로 예측했다. 사망자가 1만∼10만명일 가능성은 30%, 1000∼1만명은 35%로 내다봤다. 특히 USGS는 “이 지역 주민 상당수가 지진에 취약한 구조물에 거주하고 있다”며 산사태와 같은 2차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지진 피해지역인 남부 카흐라만마라슈시에서 생존자와 포옹하고 있다. 카흐라만마라슈=AP연합뉴스

USGS는 또 이번 지진에 따른 튀르키예의 경제적 손실 추정규모를 앞선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2%에서 6%로 다시 올려잡았다. USGS는 손실이 100억∼1000억달러(약 12조5000억∼125조원)일 확률을 34%로 가장 높게 예상했으며, 10억∼100억달러(약 1조2500억∼12조5000억원)에 이를 가능성은 29%로 봤다. 1000억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24%가량 된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실언에 허탈한 국민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지진 피해 지역인 남부 하타이주 등을 방문해서 당국 대응에 대해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고 CNN방송 등이 전했다. 하지만 그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상황은 명백하다”며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있기는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부가 재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관련해서는 “일부 부정한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허위 비방을 늘어놓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지금은 단결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며 “이럴 때 순전히 정치적 이익을 따져 네거티브 공세를 펴는 이들을 견딜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진이 발생한 지 이틀 만인 8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남동부 도시 카라만라스를 방문해 피난처를 찾은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재 튀르키예에서는 구조작업 지연, 지난 20여 년간 징수한 ‘지진세’(특별통신세)의 불분명한 용처, 속절없이 무너진 건물들의 부실공사 정황 등을 놓고 주민 불만이 끓어오르는 모습이다. CNN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강력한 지진으로 마을들이 무너져내리며 대중 좌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피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지난 6일 새벽 지진이 처음 덮친 후 12시간이 지날 때까지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왔다. 무너진 건물에 깔린 주민들을 꺼내려 친척과 경찰관들이 구조대 대신 직접 맨손으로 잔해더미를 치워야만 했고, 저녁이 다 돼서야 당도한 구조대는 몇 시간만 일한 뒤 밤이 되자 퇴근했다는 것이다.

 

특히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대응을 강화하겠다며 20여년 넘게 이른바 ‘지진세’를 걷어 왔지만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고 초기 대응도 제대로 되지 않아 세금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튀르키예는 지난 1999년 1만7000여명이 사망한 서북부 대지진을 겪은 후 지진 예방과 피해 대응에 쓰겠다며 지진세를 도입한 바 있다. 지진세의 정식 명칭은 ‘특별통신세’(Special communication tax)로 그간 총 880억리라(약 5조9000억원)를 걷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 발생 후 당국 대응 비판 메시지가 터져 나오던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최근 튀르키예 내 접속이 차단되기도 했다. 튀르키예 출신으로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제이넵 투펙치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튀르키예에서 트위터가 통제되고 있다는 다양한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며 “일부 트위터 사용자들이 당국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 왔다”고 지적했다. AFP는 튀르키예 경찰이 지진에 대한 정부 대응을 비판한 소셜미디어 이용자 18명을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강진으로 붕괴한 튀르키예 남부 카흐라만마라슈 엘비스탄의 건물 잔해에서 한 여성을 구조하고 있다. 엘비스탄=AP연합뉴스

◆부실공사로 건물 피해 키워

 

튀르키예에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지진 규모도 컸지만, 그만큼 건물이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새벽에 갑자기 들이닥친 강진으로 잠들어 있던 주민들이 대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이미 1만5000명을 넘어선 사망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BBC는 지진 피해 지역 상황이 전달되면서 현지의 건축 안전규제 등이 허술하고, 규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지진 타격을 받은 동부 도시 멜레티에서 무너진 한 빌딩은 작년에 완공된 것으로, 소셜미디어에는 이 건물이 최신 방진 규제를 통과했고 최고의 자재와 기술로 지어진 1등급 건물이라고 홍보하는 분양광고 이미지가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구도시 이스켄데룬의 한 아파트는 2019년 지어졌으나 지진으로 인해 거의 두 개로 쪼개져 한쪽이 폭삭 내려앉았다. 건축 전문가들은 아무리 지진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지어진 건물은 어떻게든 선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재난학 교수 데이비드 알렉산더는 “지진은 매우 파괴적이었지만 잘 지어진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준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남부 광역 하타이 도심이 지진 발생 다음날인 7일(현지시간) 폐허로 변해 있다. 하타이=AP연합뉴스

튀르키예에서는 북서부 대지진이 발생한 1999년 이후 내진 규제가 대폭 강화됐고, 2018년에도 내용이 더 추가됐다. 최신 방진 규제는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지역에선 건축물에 고품질 콘크리트를 쓰고 철근으로 보강하도록 한다. 기둥과 보는 지진의 충격을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내진 규제 역시 충분치 않다고 봤다.

 

부실 건물이 양산된 데는 정부의 방만한 관리도 한몫했다.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안전규제를 위반한 건물에 대한 과태료 등 행정처분 등을 감면해줘 부실 건물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건설공학자 펠린 피나르 기리틀리올루는 “튀르키예 남부의 지진 영향권 지역의 건물 7만5000개 정도는 이같은 행정처분 면제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생사위기 처해

 

지진 피해는 버텼지만, 생존자들은 또 다른 생사위기에 처해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생존에 필요한 물과 식량, 연료 등을 구하지 못해 생존자들이 2차 위기에 몰렸다며 긴급 지원을 호소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지 기상 상황과 계속되는 여진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간과 싸우고 있다”며 “생존자들에게는 피난처와 식량, 깨끗한 물,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8일(현지시간) 소방관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건물 잔해 속에서 매몰된 사람들을 찾고 있다. 가지안테프=AP연합뉴스

AFP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홀든 WHO 지진 대응 관리자는 현재 지진 피해 지역에 물, 연료, 전력, 통신 공급이 중단된 상태라고 전하면서 “수색·구조작업과 같은 속도로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2차 재난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많은 생존자가 지금 끔찍한 여건에서 야외에 머물고 있다”며 “이들이 생존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긴급한 책무”라고 말했다.

 

현재 피해 지역에서는 겨울 폭풍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도로는 지진으로 파손돼 교통과 통행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델하이트 마르샹 WHO 비상대책관은 생존자들이 처해있는 위험을 설명하면서 “근본적인 건강 위험이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시리아에서는 12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인해 여러 기반시설이 파괴되면서 콜레라 등 치명적 전염병, 호흡기 질환, 상처 부위의 2차 감염이 창궐해 공중보건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이라고 WHO 전문가들은 전했다. 지난해 8월 말 이후 시리아에서 보고된 콜레라 환자는 약 8만5000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난을 겪은 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도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비상 대응팀장은 “지역사회가 지난 60시간 동안 겪은 심리적 스트레스는 60년 동안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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