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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 마야 리 랑그바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입양인들의 공동 증언이자 선언”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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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13 07:30:00 수정 : 2022-07-12 13: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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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입양인 출신 작가이자 번역가였던 마야 리 랑그바드(Maja Lee Langvad)가 덴마크에서 지원금을 받고 다시 방한한 시기는 2007년이었다. 이미 한 해 전, 한국에서 자신을 낳아준 한국인 친부모를 만났지만 통역을 불러야 하는 언어 장벽에 감정적 장벽까지 있어서 한 동안 교류를 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몇 달 정도만 한국에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입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평하는 사회운동가와 학자, 예술가, 작가들로 이뤄진 입양인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한국 내 입양인, 한국에서 태어나 세계 각국으로 입양된 입양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입양인들을 만났다. 통상적 리서치나 인터뷰가 아닌 유기적 만남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입양인뿐만 아니라 입양 시스템과 산업, 입양 이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입양 전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물론 입체적 이해를 쌓아갔다. 특히 국가 간 힘의 균형이 어떻게 입양이라는 형태로, 사업과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도 알게 됐다. 사람들과 입양 문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어느 새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간은 당초 계획과 달리, 3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7년 방한 이후, 개인으로서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어요. 양부모와 관계뿐만 아니라, 친부모와 관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동료 사이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죠. 무엇보다 제 스스로를 바라보는 렌즈가 바뀌었어요. 글을 쓰는 과정이 저에겐 양면적이었다고 느껴졌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간 쌓여왔던 분노를 소화하게 되기도 했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제가 분노하는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죠. 더 입체적으로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완성하는 데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죠. 그것의 과정이자 결과물이 이 글입니다.”

 

덴마크 작가 랑그바드는 2014년 개인 및 윤리적 관점을 넘어서 국가 간 입양의 허상과 이를 용인하는 구조와 질서를 통렬하게 비판한 장시집 『Hun Er Vred(그 여자는 화가 났다)』를 덴마크어로 출간했다. 다시 8년 만에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전문 번역가 손화수씨의 맛깔스런 번역을 통해 최근 국내에서도 『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난다)으로 출간됐다.

랑그바드는 장시에서 국가 간 입양이 비서구권 국가의 아이들을 상품화해 서구의 부유한 가정으로 ‘수출’되는 것과 다름없다고,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모국 밖으로 유통시켜 부모가 되고 싶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고발한다.

 

특히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 반복하면서 독자들에게 놀라운 리듬 및 호흡감을 선사하는 한편, 다양한 층위의 입양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변주한다. 그러니까,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18쪽)처럼 ‘그 여자는... 화가 난다’로 시작해 300여 페이지를 일관한 뒤 마지막 322쪽 역시 “여자는 가슴속에 솟구치는 울분을 진작에 치유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치유하기 위해 더 일찍 마음을 열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화: 불꽃을 잠재우는 지혜』라는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던 앤드류에게 화가 난다.”고 끝맺는다. 내용도, 형식도, 리듬도 모두 놀라운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인 김혜순은 ‘추천의 글’에서 “한국인들이여, 자 이제, 우리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하라, 우리가 전 세계에 버린 아이들이 돌아왔다”며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 바라보라”고 썼다. 덴마크 신문 『인포메이션』은 덴마크어판 출간 당시 “이러한 종류의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서정적으로 표현된 감정, 산문, 논쟁, 비평, 그리고 세심한 주석을 담은 랑그바드의 책은 개인이 어떻게 정치와 절망적으로 섞이게 되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덴마크와 한국의 증언”이라고 소개했다.

랑그바드는 왜 시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한 장시를 통해 입양 문제를 다뤄야만 했을까. 도대체 그 여자는 왜 화가 났을까. 랑그바드 작가를 한국어판 번역 출간을 계기로 지난 7일 서울 합정동 카페에서 기자들과 함께 만났다.

 

―덴마크에서 출간된 지 8년 만에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처음 덴마크에서 『그 여자는 화가 났다』를 출간할 때 덴마크 독자를 주로 염두에 두고 쓴 것이 맞지만, 책을 쓰는 내내 한국에서 책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음 한 켠에만 두고 있던 소망이 8년 만에 이뤄지게 돼 기쁘다. 다만 입양인이라는 정체성으로만 읽히지 않고 작가로서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 왜냐하면 저는 입양을 당한 사람이기 전에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꼭 번역됐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시를 쓰는 과정이나 시 안에 텍스트는 제가 만난 여러 나라 입양인들이 공동으로 하는 증언이자 선언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서 출간 직후 반응은 어땠는지, 적대적인 반응도 있었다는데.

 

“실제로 책에 대해 분노하는 편지를 물리적으로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경청하듯 읽어주셨고, 많은 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입장을 생각하고 반응해 주셨다. 당시 덴마크에선 입양을 비판하고 비평하는 문화는 거의 없었는데, 책이 나온 이후 다른 여러 입양인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오늘날엔 아주 흔한 대화 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가난이나 복지제도 미확립 등 현실적 여건에 따른 입양은 어떻게 보는지.

 

“친부모가 혼자 아이를 길러야만 하거나, 재정적으로 어렵거나, 사회 구조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기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경우 그것을 선택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아직도 절대적으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한국전쟁과 관련해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 태어난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찾지 못하고 입양이 돼야 했던 것으로 안다. 입양을 보내는 이유는 다 다르고, 그 이유 역시 계속 변한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가장 낮은 한국에서 왜 입양률이 계속 높아지는지 고민하게 되고 의심하게 된다. 아들을 원했는데, 딸을 얻게 된 부모가 입양한 경우도 있다더라. 국가 간 입양이 이루어지던 시기, 입양이 하나의 사회적인 도움일 뿐만 아니라 사업이자 산업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시의 주어가 ‘그 여자’여야 했는가.

 

“친부모와는 2006년 처음 만나 5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책에서 친부모가 언급된 부분은 자전적으로 쓰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가 경험한 이야기도 있지만, 여러 사람의 개인적 경험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나’가 아니라 ‘그 여자’가 주어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쓰는 동안 화자로부터 거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여러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와서 공통된 증언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 간 입양은 여성 인권 문제로도 이어지기도 한다. 제가 입양될 때 여자라는 이유로 먼저 입양이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니까, 입양은 사실 성과도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는 페미니즘 이슈와도 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한국에선 유명 인사들의 입양이 미디어를 통해 어떤 선행처럼 보여지기도 한다고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양을 통해 새 집을 찾아가는 건 기쁜 일이지만, 이후 혼자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겪는지, 재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 등의 이야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간담회의 사회를 맡은 출판사 난다의 김민정 대표는 이때 덴마크어 ‘Hun’을 ‘여자’가 아닌 ‘그 여자’로 번역한 건 김혜순 시인의 아이디어였다며 “멀리뛰기를 할 때 도움을 받는 발구름판처럼” ‘그’가 앞에 붙어 ‘그 여자’가 됨으로써 말과 문장이 큰 힘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여자는 왜 화가 났을까를 궁금하게 묻게 되는 것이 이 문장이 주는 큰 힘”이라며 “한 개인이 얼마나 정치적 이슈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탬버린처럼.

―시에서 술어로 계속 ‘화가 난다’고 말했는데, 화는 좀 풀렸나.

 

“이 시를 이끈 가장 큰 요소 가운데 하는 분노일 것이다. 분노는 잘 다스려지지 않을 때 파괴적 경향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관리할지 잘 학습하면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알 수 있는 과정이었다. 건강한 형태의 분노를 계속 모색할 때,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불씨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계속 찾아나가고 싶다. 입양인으로 건강하게 분노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제가 느꼈던 분노는 깊은 슬픔으로도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슬픔은 제가 친부모로부터 분리돼야 한다는 슬픔이기도 했지만, 입양에 대해 알게 되면서 체계적 입양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국가 간 입양은 양부모에게도 입양인에게도 좋은 일로만 인식되는데, 입양인으로 겪게 되는 어려운 점도 많고 모두에게 이익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라는 걸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친부모를 찾아 모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저 가족을 만나는 자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 체계를 맞닥뜨리는 자리이기도 하다는 걸 체험하고 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표현을 계속 반복하면서 묘한 리듬과 호흡감을 주는데.

 

“제가 구상하게 된 글쓰기 스타일을 계속해 연구하고 확장해 나가고 싶었다. 문장들이 반복되고, 같은 구조에서 그 내용이 달라지고, 호흡이 달라지고, 리듬이 달라질 때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탐구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여자는 화가 난다’고 시작되는 문장들이 충분치 않을 줄 알았는데, 글을 계속 쓰고 배우면 배울수록 새롭게 분노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문은 이 책은 단지 시일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장르라고 말하고 싶다. 형식적으론 장시 형식을 따르고 있고 시적인 리듬과 호흡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여러 입양인의 다양한 서사를 가지고 여정을 이어가기 때문에 인물들을 따라가는 소설 읽기로도 체험해 주시면 좋겠다. 의도적으로 하이브리드 장르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 유기적으로 나왔다. 산문가이자 시인인 저의 정체성이 한 곳에 모인 결과물이다. 저에겐 늘 전복적 시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소설이지만 시에 가깝게 쓰는 작업도 있었고, 시각적 언어와 다른 여러 문서 형태와 조합된 작품도 계속 써왔다. 기존에 제시하지 못한 장르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다.”

 

놀라운 것은, 랑그바드가 ‘그 여자는 ... 화가 난다’ 표현 사이에 입양 이슈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나 뉴스 보도, 문학 속 입양 서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변주하면서 시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여자는 친부가 한국전쟁 때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12살에 불과했다./...여자는 한국전쟁이 베트남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기억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는 3백만 명 이상이나 된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89쪽)라며 독자들을 한국전쟁으로 이끌어가고, “여자는 문학작품 속에서 입양인들이 자주 사회와 이상적인 가족관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현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들 작품 속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모두 입양인들이다.”(65쪽)라고 하면서 문학 속으로 인도하기도 하니까....

 

놀랍게도, 한국에서 태어난 지 겨우 2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어린 소녀 마야 리 랑그바드는 입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양모와 둘이서만 살아갔다. 더구나 양부는 그에게 자주 연락도 하지 않았고, 양부의 새 아내 역시 그가 집을 찾아가면 대놓고 싫은 티를 냈던 모양이다.

 

“여자는 여자를 입양했던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곧 이혼할 부부에게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모국의 문화는 물론 친부모와의 이별까지 경험했던 아이를 입양해놓고 바로 이혼을 해버린 양부모에게 화가 난다./여자는 이혼을 한 후 자신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양부에게 화가 난다.”(70쪽)

 

그는 백인인 양부모와 피부색이 달랐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묻거나, 찢어진 눈을 가졌다고 놀리는 아이를 만날 때면, 그는 백인이 아니라는 걸 자각해야 했다. 그럼에도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제가 자라는 근처에는 한국인은 없었고 모두 백인인데다가 제가 배은 생활양식 역시 백인문화였고 백인의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한국인이라고 느끼지 못하던 시절 길거리에서 한국에서 온 입양인을 만나면 그들을 외면하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됐죠. 제가 그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겁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랑그바드는 백인의 정체성에서 백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갔다. 천천히 또는 어느 순간은 벼락처럼. 친구를 통해서, 글을 읽으면서, 특히 놀랍게도 시를 읽고 쓰면서.

 

“어린 시절부터 저는 늘 언어에 관심이 있었고, 시를 즐겨 읽곤 했어요. 언어 안에서 누리는 이미지와 자율성, 그리고 소리 같은 것에 매혹되었고 어느 순간 시를 쓰게 됐죠.”

 

1980년 1월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해 3월 덴마크로 입양된 마야 리 랑그바드는 2006년 덴마크의 이민과 난민 정책을 담은 개념시와 산문 모음집 『덴마크인 홀게르씨를 찾아라(Find Ogier Dane)』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데뷔했는가.

 

“저의 첫 시집 『덴마크인 홀게르씨를 찾아라(Find Ogier Dane)』를 펴내면서 덴마크에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와 스타일이 달랐다. 짧은 시들과 산문, 저의 입양 문서들, 입양인으로서 지원하기 위해 문서 등을 다루고 당시 덴마크에서 일어나고 있던 여러 형태의 인종 차별, 우리가 아직 주목하지 못하던 난민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놀랍게도, 랑그바드는 이 시집으로 덴마크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보딜-외르겐뭉크크리스텐센 데뷔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국가 간 입양이나 국가적 정체성, 인종 차별과 이민, 음식, 질병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다양한 형식의 저술을 펴냈다. 현재 덴마크와 스웨덴, 한국의 다양한 예술인들과 함께 연극, 영화,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한국학 교수 카린 야콥센(Karin Jakobsen) 등과 함께 김혜순 시인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을 덴마크어로 번역 출간했다. 보딜-외르겐뭉크크리스텐센 데뷔문학상, 덴마크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 덴마크창작문학아카데미(Danish Academy of Creative Writing)를 졸업했다.

 

―덴마크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수자로 살고 있는데.

 

“덴마크에서도 한국에서도 늘 소수자였다고 느낀다. 항상 바깥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자리가 많았고, 그렇기에 조용히 관찰하고 배우는 지점이 있었다. 롤 모델이기도 한 미국의 시인은 엄마이자 전사, 소수 인종이자 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비주류성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을 직면하는 글쓰기를 한다. 저 또한 그렇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자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덴마크어로 출간된 2014년 이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면 아마 지금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입양인에게 큰 주목을 보내지 않았고, 성 소수자로서 정체성을 이야기하기에 아직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소수자들이 용기를 내었기에 저 같은 입양인도 조금 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성소수자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그들이 어떻게 연대하는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만나서 듣고 싶다.”

 

―당신에게 뿌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입양인으로서 친부모를 찾는 것은 중요하고 뿌리를 알아가는 중요한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부문은 자신의 친가족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를 새롭게 배우고 한국사 맥락 속에서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법적 제도적 개선을 이뤄 나가기 전에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가장자리에서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발견되지 못하는지,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식 방법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저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자랐지만, 충분한 가족의 형태라고 느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가족 형태를 대화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재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수자의 자리에 있는 동안, 우리가 선택하는 친구와 동료들도 여러 형태의 가족을 이룰 수 있다.”

 

그날 마야 리 랑그바드의 기자 간담회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직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례적으로 길고 활기찼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 이유가 오케스트라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기자들은 한 두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질문을 쏟아냈고, 랑그바드 역시 성실하게, 짧지 않게 답했으며, 중간에 통역도 영어와 한국어로 부지런히 통역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간담회를 주관한 난다의 김민정 대표 역시 중간중간 성실한 부연 설명으로 이해를 돕고 나섰으니까, 지휘봉을 휘젓듯.

 

“여자는 친부모가 자신을 입양 보낸 것을 수치스러워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의 친부는 그 때문에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되돌리기엔 너무나 늦은 일이다./ 여자는 지금 되돌리기엔 너무나 늦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123쪽)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삼백 페이지가 넘는 장시 내내 이렇게 ‘화가 난다’고 썼고, 간담회 내내 분노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던 랑그바드가 마지막에 한 말이었다. 진심 어린 표정과 목소리로. 그 말은, 바로 ... 놀랍게도 ... 감사였다. “시간 내서 이 자리에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애정 어린 시선으로 훌륭한 질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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