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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예이츠 시 인용에 바이든 "런던 같으면 못 들어"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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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2 15:44:46 수정 : 2022-05-22 15: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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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영국 ‘앙금’ 거론해… 청중 사이에 폭소
브렉시트 이후 영국·아일랜드 간 긴장 다시 고조
‘北아일랜드 정세 관련해 英에 경고한 것’ 해석도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환영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건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께서 좋아하시는 시인 예이츠는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이라고 했습니다. 한·미가 그렇습니다.”(윤석열 대통령)

 

“예이츠 시를 인용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런던에서는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아일랜드 문호이자 192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소환했다. 아일랜드 혈통인 바이든 대통령을 배려해 윤 대통령이 예이츠 시를 인용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아일랜드와 영국의 ‘악연’을 떠오르게 하는 농담으로 화답한 것이다.

 

이를 두고 최근 악화하는 북아일랜드 정세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이 영국 정부에 조심스럽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한 일정 마지막날인 22일 전날의 한·미 정상회담 뒷얘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핵심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환영하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주최한 만찬 도중 있었던 일들이다.

 

윤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듯 예이츠 얘기를 꺼냈다. 만찬사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께서 좋아하시는 시인 예이츠는 ‘인간의 영광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들을 가진 데 있었다’라고 했다”며 “한·미 양국은 서로의 훌륭한 친구”라고 먼저 화두를 제시했다. 그러자 답사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감격한 듯 “예이츠 시를 인용해서 얘기해주신 것에 대해서 굉장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에서는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던졌는데 이를 알아들은 참석자들 사이에 폭소가 터진 것이다.

1923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아일랜드의 문호로 불리는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는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를 비판하고 아일랜드의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작품을 남겼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영국와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앙숙처럼 지냈다. 이는 거의 1000년에 걸친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와 관계가 있다. 18세기부터 본격화한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영국의 거친 탄압을 받았고,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는 영국의 차가운 외면 속에 아일랜드 주민 약 100만명이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수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바이든 대통령 또한 아일랜드계 이민의 후손이다. 20세기 들어 1921년 아일랜드가 자치권을 얻어 영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했을 당시 북아일랜드 지역은 영국에 남는 길을 택했고 이는 양국의 불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일랜드가 영국 등 연합국을 돕는 대신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걷자 윈스턴 처칠 총리 등 수많은 영국인은 아일랜드에 불쾌감과 배신감을 토로했다.

 

독립 이후에도 북아일랜드 지역에선 영국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분리주의 세력과 영국의 일부로 남으려는 연방주의자들 간 갈등으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1998년 벨파스트 협정으로 평화가 정착됐으나 최근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벨파스트 협정의 핵심은 영국과 아일랜드가 북아일랜드 지역에서 양국 간 자유로운 인적·물적 왕래를 보장한 것인데,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단행한 뒤 일이 꼬였다. 아일랜드는 EU 회원국인 반면 북아일랜드가 속한 영국은 더 이상 EU와 무관하게 된 것이다.

영국·아일랜드 국경 모습. 사진 왼쪽은 영국령 북아일랜드 땅, 오른쪽이 아일랜드 땅이다. 연합뉴스

이에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로 바뀐 현실을 반영해 벨파스트 협정을 수정하려 하자 EU와 미국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영국이 벨파스트 협정을 약화하는 선택을 하면 미 하원은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아일랜드 혈통인 바이든 대통령도 북아일랜드 문제에 관해선 영국 편을 들기가 어렵다는 입장이 확고해 보인다. 그는 최근 “북아일랜드를 비롯해 아일랜드섬 안에서 국경이 계속 개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라면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를 인용해 친구 관계를 강조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취지의 바이든 대통령 농담이 실은 영국 정부를 겨냥한 점잖은 경고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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