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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와인 향기 따라가는 호주 야라밸리 낭만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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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5-22 11:00:00 수정 : 2022-05-22 10: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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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축복한 땅 호주 야라밸리 180년이 넘는 와인 역사/기후·토양 좋아 고품질 샤르도네·피노누아 생산/거대한 통창으로 호주 대자연 즐기는 뷰맛집 레스토랑 갖춘 와이너리 즐비/와인과 청정 식재료 입이 호강하는 미식 여행의 ‘끝판왕’

도멘 샹동 포도밭 전경

드넓게 펼쳐진 초록 잔디밭. 뭉게구름 둥실 떠가는 푸른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누렇게 익어가며 가을을 알리는 광활한 포도밭까지. 세상의 참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여기에 모아 놓았나 보다. 저 멀리 산까지 또렷할 정도로 완벽하게 깨끗하면서도 목가적인 모습은 마치 극사실주의와 낭만파 화가  작품을 한데 섞어 놓은 듯 묘하다. 신이 축복한 땅, 호주 야라밸리 포도밭. 파라솔이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테이블에 앉아 마스크를 내팽개치듯 벗어 던진다. 얼마 만에 느끼는 자유인가. 오렌지와 얼음 한조각 띄운 스파클링 한 모금 목젖으로 흘려 보내니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미소가 혈관을 타고 발끝까지 흘러간다.

블랙 앵거스
블랙 앵거스 퀸빅토리아마켓 오가닉 과일

◆미식 와인의 마리아주, 야라밸리 낭만 여행

 

재미있는 지도가 있다. 호주 대륙 지도에 유럽 대륙 전체를 그려 넣었는데 아직 빈자리가 많다. 서부 퍼스에서 동부 시드니까지 호주 대륙의 동서 길이는 무려 4100km.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의 거리와 대략 비슷하다. 광활한 땅 만큼 호주는 다양한 청정 먹거리가 차고 넘친다. 재래시장에는 친환경으로 재배한 당도 높은 오가닉 과일과 신선한 채소가 널렸고 소고기 수출 세계 2위답게 촘촘한 마블링을 자랑하는 최고급 와규가 미식가들을 불러 모은다. 방목으로 스트레스 없이 자라는 소들 덕분에 신선한 치즈 등 유제품은 덤이다. 여기에 넓은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바닷가재, 문어 등 풍부한 해산물까지. 청정 식재료 미식 여행의 ‘끝판왕’을 꼽으라면 단연코 호주다.

예링 스테이션 피노누아
예링 스테이션 레스토랑

또 하나 중요한 호주 먹거리가 와인. 호주 와인 연간 수출액은 2021년 기준 25억6000만달러로 프랑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전세계 4위. 와인 산지 65곳, 포도 재배 생산자 6000명, 와이너리 2156개로 포도밭 14만6244ha에서 연간 14억8000ℓ를 생산한다. 최근 2년동안 두배 넘게 성장한 한국 와인시장에서 호주 와인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6위. 빅토리아주 멜버른 여행의 매력은 멋진 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을 갖춘 와이너리들이 많아 여행·미식·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멜버른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한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도착하는 야라밸리(Yarra Valley)가 빅토리아주 대표 와인 산지로 ‘터줏대감’은 예링 스테이션(Yering Station). 빅토리아주에 처음 들어온 포도나무가 바로 이곳에 심어졌는데 1838년이니 무려 180년이 넘는 역사다.

예링 스테이션 전경
예링 스테이션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예링 스테이션 양고기 숄더랙

미술관처럼 꾸민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탄성이 쏟아진다. 5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은 층고와 사방으로 뚫린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호주의 대자연이라니. 빅토리아주 레스토랑중 최고의 ‘뷰맛집’ 답다. 전망 좋은 창가에 앉아 라디치오 렐리쉬를 곁들인 양고기 숄더랙과 피노누아 품종 레드 와인 한잔을 곁들인다. 피노누아의 본고장 프랑스 부르고뉴의 유명한 마을단위 와인 뺨친다. 실크같은 탄닌과 산도, 당도의 완벽한 밸런스, 고급 향수같은 은은하고 우아한 향은 육즙과 농염하게 어우러지며 비강을 가득 채운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집밥에만 길들여졌던 혀가 오랜만에 호강하는 시간.  가리비 관자를 곁들인 생선요리, 훈제오리·연어, 삽겹살 구이, 안심 스테이크 등을  2코스는 1인당 75호주달러, 3코스는 90호주달러에 즐길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 주요 와인산지
호주 와인산지 번호

호주 와인 역사는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도착한 뉴사우스웨일즈 시드니에서 가까운 헌터밸리(Hunter Valley)에서 시작해 남쪽 빅토리아주를 거쳐 다시 서쪽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의 바로사밸리(Barossa Valley)에서 쉬라즈 품종 와인으로 활짝 꽃을 피운다. 호주 최남단 빅토리아주는 포도나무 뿌리를 죽게 하는 필록세라의 습격으로 한때 와인산업이 초토화된 곳. 하지만 남극과 가까운 야라밸리는 서늘한 기후 덕분에 모닝턴 페닌슐라(Mornington Peninsula), 절릉(Geelong)과 함께 최고의 피노누아·샤르도네 생산지로 요즘 뜨면서 다시 옛 영광을 되찾는 중이다. 40대에 은퇴한 돈 많은 의사들이 장인정신으로 최고의 피노누아 와인을 소규모로 만들어낸다는 점이 특징.

도멘샹동

프랑스 샴페인을 만드는 세가지 품종은 화이트 샤르도네와 레드 피노누아, 피노뮈니에다. 야라밸리 역시 샤르도네와 피노누아가 잘 자라니 스파클링을 생산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죽은 효모와 함께 병에서 2차 발효해 빵과 효모의 풍미를 풍성하게 더하는 샴페인 방식으로 만들어 눈감고 마시면 영락없는 샴페인이다. 야라밸리에 자리 잡은 도멘 샹동(Domaine Chandon)으로 들어서자 멋진 슈트를 차려입은  ‘꽃중년’ 컨슈머 비즈니스 디렉터 맷 제인스(Mat Janes)씨가 먼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는다.

도멘 샹동 스프릿 오렌지 비터
도멘 샹동 로제 스파클링
호주 도멘 샹동 포도밭

5월은 호주의 가을이 시작되는 때. 벌써 노란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포도밭을 즐기며 많은 여행자들이 파라솔 아래서 스파클링 와인을 즐기는 풍경이 수채화가 따로 없다. 제인스씨가 웰컴주로 내민 와인은 얼음과 오렌지를 넣어 마시는 ‘신박한’ 로제 스파클링 ‘스프릿 오렌지 비터(Spritz Orange Biters)’. 양파 껍질을 닮은 환상적인 빛깔은 ‘여심 저격’에 제격이다. 조만간 한국에도 출시될 예정. 

파울스 와인즈 레스토랑
파울스 와인즈 오너 맷 파울스

야라밸리 북쪽 와인산지 스트라보기 레인지(Strathbogie Ranges)에서도 보석같은 파울스 와인즈(Fowles Wines)를 만난다. 역시 층고 높은 통창으로 멋진 포도밭 뷰를 즐기며 런치를 즐길 수 있는데 음식과 와인 페어링 묘미에 푹 빠질 수 있다. 와인의 맛과 향이 극대화되도록 메뉴마다 잘 어울리는 파울스 와인을 보기 쉽게 매칭해 놓아 와인을 잘 몰라도 즐기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파울스 와인즈 가리비와 바라문디
파울스 와인즈 해산물 차우더

멜버른에서 유명한 포트알링톤산 홍합과 가리비, 오징어, 새우를 듬뿍 넣은 해산물 차우더에는 파울스 샤도네이를  매칭한다. 목초를 먹여 키운 소로 만든 스테이크에는 같은 쉬라즈를 곁들이는 식이다. 또 크렌베리와 아몬드를 곁들인 구운 콜리플라워에는 섬세한 피노누아를, 천천히 익힌 양고기에는 산지오베제, 구운 호박을 넣어 만든 리조또는 아르네이스와 함께 하면된다.

파울스 와인즈 레드 와인
파울스 와인즈 화이트 와인

파울스 와인들은 이름이 아주 독특한데 사냥과 관련됐다. 시그니처 레인지는 ‘레이디스 후 슛 데얼 런치(Ladies who Shoot their Lunch)’로 ‘여성도 자신의 점심거리를 사냥할때’라는 뜻이고 동물들이 그려진 ‘아 유 게임?(Are you game)’은 ‘도전할 준비가 됐냐’는 뜻을 담았다.  메인 메뉴가 31∼42호주달러로 매우 착한 편. 이 와인은 아베크와인이 한국 시장에 공급한다. 

퀸빅토리아마켓 오가닉 채소
퀸빅토리아마켓 오가닉 과일
퀸빅토리아마켓 프로케타
퀸빅토리아마켓 아이스크림

◆자연이 키운 청정 식재료

 

빅토리아주는 고기, 유제품, 과일, 가공식품 등 호주의 먹거리 산업을 이끄는 곳이다. 수출액이 2020-2021년 100억달러로 호주 전체 먹거리 수출의 23%를 차지한다. 우유(73%), 가금류(31%), 양고기(42%) 수출 1위이고 과일·너트는 호주 생산량의 38%다. 한국으로는 12개~48개월 소고기, 와인, 유제품, 체리·포도 등 과일이 많이 수출된다.

 

이런 호주의 신선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멜버른 시내의 퀸빅토리아마켓(Queen Victoria Market)으로 1878년에 문을 연 뒤 140년 넘게 멜버른 주민들의 식탁에 다양한 먹거리를 올리고 있다. 야외 테이블에는 많은 이들이 앉아 돼지고기 요리인 포르케타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풍경이 축제 분위기다. 활기가 넘치는 시장으로 들어서자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데 모두 오가닉 인증을 받았다. 600개가 넘는 상점들이 소, 돼지, 양에서 캥커루 고기까지 온갖 종류의 고기를 부위별로 팔고 치즈, 해산물 등도 만날 수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야라밸리 데어리 수출매니너 리키 리니아(Niki Rynia)
야라밸리 데어리 치즈 플레이트
야라밸리 데어리 염소

치즈 마니아라면 야라밸리 데어리(Yarra Valley Dairy)를 빼놓을 수 없다. 호주에서 최초로 페타치즈를 선보인 곳으로 연간 25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빅토리아주 낙농업 농가 70%가 몰려 있을 정도로 야라밸리는 와인뿐아니라 유제품 생산의 핵심 기지. 6종 치즈를 맛보는 치즈플래터는 45호주달러로 크래커, 빵, 올리브 등과 함께 나오고 야라밸리 와인도 구매할 수 있다. 크리미하고 농밀한 페타치즈를 크래커에 얹어 먹으니 와인 한잔이 저절로 떠오른다.

인더스트리 빈 창업자 트레버와 스티븐 시몬스 형제
멜버른 인더스트리 빈 커피

◆커피 마실까 진앤토닉 즐길까

 

호주 사람들의 자국 커피 브랜드에 대한 자존심은 대단하다. 스타벅스가 백기를 들고 호주에서 모두 철수했을 정도니 말이다. 공대 출신 스티븐과 디자인을 전공한 트레버 시몬스 형제가 2010년 조그만 창고를 개조해 창업한 인더스트리빈(Industry Beans)은 요즘 호주의 가장 핫한 커피 브랜드. 시드니, 브리즈번 등에 매장 7개를 운영하고 카페 200여곳에 커피 제품을 공급한다.  1835년 형성됐을 당시 거리 풍경을 그대로 간직해 멜버른의 핫 플레이스인 피츠로이(Fitzroy) 골목으로 들어서자 천정을 유리로 만들어 개방감이 돋보이는 화이트톤의 깔끔한 카페가 등장한다. 농밀한 맛이 일품인 아이스커피가 매력. 

포 필러 디스틸러리 바텐더 리지 윌란스(Lizzie Willans)
포 필러 진 제품들

이제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힐스빌 릴리데일 로드에서 진을 만드는 포 필러 디스틸러리(Four Pillars Distillery)로 향한다. 한국에서도 많이 즐기는 대표 스피릿 진 앤 토닉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2019년과 2020년 세계 3대 주류 품평회인 국제주류품평회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에서 ‘베스트 진 프로듀서’에 선정된 멜버른 스피릿 명가. 디스틸러리로 들어서자 월마, 주드 등 직원들 어머니 이름을 본딴 증류기에서 향긋한 진 내음이 묻어난다. 알콜도수 41.8도에서 불이 붙는 58.8도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증류과정에서 마케도니아산 주니퍼, 오렌지, 고수씨, 아니스, 안젤리카, 라벤더, 강황, 생강 등 다양한 향신료와 마카다미아를 넣어 만든다. 최고급 피버트리(Fever Tree) 토니워터를 섞은 진 앤 토닉 한잔을 마신다. 허브향으로 시작해 고소한 너트향이 비강에 가득 퍼지며 여행의 피로를 씻는다.


멜버른(호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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