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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먼저 보내고”…잘못된 판단에 7세 발달장애아 등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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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03 16:53:16 수정 : 2022-03-03 16: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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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둘다섯해누리’의 이기수 신부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들이 발달장애를 앓는 7세 아들과 20대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이의 장애를 비관한 고립감이 원인이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3일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로 40대 A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A씨는 전날 오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의 자택에서 장애를 앓던 아들 B(7) 군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같은 날 오후 7시쯤 A씨의 오빠로부터 “A씨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A씨 자택을 방문해 숨진 B군과 함께 있던 A씨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자해를 한 상태였으나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 초등학교 입학식 날 목숨 잃은 7세 발달장애아…‘말기 암 투병’ 어머니는 20대 지적장애 딸 살해

 

미혼모인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주택 반지하방에서 B군과 단둘이 살며 아들을 시설이나 센터에 맡기지 않고 홀로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B군은 숨진 당일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예정이었으나, 끝내 학교에 가지 못했다. 

 

수원시에 따르면 A씨는 그동안 한 달 160여만원의 기초생계·주거급여와 모자가정아동양육비, 장애아동수당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군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같은 날 경기 시흥시에선 말기 암 투병 중인 50대 C씨가 생활고를 비관해 지적장애가 있는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자수했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이날 오전 살인 혐의로 C씨를 시흥시 자택에서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C씨는 전날 오전 시흥시 자택에서 20대 딸 D(지적장애 3급)씨를 질식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이튿날인 이날 오전 8시쯤 딸의 뒤를 이어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딸을 죽였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C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집 안에선 C씨가 쓴 유서가 발견됐다. 갑상선암을 앓는 C씨는 과거 남편과 이혼하고 지적장애가 있는 딸과 단둘이 살아오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동이 불편해 별다른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 C씨에게는 기초생활보장 수급비와 딸의 장애인수당, 그리고 D씨가 가끔 아르바이트로 벌어오는 돈이 수입의 전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와 C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잇따른 발달장애인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생명 경시 풍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발달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둘다섯해누리’의 이기수 신부는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트라우마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 ‘내가 죽기 전에 아이 먼저 보내야 한다’는 잘못된 판단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립을 벗어나도록 주변 도움이 필요하며 어떤 경우에도 살인이나 자살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전국 발달장애인 22만여명 중 시설 입소 2만여명…가톨릭사회복지위,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 반대”

 

둘다섯해누리에 따르면 지적장애와 자폐를 아우르는 발달장애 인구는 전국에 22만여명이 있다. 하지만 시설에선 2만여명만 수용이 가능하고, 나머지 90%가량의 발달장애인 중 적잖은 수가 제대로 된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설을 지을 때 정원의 30%가량을 유료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입소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이다.

 

이 신부는 “우울증 위험에 노출된 발달장애인의 가족이 쉴 수 있는 집중치료센터를 확충하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주거시설을 마련해야 한다”며 “부모가 죽은 뒤 이들을 돌봐줄 자립요양센터 설립도 절실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지난해 9월 정부가 내놓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종합계획)’이 다사 회자되고 있다. 정부의 종합계획에는 현재 사회복지시설 등 거주시설에 머무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정부가 자립기반을 마련하고 이주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가톨릭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한국가톨릭주교회의 산하 사회복지위원회는 이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이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없애고 오로지 온전한 자립만을 강조하는 비현실적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위원회는 지역사회의 장애인 지원체계가 부실한 상황에서 추진되는 종합계획이 중증발달장애인이나 최중증장애인의 돌봄과 보호책임을 장애인 본인과 가족에게 전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유럽 선진국에선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적합한 생활 형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증발달장애인 중 행동 정도가 심해 부모가 통제할 수 없거나, 부모가 건강 악화와 사망 등으로 장애인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장애인 가족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는 설명이다.


수원·시흥=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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