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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크리크』 엔지 김 “행복 앞에 옷 벗은 실용적 공리주의와 의무론, 당신의 선택은”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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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9 07:30:00 수정 : 2022-02-08 16: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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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태양을 향해 까르륵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는 갈매기 떼, 갈매기들 아래에서 정념의 격정처럼 육지를 향해 쉼 없이 몰아치는 하얀 파도, 그 파도의 꽁무니를 따라와선 쏴쏴 하며 울려대는 파도의 소리....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손님이 거의 없는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톰 오브라이언의 소설 『숲속의 호수(In the Lake of the Woods, 1994)』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법정 변호사로 일하던 이십대의 어느 날, 어려운 사건 세 건을 연달아 맡아서 힘겨운 몇 달을 보낸 뒤 휴가를 내고 남편과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태평양이 보이는 곳에서 실험적인 구조를 가진 매력적이고 복잡한 소설에 빠져든, 완벽한 하루였다.

 

“정말 좋았어요. 변호사가 된 이후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날 저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인생 전체에서 저를 만족시킬 뿐 아니라 매일매일 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후 맥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고, 거기서 만난 동료와 닷컴 회사를 차렸으며, 다시 회사를 매각한 후에는 전업 주부가 됐다. 지금은 모두 건강하지만, 어렸을 때에는 세 아들 모두 각자 병을 앓고 있어서 자주 병원에 가야 했다. 가정주부는 그 동안 해온 일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었고, 주부의 모든 일은 버거웠다.

 

어느 날, 동네 홀푸드마켓에서 갑자기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마침 한 친구가 울고 있는 그를 보고 다가와서 안아줬고, 그는 그동안 겪은 일들을 친구에게 모두 털어놨다. 그는 이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날 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끄집어내고, 머릿속에서 정리할 수 없던 복잡한 생각을 풀어내는 걸 도와주는.

 

“저는 글쓰기를 곧바로 사랑하게 됐어요. 자유롭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죠. 처음으로, 그 동안 바로 이 일을 찾아 헤맨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다른 직업들과 달리 예술적으로 지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나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을.”

 

글쓰기에 매료된, 한국인 이민자 출신인 엔지 김은 자신의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소설이었기에, 어릴 적 미국 볼티모어로 이민을 온 자신과 가족의 삶과 경험이 적지 않게 담겼고. 첫 소설이었기에, 다루는 것 자체가 압도적으로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선, 소설 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그렇게 쓰고 싶은 소설들도 다 다시 읽으며 개요와 구성을 뜯어보았고요.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 러셀 뱅크스의 『달콤한 내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같은 책들이요. 두 번째론, 스스로에게 두려워할 것 없다고, 어차피 이 책은 아무도 안 읽을 거라고 되뇌었어요. 성공한 작가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첫 소설은 서랍 속에 처박아두는 ‘습작’이었다는 글을 읽었거든요. 실제로 글쓰는 방의 벽에 대문자로, 이건 소설이 아니야(THIS IS NOT A NOVEL), 라고 써 붙여놓기도 했어요.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다고(예를 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 반이 지나도록 누가, 왜, 어떻게 불을 질렀는지 모르지만 괜찮다고), 이건 그냥 내 실력을 연마하는 연습이라고 매일매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다 쓰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흠, 어쩌면 그냥 습작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엔지 김의 장편소설 『미라클 크리크』(문학동네)는 이렇게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었다.

 

소설은 버지니아의 작은 마을 미라클 크리크에서 한국인 이민자 가족 유씨가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 ‘미라클 서브마린’의 산소탱크가 폭발해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시작한다. 화재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담뱃불에 의한 의도적인 방화라는 결론이 나고, 사망한 아이의 어머니 엘리자베스가 방화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기소된다. 나흘간의 살인 재판을 따라가면서 그날 정말로 무슨 일어났는지 서서히 밝혀지고, 마침내 삶과 세상의 누추한 비의가 하나둘씩 벗겨지는데.

“그런 게 바로 인생이었다. 모든 인간은 백만 개의 경우의 수가 얽히고설킨 결과물이었다. 백만 개의 정자 가운데 하나가 정확한 시간에 난자에 도달해 탄생하는 인간은 천분의 일 초라도 어긋났다면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고 만다. 하나씩 놓고 보면 하찮기 짝이 없는 사소한 것들 수백 개가 모여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다.”(306쪽)

 

첫 소설이었음에도, 작품은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울러 『타임』, 『워싱턴 포스트』 등 유명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2020년 에드거상, ITW스릴러 어워드, 스트랜드 크리틱스 어워드 등 수많은 상을 휩쓸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이미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0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이 놀라운 소설은 도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11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비범한 작가의 문학적 여로는 어디로 향해 갈까. ‘장님 코끼리 만지기 격’일지라도, 알고 싶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출판사와 번역가 이동교씨의 도움을 받아 엔지 김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기자의 질문은 우둔했지만, 그의 답변은 너무나 현명하고도 풍성했으니.

 

―첫 소설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으로 쓴 소설이어서, 저라는 사람을 소설 속에 많이 집어넣었어요. 이 소설에 영감을 준 제 삶의 주요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소는 한국인 이민자로서 보낸 제 어린 시절이에요. 저는 열한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서 볼티모어로 이민을 와서, 부모님이 다운타운의 위험한 지역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동안 이모와 살았죠. 한국에서는 친구도 많은 똑똑한 아이였는데, 미국에선 영어를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상한 옷을 입고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인 중학생이 돼버린 거예요. 그때 저는 말을 잃었어요. (소설 속) 십대 이민자인 메리 유와 가족이 미국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친밀함을 잃는 내용에, 저라는 사람을 형성한 당시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습니다.”

 

―체험이 많이 담긴 소설 속 에피소드 가운데 사실과, 사실이 아닌 사례를 알려 줄 수 있나요.

 

“메리 유가 버지니아의 미라클 크리크로 이사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상당수가 실제로 저와 제 가족이 경험한 것이에요. 부모님이 두 분 다 저와 함께 볼티모어로 이민을 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고요. ‘기러기 아빠’ 현상은 제가 미국으로 이민했던 1980년대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유의 가족처럼) 부모님이 볼티모어의 위험한 지역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운 좋게도 멋진 이모의 가족과 함께 살았어요. 엄마의 가장 친한 자매인 이모 헬렌과 이모부 필립(슬프게도 202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촌 마이크와는 아직도 가깝게 지내요. 그런 면에서는 메리보다 제가 미국에서 더 나은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비록 중학교 때 놀림을 당하고 십대 때 저보다 나이가 많은 백인 남자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일들은 아직도 고통스럽지만요.”

―소설에선 법정에서 진실이 몇 차례나 그 모습이 바뀌고,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뒤집어지는 등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법정 변호사는 저의 첫 번째 직업이었고, 저는 그때 법정에 있는 것이 아주 좋았어요. 그 외 변호사로서의 다른 일은 다 싫어했고, 그래서 20대에 그 일을 그만두었지만요. 제가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최대화하기 위해 제게 익숙한 재판 과정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법정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드라마를 직접 봤으니까요. 가장 확실했던 증인마저도 법정에서 선서를 한 뒤, 마음이 동요하고 본인의 기억을 확신하지 못해요.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생략하는 것과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것 사이의 선이 흐릿해지죠. 그리고 ‘자주’ 목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담당한 사건에서도 증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증언을 해서 변호사로서 기분 좋은 스릴을 느꼈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법정 장면을 쓸 때, 저는 피고측 변호사인 섀넌이 검사의 증인들에게 반대심문을 하는 장면을 전략적으로 활용했어요. 그 장면들을 쓸 때 가장 재밌기도 했고요. 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일도 상대측 증인을 심문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들의 증언과 심리를 통해 동기를 알아내고 그 사실을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증거 자료와 그들의 이전 진술을 종합해 계속 그 다음 질문을 생각해내고, 그러면서 그들의 논리에서 허점을 찾아내 의문을 제기하는 것. 이 즉흥성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섀넌의 논리를 미리 구성한 뒤 중간에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최대한 빨리 움직이며 맹렬한 속도로 장면을 써내려갔습니다. 단어 선택이나 플롯에 끼칠 영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불안해하거나 망설이지 않고요. 보통 저는 극도로 느리게 쓰는 작가라, 소설의 다른 부분들을 쓸 때와는 아주 달랐지요. 꼭 제가 다시 법정에 있는 것 같았어요. 증인들에게 제가 원하는 말을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더 재밌었고요. 변호인의 환상이 이루어진 거죠!”

 

―딸 메리가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를 놓고 남편 박 유와 아내 영 유가 왜 차이를 보이는 걸까요.

 

“저는 박과 영 둘 다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어떻게 했을지 잘 모르겠네요. 둘 다 딸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궁극적으로 딸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서로 관점이 달랐던 거죠. 결국 행복에 대한 심리적 관점이 결합된 도덕적 철학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박은 실용적 공리주의자인 반면, 영은 칸트 같은 의무론자인 거죠.”

 

―소설 마지막에서 영과 테리사가 손을 쥐고 미라클 서브마린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는 장면은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오, 와우!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닌데, 무의식이 우리를 그쪽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제가 영어로 처음 읽은 책이에요. 이모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소설을 읽고 모르는 단어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고 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이모 집 거실에서 두꺼운 책과 사전을 나란히 두고 엎드려 읽었던 제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요. 제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이라, 질문을 읽고 나니, 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의 토양과 타라의 토양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의식적으로 떠올린 것은 아닐지라도, 그 장면을 쓸 때 마음 한구석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주요 인물들이 모두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는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불교적인 사상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요.

 

“맞아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제 믿음이기도 하고, 현재 집필하고 있는 두 번째 소설에서 탐구하는 주제이기도 해요. 저는 법적 개념으로서의 ‘인과관계’는 그 범위가 너무 좁아서 한 사람이나 사건에 부당하게 책임을 묻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주요 장면의 묘사나, 대사와 지면의 처리, 영감이 담긴 문장 등 문장이나 문체가 훌륭한데, 소설 글쓰기를 어떻게 단련한 것인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단련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재밌게도 저는 어릴 때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늘 열성적으로 책을 읽었어요. 끊임없이 독서를 했고, 어떤 책이 마음에 들면 여러 번 읽고 또 읽었어요. 팁을 이야기하면, 저는 제가 글을 쓰는 과정을 ‘메소드 글쓰기’라고 불러요(‘메소드 연기’와 비슷한 거예요). 저는 예전에 배우였는데(인터라켄 아트 아카데미라는 고등학교에서 공연예술 중 연극을 전공했어요), 그때 하루에 네다섯 시간 동안 특정한 캐릭터가 되어서 즉흥연기를 했어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미라클 크리크』는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진행되고 챕터마다 관점이 바뀌어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할 때, 저는 일주일 정도 그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면서 지난번에 이 사람에 대해 쓴 이후로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아내려고 노력했어요. 또다른 팁은 작품을 가족이나 친구나 글쓰기 모임이나 편집자나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받는 건, 제가 글 쓰는 과정에서 아주 유용했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글을 너무 느리게 쓴다고 스스로를 놀리곤 했는데, 사실 저에겐 그편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읽었을 때 문장이 마음에 들고 자랑스럽고 행복하다면, 저는 다섯 시간 동안 딱 한 문장만 써도 괜찮습니다.”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다는 소식에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꿈”이 실현된 기분이라고 했는데, 왜 이런 감정일까요.

 

“정말 행운인 게, 『미라클 크리크』는 여러 나라에 판권이 팔렸어요. 하지만 한국 시장은 미국 작가에게, 한국계 미국 작가일지라도 녹록하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제 에이전트가 한국에서 오퍼가 들어왔다고 했을 때는 정말 놀랍고 기뻤답니다. 그것도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출판한 꿈의 출판사에서요. 미국에서 한강 작가의 책은 호가스출판사에서 나오는데, 제 다음 책도 그 출판사에서 나와요. 한국에 있는 이모들과 사촌들이 서점에 가서 제 책을 보고, 부모님과 헬렌 이모와 다른 가족들에게 제 책을 나눠주는 상상을 했어요. 한국어로 쓰이고 내 한국 이름이 적힌 책이라니…. 한국에 있을 때 책을 읽던 기억이 워낙 생생해서 그 상상에 압도된 것 같아요.”

 

*

 

학교 가는 길에 해바라기가 핀 버려진 정원 같은 데를 지나다가 햇볕에 따뜻해진 해바라기 씨를 따먹었고, 공기놀이를 하기 딱 좋은 크기의 자갈을 찾기도 했다. 쉬는 시간엔 다른 여자 친구들과 사방치기와 줄넘기를 했고,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는 남자 아이들을 꼬집다가 혼나기도 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면 의자를 뒤집어서 책상에 올려놓고 다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바닥에 왁스칠을 하며 교실 청소를 했다.

 

아직도 어릴 적 서울의 추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의 한국 이름은 김수연.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열한 살이던 1980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급변한 삶의 행로를 마주해야 했다. 부모가 식료품점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동안, 그는 볼티모어의 이모 집에서 지내며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사이 이름도 바뀌어, 엔지 김이 됐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윌리엄스&코널리에서 법정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2019년 첫 소설 『미라클 크리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왜 1980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우리 가족은 가난했어요. 다른 사람 집의 방 한 칸을 빌려서 살았고, 부모님은 우리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길 바랐죠. 헬렌 이모(엄마의 동생이자 가장 친한 친구)는 존스홉킨스병원 외과 간호사였고, 미국에서 이모네 가족은 잘살고 있었어요. 아름다운 집이 있고 차도 여러 대고 실내 배관시설도 다 되어 있었죠. 이모가 미국 시민권을 얻었을 때, 자연스럽게 엄마는 우리 가족도 미국에 가서 비슷한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어요. 특히 저를 위해서, 제 미래를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때 당시에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제가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요. 제 경험을 토대로 소설 속 유씨 가족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평등한 파트너였어요. 엄마가 의견을 내지 않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며 ‘가장’인 아빠 말을 따르기만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엄마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과거에 무수한 성차별 속에서 제한된 기회밖에 얻지 못했고, 그래서 제게 다른 경험을 주고 싶어 하셨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예전에 선생님이 누가 반장이 되고 싶냐고 했을 때, 제가 손을 들었거든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여자애가 무슨 반장이 되려고 하냐면서 제 손을 자로 때렸어요. 엄마는 이 얘기를 듣자마자, 화가 나서 바로 교장실에 가서 항의를 했고요. 그 선생님은 제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손을 너무 많이 든다며 제 손을 자로 때린 적도 있거든요. 그때도 엄마는 화가 났었고요. 어쩌면 그 선생님은 손을 드는 것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아무튼 그때가 제가 미국 이모네 집에 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였어요.”

 

―서울에 대한 기억이 혹시 남아 있는 게 있는지요.

 

“정말 많아요! 다들 그렇듯 저도 어릴 때 기억은 조각조각 스치듯 떠오르는데, 아빠한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거나, 엄마랑 만원버스를 타고 엄마가 좋아하던 시내 중국집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매일매일 했던 일들이에요. 먹물이 빠질 때까지 붓을 헹군 뒤 조심히 물기를 말리던 거나, 길에서 달고나를 만드는 걸 구경하고 모양을 고른 뒤 아주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씩 잘라내고, 나중에 부스러기들을 한 번에 모아 입에 털어 넣었던 것도 기억나고요. 우리 때는 「오징어 게임」처럼 바늘을 쓰진 않았어요!”

 

―영어를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6권의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문학을 향한 애정을 키웠다고 소개됐는데요.

 

“미스터리 전집을 가져갔어요. 열 살 생일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신 건데, 양장 표지가 아주 아름다워서 제가 소중히 여기던 책들이었죠. 지금은 그 책을 다 가지고 있진 않지만(제 어릴 때 물건들은 대부분 코로나 초기에 부모님이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면서 창고에 맡겨두었어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한 권은 글을 쓸 때 늘 곁에 두었어요. 그 책에는 프레데릭 매리엇의 「하츠 산맥의 흰 늑대」, W.W. 제이컵스의 「원숭이 발」, H.G 웰스의 「마법 가게」, 앨저넌 블랙우드의 「인형」 같은 다른 단편들도 함께 실려 있고요. 포는 제게 정말 특별한 작가예요.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그의 단편과 시들을 제가 좋아하는데다, 볼티모어에 살았다는 공통점이 있고, 『미라클 크리크』가 그의 이름을 딴 상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던 책은 『캔디』였어요. 캔디라는 이름의 고아 소녀가 나오는 만화책과 TV 프로그램도 있었죠. 어릴 때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가지고 있는 책이 몇 권 없었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은 뒤 연기를 했어요. 보통 머릿속으로 했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는 소리 내서 하기도 했고요. 장면과 장면 사이 서술되지 않은 순간들에, 소설이 끝난 후에, 그리고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한 거죠. 그때 이야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제 사랑이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떠한지요.

 

“저는 지금 노던 버지니아에서, 남편과 결혼하던 해에 산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어요. 일상의 루틴은, 우선 일어나면 침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펜으로 15분에서 45분 정도 글을 써요. 몇 시에 일어났는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날인지 아닌지에 따라 시간은 달라져요. 운 좋게도 남편이 커피를 정말 잘 내려서 매일 침대로 한 잔 가져다주죠. 중학생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주고(남편이 아이를 준비시키고 도시락을 챙기고요), 일주일에 몇 번은 학교 조회(school assembly)에서 피아노를 쳐요. (오전 8시30분쯤)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글 쓰는 방(해리 포터가 지내던 벽장 같은 크기의 아주 작은 옷방이에요)에서 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책을 몇 페이지 읽어요. 『미라클 크리크』를 쓸 때는 주로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를 읽었어요. 지금 책을 쓰면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 캐런 러셀의 『Swamplandia!』를 주로 읽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해요. 하루의 나머지 시간 동안, 그 작은 옷방 바닥에 앉아서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하죠.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글을 쓴다고 보시면 돼요.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고 오후 늦게 트레드밀 책상에서 이메일을 읽고 답장을 쓰고요. 오후 6시가 되면 마티니 한 잔을 만들어서 그날 쓴 걸 읽고 퇴고하거나, 줌으로 친구들이나 글쓰기 모임과 이야기하거나, 제 책을 토론하는 북클럽 행사를 하거나, 작가 친구들이 새 책을 홍보하는 행사를 함께 해요. 그러고 나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저녁은 훌륭한 요리사인 남편이 만들어요!), 주말엔 TV나 영화를 보고, 한두 시간 글을 더 쓰다가 침대에서 책을 읽어요(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하루에 12시간쯤 글을 쓰는 것 같지만, 슬프게도 저는 사교적인 편이라 별로 생산적이지 못해요. 친구들과 그룹 채팅을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데 시간을 많이 쓰거든요. 집안일이나 아이들과 관련해 갑자기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작가로서 10년 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요.

 

“두 번째 소설의 초고를 한참 쓰고 있는 지금,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책을 한 권 이상 쓴 작가가 되고 싶어요!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작가로 성장하고 싶어요. 서로 다른 장르를 뒤섞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계속 반복하면서 판에 박힌 글을 쓰지 않는 작가로요. 저는 새로운 걸 탐구하고 배우는 걸, 새로운 것에 사로잡히는 걸 좋아해요. 40대가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고, 쉰 살이 되는 주에 미국에서 첫 책을 출간했어요. 비록 제가 일생 동안 열정을 가진 주제(정의와 상대적인 행복에 대한 철학적 관념)로 계속 돌아가긴 하지만, 다양한 작가가 쓴 새로운 작품들을 읽으며 성장해나가는 건, 인종과 젠더와 장애와 ‘정상성’에 대해 확고하게 내재된 사회적 추정을 계속해서 파고드는 건 정말 신나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기자가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아니면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노던 버지니아 집의 작은 옷방에는 50대 여성의 얼굴을 한 소녀가 앉아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해리 포터가 지내던 벽장 같은 크기의 아주 작은 방에서. 이야기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한 부분을 재현해 보고, 다른 단어와 구문을 넣어보기도 하며, 문장의 리듬을 확인하기 위해 소리 내서 읽어보고. 천천히, 그러나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가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아마도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선 공기놀이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기가 머리 위로 힘차게 올라가는 순간, 그의 시선도 함께 부풀어 오를 것이다. 상상력도, 꿈도, 그리고 오래된 기억도.(2022.2.9)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엔지 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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