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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떠나는 알자스 와인여행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관련이슈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 디지털기획

입력 : 2022-01-29 15:00:00 수정 : 2022-01-29 14: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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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알자스 콜마르 후파슈 매년 여름 ‘뮤직알타 페스티벌’ 열려 /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 무대 알록달록 동화속 세상 속으로 ‘풍덩’ / 중세마을과 포도밭 어우러지는 와인루트 170km 펼쳐져 / 콜마르 터줏대감 조셉 까당 12대 걸쳐 300년 넘게 와인빚은 ‘피노블랑과 리슬링의 마법사’
콜마르 쁘띠 베니스.

가냘프고 기다란 손가락. 물 흐르듯 건반을 쓰다듬기 시작하자 아름다운 선율이 알자스 엘리제 노트르담 성당 높은 천정까지 아련하게 울려 퍼집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알자스 뮤직알타 페스티벌의 단골손님 시몬 그라시(Simon Ghraichy)의 섬세한 연주는 아프리카로 쫓겨난 아랍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의 애틋한 사연이 어린 스페인 ‘그라나다의 보석’ 알함브라 궁전의 옛이야기를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 보이는 듯합니다. 와인과 클래식이 넘쳐나고 알록달록한 동화속 세상이 펼쳐지는 곳, 알자스 콜마르로 와인여행을 떠납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장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콜마르 그리고 뮤직 페스티벌

 

검은 연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가 요란한 철길옆 허름한 모자가게. 아버지가 물려준 이곳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착하게 살아가는 소피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치근덕거리는 군인들과 맞닥뜨립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하울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번엔 골목을 가득 채우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에 쫓기죠. 바로 이때. 하울은 소피를 끌고 하늘로 훌쩍 날아오르며 겁을 먹은 소피에게 외칩니다. “발을 내밀어서 계속 걸어! 겁낼 것 없어!” 알록달록한 지붕 위를 걷듯 날아가는 두 사람. 이때 경쾌하면서도 슬픈 OST 타이틀곡이 흘러나옵니다.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 2004년 개봉한 마야자키 하아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중 하나입니다.

콜마르 쁘띠 베니스.
콜마르 올드타운.

영화는 보는 내내 동화속 풍경같은 파스텔톤의 예쁜 마을에 푹 빠지게 만듭니다. 작품속 배경으로 등장한 마을은 바로 프랑스 알자스의 콜마르(Colmar). 로슈(lauch)강을 따라 예쁜 집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쁘띠 베니스(Petite Venise)에 서면 어느새 소피가 되고 하울이 돼 버립니다. 쁘띠 베니스뿐 아니라 콜마르 시내 어디를 걸어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이런 콜마르가 매년 여름이면 클래식 선율로 넘쳐납니다. 1996년 시작된 뮤직알타 아카데미 & 페스티벌(Musicalta Academy & Festival) 덕분입니다. 매년 7~8월 알자스 콜마르 시내에서 남쪽으로 차로 10분 거리인 아름다운 마을 후파슈(Rouffach)의 엘리제 노트르담(Eglise Notre-Dame de l'Assomption) 등에서 20일동안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지는데 수준 높은 다양한 뮤지션들이 참가해 청중들의 귀를 호강시킵니다. 또 세계적인 거장들이 참여하는 마스터 클래스도 마련됩니다. 아카데미는 9박10일동안 두 차례 열리고 아카데미에 참여한 학생들의 연주회도 무대에 올려져 한국 전공생들에도 매우 인기가 있답니다.

엘리제 노트르담 뮤직알타 페스티벌.
시몬 그라시 피아노 연주.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여름 뮤직알타 페스티벌을 찾았습니다. 곱실거리는 더벅머리와 엄청나게 빠른 손가락이 트레이드마크인 시몬 그라시의 피아노 연주가 엘리제 노트르담에서 열렸는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을 연주해 청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트레몰로 주법을 완성한 ‘기타의 사라사테’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작곡과 연주로 잘 알려진 곡이죠. 원곡과 거의 흡사하게 건반을 트레몰로 주법처럼 터치하는 시몬의 손가락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여기에 중세의 성당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연주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름에 알자스를 여행한다면 뮤직알타 페스티벌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겁니다. 

알자스 와인루트.
오베르네.
몽생트오딜.

◆콜마르 터줏대감 조셉 까땅

 

알자스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 음악과 함께 알자스를 더욱 빛내주는 것이 와인입니다. 알자스 주도인 북쪽의 스트라스부르 인근 마를렁하임(Marlenheim)에서 시작해 콜마르를 지나 남쪽 뮐루즈(Mulhouse) 인근 딴느(Thann)까지 170km 가량 언덕을 따라 포도밭이 펼쳐진 ‘알자스 와인 루트(La Route des Vins d'Alsace)’가 이어집니다. 또 와인 루트를 따라 오베르네(Obernai)-몽생트오딜(Mont Sainte Odile)-오쾨니스부르성(Chateau du Haut-Koenigsbourg)-리퀴위르(Riquewhir)-에기솅(Eguisheim)-후파슈 등 그림같은 중세마을과 관광명소가 펼쳐져 알자스 여행은 와인 마을을 따라가는 여행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까땅 와이너리 1층 와인샵과 중간층 갤러리.
까땅 루프탑 와인바.

이처럼 와인산지가 발달한 것은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입니다. 와인 루트는 서쪽으로 해발 1200m 높이 보쥬(Voges) 산맥과 동쪽으로 라인강을 끼고 있는데 보쥬산맥이 비바람을 차단하는 ‘비 그늘’ 효과로 알자스는 연중 강수량일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적은 500∼600mm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가을에 비가오지 않고 따뜻한 날씨가 유지되는 ‘인디안 섬머’ 기후 덕분에 포도는 서서히 무르익어 섬세한 아로마와 산도, 탁월한 풍미를 지닌 와인이 빚어집니다.

 

이런 알자스 와인루트에서 콜마르는 ‘알자스 와인 수도’라고 불린 답니다. 와인루트에는 크랑크뤼급 포도밭이 51개인데 이중 40여개가 콜마르와 주변에 몰려 있기 때문이죠. 많은 유명한 와이너리중에서도 조셉 까땅(Joseph Cattin)은 콜마르 와인루트의 터줏대감으로 통합니다. 스위스 출신 프랑수아 까땅(François Cattin)이 1720년 뮤직알타 페스티벌이 열리는 후파슈 인근 뵈그틀랑쇼펑(Voegtlinshoffen)에 정착해 와인을 직접 빚기 시작해 무려 12세대, 300년 넘게 와인을 빚고 있으니 콜마르의 산 증인이라 하겠네요. 현재는 자끄 까땅 주니어(Jacques Cattin junior)가 이끌고 있습니다. 까당 와인은 WS통상에서 한국에 들여오고 있습니다.

자끄 까땅 주니어.
브뤼 까땅 크레망.

◆피노블랑과 리슬링의 마법사

 

현대식 건물로 지은 까땅 와이너리로 들어서니 와인이 숙성되는 대형 나무 저장고 푸드르와 까땅 와인들이 전시돼 손님을 맞습니다. 1층은 와인을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는 와인샵입니다. 중간층은 갤러리로 꾸며져 있네요. 2층으로 올라서자 자끄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2층은 루프탑 와인바입니다. 테라스로 나서자 알록달록한 알자스 마을의 집들과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자끄가 내민 스프클링 와인 브뤼 까땅 크레망(Brut Cattin Cremant) 한잔을 마시자 여행의 피로는 순식간에 달아납니다. 프랑스 크레망들은 상파뉴와 같은 품종인 샤르도네, 피노누아, 피노뮈니에를 많이 사용하는데 브뤼 까땅 크레망은 독특하게 피노블랑과 옥세루아를 섞었네요. 그린애플과 레몬향, 하얀꽃향기의 싱그러움이 입안을 가득 채워 기분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웰컴주나 식전주로 가볍게 마시기 좋은 크레망이네요.

조셉 까땅 에모션 크레망.
조셉 까땅 에모션 크레망.

까땅은 알자스에서 가족경영 와이너리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뵈그틀랑쇼펑, 스타인바흐(Steinbach), 콜마르 인근 등 세곳에 소유한 포도밭은 모두 65ha 정도입니다. 조셉 까땅 크레망 에모션(Emotion)은 클레이와 라임스톤 토양에서 자란 샤도네이 80% 피노블랑 20%를 블렌딩합니다. 부드럽게 압착한 포도즙중 뀌베만 사용하며 24개월 병숙성을 거칩니다. 잘 익은 사과와 복숭아향이 후각을 지배하고 병숙성을 통해 얻어진 효모향과 브리오슈, 버터향도 풍성하게 따라오며 신선한 산도와 잘 어우러집니다. 달콤한 꿀향도 살짝 느껴지네요. 산도가 뛰어나 해산물과 아주 궁합이 좋습니다. 까땅 그랑퀴베 크레망은 무려 4년의 병숙성을 거치는데 에모션과는 반대로 피노블랑 80%에 샤도네이 20%를 블렌딩합니다. 알자스 대표 품종인 피노블랑을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품종에 관한 자신감과 노하우가 느껴지네요. 알자스에서는 피노블랑과 리슬링이 각 22%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이 재배하고 게뷔르츠트라미너 20%, 피노그리 17% 피노누아 8~10%, 실바너 6~7%, 뮈스카 2% 정도입니다.

까땅 그랑퀴베 크레망(오른쪽).
까땅 나뛰랄리떼 브뤼.

피노블랑은 피노누아에서 갈라져 나온 화이트 품종입니다. 사과 복숭아 등 핵과일 향과 풍미가 대표적이며 짙은 하얀 꽃 향기와 미네랄이 돋보이죠. 주로 알자스, 독일, 이탈리아 북부, 헝가리에서 재배되는데 풀바디의 드라이한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알자스에서는 보통 옥세루아와 많이 섞어서 만든다는 군요. 까땅 나뛰랄리떼 브뤼(Cattin Naturalite Brut)는 이런 까땅의 자신감이 집약된 와인으로 피노블랑 100%로 만든 크레망입니다. 까땅 와인은 모두 유기농으로 빚어 ‘비건 와인’으로도 불리는데 이 크레망은 그런 까땅의 자연주의 철학을 나뛰랄리떼로 표현했습니다. 엘더플라워 같은 신선하면서도 우아한 꽃향이 지배적입니다. 사과, 복숭아향과 토스티한 풍미가 입안에 퍼집니다.

조셉 까땅 셀러 전경.
조셉 까땅 지하 셀러 대형 푸드르.

자끄를 따라 까땅 셀러(Cattin Freres) 투어에 나섭니다. 와이너리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데 알자스 전통건물로 꾸민 외관이 돋보입니다. 지하 셀러로 내려서자 어른 키 두배 높이의 푸드르가 압도합니다. 약 5000ℓ짜리 대형 배럴들입니다. 이런 오래된 푸드르를 사용하면 오크향을 최대한 배제하고 신선한 과일향을 돋보이는 와인을 빚을 수 있답니다. 오래된 푸드르는 100년이 넘은 것도 있을 정도라고 자끄는 설명합니다.

브뤼 까땅 로제 효모찌꺼기를 보여주는 자끄.
기로팔레트를 설명하는 자끄.

한쪽 구석에서는 브뤼 까땅 로제(Brut Cattin Rose) 크레망이 기로팔레트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중입니다. 자끄는 환상적인 핑크빛으로 숙성되고 있는 로제 크레망을 꺼내 병입구로 모이는 효모찌꺼기를 보여주네요. 15개월동안 병숙성을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합니다. 체리와 블랙커런트의 과일향으로 시작해 딸기, 레몬향과 신선한 산도가 기운을 상쾌하게 만들어 무더운 여름에 아주 좋을 듯 하네요. 기로팔레트(Gyropalette)는 2차 병발효를 거치는 전통방식 스파클링 숙성과정에 필요한 장치입니다. 자동으로 병을 돌리면서 각도를 조금씩 세우는 리들링(Riddling) 과정을 통해 효모 찌거기를 병입구로 모으게 됩니다. 병숙성이 끝나면 병입구를 살짝 얼려 효모찌꺼기를 빼내고 당도를 결정하는 도사주(Dosage)를 한뒤 코르크로 막게 됩니다. 예전에는 쀼삐트르(Pupitre)라는 선반에서 꽂아 놓고 일일이 손으로 돌렸지만 요즘은 대량생산을 위해 기로팔레트를 많이 사용한답니다.

브뤼 까땅 로제.
조셉 까땅 와인.

까땅은 알자스 남부 스타인바흐에서는 생산되는 피노그리와 피노누아로 등으로 크레망을 만들고 있습니다. 피노누아 100% 만든 로제 스틸와인도 생산합니다. 스타인바흐 포도밭에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마을의 교회와 예배당은 11세기때 와인메이커이기도 했던 수호성인 모랜드(St. Morand)를 위해 건립됐다고 합니다. 어느날 성 모랜드가 손님을 맞았는데 그만 와인 배럴이 텅 비어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배럴에 십자가를 그려 넣었는데 이후 배럴에는 와인이 절대 비지 않고 저절로 와인이 채워져 늘 풍족하게 마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까땅은 포도압착때 ‘공기주입식(pneumatic press)’을 사용합니다. 이는 상파뉴에서 주로 사용하는 압착으로 가장 섬세하게 포도즙이 만들어져 아로마가 잘 보존됩니다. 압착한 즙은 중력방식으로 스테인리스 탱크로 흘러 들어가 발효되고 대형 푸드르에서 숙성과정을 거칩니다.

조셉 까땅 무스캇.
조셉 까땅 알자스 리슬링 그랑크뤼 하취부르그.

리슬링도 까땅이 아주 잘 다루는 품종입니다. 조셉 까땅 알자스 리슬링 그랑크뤼 하취부르그(Joseph Cattin Alsace Riesling Grand Cru Hatschbourg)가 대표적입니다. 해발 220~330m의 이회토와 라임스톤에서 자란 리슬링은 패트롤 등 미네랄 풍부해 뛰어난 포도밭에 생산되는 고급 리슬링의 느낌을 잘 담았습니다. 감초같은 허브향과 살구, 복숭아 향이 잘 어우러지고 산도의 밸런스도 좋습니다. 그릴에 구워 레몬소스를 곁들인 생선요리와 뛰어난 궁합을 보입니다. 하취부르그에서는 게뷔르츠트라미너, 무스캇, 피노그리 와인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조셉 까땅 리슬링 푸 드 호슈.
조셉 까땅 리슬링 푸 드 호슈.

하취부르그는 매우 유서 깊은 그랑크뤼 빈야드입니다. 1188년부터 포도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13세기부터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 생산돼 한때 헝가리 여왕도 이곳의 포도밭을 소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중세시대에서는 주교들과 성직자들이 포도를 재배했고 18세기부터 북유럽으로 와인이 수출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는 군요. 조셉 까땅 리슬링 푸 드 호슈(Joseph Cattin Riesling Pur de Roche)는 미묘한 카모마일 등 허브향이 아주 매력적인 리슬링입니다. 맛있는 사과 타르트와 감귤향이 입안을 맴돌고 피니시가 길게 이어지며 매혹적인 느낌으로 오래 남네요.


콜마르=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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