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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核·ICBM 손대려는 北… 文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물거품 되나

입력 : 2022-01-21 06:00:00 수정 : 2022-01-21 02: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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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모라토리엄’ 철회 시사
“대미 신뢰구축조치 전면 재고”
바이든 취임1년 회견 맞춰 발표
2∼4월 전후로 실제 행동 관측
文 “현상황서 평화구축 쉽지않아

1월 바이든 1년·2월 올림픽·3월 韓 대선
韓·美·中 메가이벤트 고리로 협상력 제고

北 김일성·김정일 생일 기념 열병식 준비
베이징올림픽 직후 구체적 행동 돌입 전망
“SLBM·ICBM·핵실험 순 도발 가능성”

文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물거품 우려
1월 말 韓·中 화상정상회담서 반전 모색
中 “제재·압력으로는 해결 못해” 北 두둔

ICBM, 2017년 화성-14형·15형 발사
2020년 화성-17형 공개로 업그레이드

靑·민주당 공식논평 없이 신중모드
국민의힘 “文 평화쇼의 처참한 결과”
북한이 17일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는 '북한판 에이태킴스'(KN-24)인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중앙TV는 18일 "국방과학원과 제2경제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의 계획에 따라 17일 전술유도탄 검수사격시험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20일 공개된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재고 검토’ 발표가 신년 한반도 정세에 초강력 한파를 불러왔다. 정부는 일련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의 위기 고조화 방침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2018년 4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단하는 유예 조치를 선언한 지 3년9개월 만에 나왔다. 이에 따라 문재인정부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적극 가동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결정적인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해진 북한의 조치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겨냥해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 남한 측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 1년 동안 상응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국에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신년 들어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으며, 미국은 대북제재를 내놓으며 양측의 갈등은 단기간에 급고조돼 왔다. 북한은 급기야 핵실험과 ICBM 발사 등으로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방침을 시사하면서 미국을 조준하고 있다.

 

◆한·미·중 메가 이벤트 일정 다목적 고려…대미 압박

 

북한의 메시지는 노동당 중앙위원회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8기 제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대미 대응방안을 밝히면서 전해졌다. 통신에 따르면 정치국 회의는 “우리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신뢰구축 조치는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실험장 폐기와 함께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한 것을 의미한다. 북한은 그동안 이를 ‘선제적 선의조치’라고 주장하며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상응조처를 요구해 왔다.

 

통신은 북·미정상회담까지 거론했다. 통신에 따르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정세 완화의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펼쳤지만, 미국은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으로 일관했다는 게 북한 당국의 평가다.

 

북한의 메시지 발신은 3월 대선과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일정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2월 베이징올림픽, 3월 한국 대선 등 한·미·중의 ‘메가 이벤트’(대형행사)를 고리로 협상력 제고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강대강’을 유발하는 북한의 행보는 문재인정부의 종전선언 도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남한의 대선 과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집트를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집트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봤을 때 평화구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평화로 가는 길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서훈 국가안보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임위 정례회의를 열고 이번 사안을 논의했다. 청와대와 외교·통일 당국은 “추가적 상황 전개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대응법은 내놓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 제8기 제6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뉴스1

◆‘북한 벼랑 끝 전술’…향후 정세는

 

북한이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모라토리엄 철회를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면 ‘북·미간 신뢰’를 상징하는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 북한이 2018년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유예했던 군사행동이 핵실험과 ICBM 발사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 또는 ICBM 수준으로 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인 2월과 4월에 주목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모라토리엄 검토에서 결정으로 이어지면 빠르면 2월 16일, 늦어도 4월 15일 전후에 실제 행동이 예측된다”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중거리 탄도미사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핵실험 순으로 강도를 넓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인공기와 붉은 깃발을 세운 들판에 모여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열병식을 준비하는 동향을 보이는 것도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우리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병식 준비 초기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전략무기 개발 목록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것은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핵군축을 하겠다는 전략으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베이징올림픽 직후부터 모라토리엄 파기에 대한 구체적 행동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고 핵실험이나 ICBM을 발사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물거품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공식 파기하면 한국으로선 종전선언에서 평화협정 체결, 항구적 평화체제로 이어지는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번 메시지 발산이 대외적 혹은 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노림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 긴장조성을 통해 내부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북한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을 통해 ‘대사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 생일 110주년, 김정일 생일 80주년과 관련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지난 18일 경기 파주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뉴스1

◆2018년 이후 한반도 정세 어떻게 변했나

 

북한의 모라토리엄 준수는 문재인정부가 대북정책 성과로 꾸준히 강조한 부분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등 대표단이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급물살을 탔다. 같은 해 4월 27일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정부의 첫번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도 했다. 북한은 같은 해 5월 24일 ‘선제적 선의조치’라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핵실험장 폐쇄 다음달인 6월 12일 사상 처음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미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항상 순항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2020년 6월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개성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동의 없이 폭파하고 남북 통신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단절했다. 게다가 북한 문제를 뒷순위로 미룬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에 들어서면서 남·북·미 대화는 급속도로 사그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제안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공간이 줄어든 가운데 이달 말 한·중 화상 정상회담에서 반전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가 있기는 하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한·중 화상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

◆北, 美 제재 반발해 2006년 첫 核실험 단행 2018년 대화 분위기에 풍계리 실험장 폭파

 

북한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감행했지만 다음해 남북 및 북·미 관계의 훈풍을 타고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했다.

 

북한 핵실험은 2017년 9월3일 6차 실험이 마지막이다. 북한의 첫 핵실험은 2006년 10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소재 핵실험장에서 이뤄졌다. 당시 북한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반발해 핵실험 카드로 응수했다. 이후 북한은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판 속에서도 핵실험을 꾸준히 감행했다. 2009년 5월 25일(2차), 2013년 2월 12일(3차), 2016년 1월 6일(4차)과 9월 9일(5차), 2017년 9월 3일(6차) 핵실험이 이어졌다. 2018년 남·북·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북한은 5월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공개했다. 당시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영구 폐기됐다고 주장했으나, 군 당국은 2∼3개월이면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2018년 5월 24일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해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을 폭파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ICBM 시험발사도 2017년 11월 화성-15형 이후 중단됐다. 북한은 2017년 7월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에서 화성-14형 1차 시험발사를 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화성-14형의 최고 고도는 2802㎞, 비행 거리는 933㎞였으며 39분간 비행했다. 같은 달 28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감행한 2차 발사에서는 최고 고도 3724.9㎞, 비행거리 988㎞로 늘어났다. 비행시간도 47분12초로 증가했다고 북한 측은 발표했다. 다음 달인 8월 ‘괌 타격계획’을 공개한 북한은 11월2 9일 화성-15형을 쐈다. 전문가들은 화성-15형의 최대 사거리가 1만300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치다.

 

ICBM이 국제사회에 재등장한 것은 202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때다. 북한은 화성-17형을 새롭게 선보였다. 공개된 화성-17형은 다탄두(MIRV) 형상으로, 11축 22륜(바퀴 22개)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 모습이었다. 길이는 23∼24m가량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괴물 ICBM’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모라토리엄 철회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화성-17형 시험발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며 네 번째 무력시위를 벌인 지난 17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대선판 北 변수 돌출… 李 ‘곤혹’ 尹 ‘공세’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20대 대선에 다시 ‘북한 변수’가 부상했다. 북한이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중단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재개를 시사하면서다. 안정적 대북 관계를 주요 치적으로 삼아온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로서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대북 강경책을 내세우는 국민의힘은 공세를 펼쳤다.

 

청와대는 20일 북한의 선언에 공식 입장 없이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물밑에서는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문 대통령은 임기 종료 전까지 종전선언 추진을 모색해오고 있었다. 북한의 이번 선언은 종전선언의 실현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문 대통령은 거듭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선을 앞둔 시기에 우려가 된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었는데 이 역시 어려워졌다.

 

민주당으로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재명 후보가 “북한에 할 말은 하겠다”며 대북정책 차별화에 나서긴 했지만, 집권여당 후보로서 현 정부 정책을 고스란히 담아야 하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이 역사적으로 호도했던 ‘2018 평화쇼’의 처참한 결과”(장영일 상근 부대변인)라며 공세를 펼쳤다.


김범수·이도형·구윤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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