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라 터진 아동 학대·암매장 뉴스 충격
아이들 생각하며 소설 써야겠다고 결심
‘지옥의 묵시록’처럼 강렬한 도입부 눈길
책 읽고 위로 받았다는 응원에 힘 얻어

평소처럼 노트북을 켜고 포털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아동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에는 아동의 이름과 얼굴이 나왔고, 그의 집이나 화장실 등에서 겪은 학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함께 있던 누나가 다른 곳으로 보내진 뒤 아버지와 계모랑 살게 된 여섯 살 아이, 대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화장실에 감금, 화장실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이어지는 잔혹한 폭행….
관련 기사를 팔로잉해서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아이와 동물을 좋아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였다. 여섯 살 아이는 화장실에 갇혀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소설을 써야겠다고, 소설가 조수경은 2016년 3월 결심했다.
“하지만 쉽게 소설로 나아가지 못했어요. 소설로 쓰려고 할 때면, 학대로 죽어간 아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는데 그것이 고통스러웠지요. 소설의 구조는 다 만들어져 있었지만, 아이들의 모습이나 감정 등을 디테일하게 쓰기가 어려웠어요. 자꾸 미뤄지다가 2020년 10월 서울 양천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살해사건이 터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거죠.”
전작에서 안락사 문제를 다뤘던 조수경 작가가 한국 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를 파헤친 문제적 장편 ‘그들이 사라진 뒤에’(한겨레출판)를 들고 돌아왔다. 소설은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터지고 있지만 법과 제도, 대응책이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통렬히 찌른다.
“선배들이 가끔 그러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진 거라고. 그런데 그게요, 어른들이 한 일이 아니에요. 죽은 아이들이 한 일이야. 아이 하나가 죽어야 그나마, 아주 조금씩 세상이 변해가는 거예요.”(139쪽)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뒤 버려졌던 ‘아이’는 아동을 매매 또는 살해하는 ‘남자’의 집에서 남자의 일을 도우며 커간다. 아이는 어느 날 자신이 아끼는 장애아 ‘도우너’를 죽이려 하는 남자의 집에 불을 지르고 탈출한다. 얼마 뒤 아동을 학대해온 성인 남녀가 거실에서 숨져 있고 냉장고 속에는 훼손된 아동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학대받던 아동 유나와 요미, 지유 등이 잇따라 사라지면서 도시에 공포가 엄습하고 사회의 모순과 사람들의 부조리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제1호 독자’의 멱살을 단단하게 포획한 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끌고 가 부조리한 진실을 모두 보여주고서야 풀어줬으니. 독자들을 포획하고 힘차게 끌고 가는 조수경 소설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조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소설처럼.
―제1부는 아이와 남자, 선생의 이야기와 유나의 이야기가 두 축으로 무섭게 펼쳐진다.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강렬한 느낌도 든다.
“1부는 독자 입장에선 읽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겪었던 일이야말로 소설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럽다. 소설에는 죽은 아동의 시체가 훼손된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론 아이의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치킨을 시켜 먹는 일도 있었다. 소설 그거 말이 돼? 하지만 아이들의 실제가 더 힘들다. 소설보다 아이들의 현실이 끔찍하고 아팠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 속으로 몰입이 돼 끝까지 읽게 되더라. 왜 그럴까.
“저는 16년째 방송국의 심야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다. 방송국에서 오래 일하면서 도움이 된 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문장을 쉽게 쓰는 법, 가독성 있는 문장을 익힌 것이다. 라디오 글은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어야 하니까. 두 번째는 심야 청취자 중에 삶이 힘들고 고단한 분이 많다는 사실이다. 아픈 사연이 들어오면 좋은 글을 써서 위로해 주는데, 그분들이 위로를 받으면 저도 행복하다. 청취자의 사연 가운데 아픈 사연에 우선 맘이 가더라.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개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작고 여린, 약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아이가 울면 다들 쳐다보고서 한 번쯤 괜찮니, 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지 않을까.”
1980년 파주에서 태어난 조수경은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젤리피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소설집 ‘모두가 부서진’과 장편소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등을 펴냈다.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신진상 등을 수상했다.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10년 뒤에도 계속 쓸 것이고, 더 많은 독자들이 제 책을 읽는 그런 작가이길 바란다. 쓰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만큼 행복하기도 하다…. 계속 열심히 쓰고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열심히 쓸 것이라는 취지의 그 말, 그간 인터뷰했던 수많은 작가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럼에도 왠지 쉽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환하던 그의 얼굴에 뭔지 모를 어떤 비장함 같은 게 스쳐가서였을까. 아니면 여리고 밝았던 그의 목소리에 어떤 절절함 같은 게 느껴져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기자의 과한 상상력과 환각 때문이었을까. 또 하나의 숙제가 턱 하니 남겨졌고, 그리하여 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의 말과 함께.
“첫 번째 장편을 펴냈을 때,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이 많았죠. 그런 리뷰를 보면 그분들이 제 손을 잡아준 것 같아서, 저도 힘이 나고 위로를 받았고요. 사실 제 책이 많이 팔릴 만한 책은 아니죠. 팔리지 않을 줄 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써야 해, 하는 간절함을 담아서 책을 내면, 화답이 적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읽고 제가 전달하고 싶은 따스함을 느끼고 리뷰를 쓰면 힘이 나더군요. 이런 식으로 독자의 응원을 힘을 입어서 계속 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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